<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dddddd> 데이비드 코레시 David Koresh | |
원명 | 버논 웨인 하웰 Vernon Wayne Howell |
출생 | 1959년 8월 17일 |
미국 텍사스 휴스턴 | |
사망 | 1993년 4월 19일 (향년 33세) |
미국 텍사스 웨이코 마운트 카멜 센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레이첼 존스 (Rachel Jones) (아내) 자녀 16명 |
학력 | 갈랜드 고등학교 (Garland High School) (중퇴) |
종교 | 다윗가지파 |
직업 | 사이비 종교 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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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종교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분파인 다윗가지파의 지도자. 1990년 5월 15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유대인을 바빌로니아로부터 해방시킨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의 이름을 조합하여 데이비드 코레시로 개명했다. 종말론에 심취하여 재림 예수를 자칭하며 아마게돈에 대비한다며 텍사스주의 웨이코의 다윗파 본부에 수많은 총기와 탄약을 비축하였다. 1993년 2월 28일, ATF의 압수 수색이 총격전으로 이어지면서 51일 동안 대치하다가 건물에 발생한 화재로 데이비드 코레시를 비롯한 성인 55명과 28명의 아이가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웨이코 포위전)2. 생애
2.1. 어린 시절
코레쉬의 삶에 대한 세부 사항은 출처에 따라 다르지만, 그는 1959년 8월 17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미혼 부모인 20세의 바비 웨인 하웰과 14세의 보니 수 클라크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2년 후, 관계는 끝났다. 보니가 조 골든과의 학대적인 첫 번째 결혼과 함께 계속 허둥지둥했다. 그 후, 1962년경, 그녀의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보니는 댈러스로 이사했고, 버논을 부모에게 맡겼으며, 그녀는 이모인 척, 보니의 어머니가 어머니인 척 위장을 했다. 1964년, 보니가 상선을 운영하는 로이 할드먼과 결혼하면서 버논에게 자기가 사실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는 평생 이 일에 대해 충격에 빠졌고, 동시에 본인이 동성지간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1965년 7월, 이복형이었던 로저를 포함한 가족이 함께 모여 텍사스 주 리처드슨에 정착했다.이후에도 버논의 삶은 불행했다. 학습 부진과 부분적으로 시력 저하로 인한 난독증으로 인해, 특수 교육 수업에 배치되었고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다행히 스포츠를 접하고 체력을 키우게 되며 12살쯤 된 후 문제가 개선되긴 하였다. 이쯤 되며 그의 지속적인 허영심과 오만함처럼 여자친구가 생겨났다. 이러한 생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그는 3학년 때 갈랜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이후에도 다양한 일을 시도했지만, 모두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19살, 버논은 16세 소녀와 성관계를 가졌고, 소녀는 버논이 아버지가 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이사를 가면서 자식은 보지 못했다.
그는 남부 침례교회에서 다시 태어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고 곧 그의 어머니의 교단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당시 20살이었던 코레쉬와 목사의 딸인 15살의 샌디 베를린은 2년 간의 관계를 시작했다.
그들의 구애 중에, 어느 날 인도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코레쉬는 눈을 뜨고 이사야 34:16에서 성경이 열린 것을 발견했으며, "아무도 그녀의 배우자를 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신의 신호라고 확신한 버논은 목사에게 다가가 신이 그의 딸을 아내로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목사는 그 제안을 일축하고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코레쉬는 무시한 지시였다. 목사가 그에게 분노하고 회중이 그의 섹스 집착에 지치고 반발하는 가운데, 버논은 교회에서 추방되었다.
1981년 6월, 교회에서 쫒겨나고 그는 텍사스 웨이코에 있던 이단 분파인 다윗가지파로 향한다. 빅터 후테프가 1935년 세운 다윗파하고는 별개의 벤자민 로든이 1955년 세운 조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