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2 18:01:52

데메트리오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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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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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 1세 안티오코스 12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안티오코스 13세 필리포스 2세 필로로마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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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12, 16대 군주
Demetrius II Nicator
데메트리오스 2세
파일:데메트리오스 2세.jpg
<colbgcolor=#000> 출생 기원전 160년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사망 기원전 126년
셀레우코스 제국 티레
재위 <colbgcolor=#000> 셀레우코스 군주
기원전 145년 9월 ~ 기원전 138년 7월 또는 8월, 기원전 129년 ~ 기원전 1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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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제호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
Demetrius II Nicator
가족 데메트리오스 1세(아버지)
라오디케 5세(어머니)
안티오코스 7세 시디테스(동생)
클레오파트라 테아(첫째 부인)
파르티아의 로도구네(둘째 부인)
셀레우코스 5세 필로메토르(장남)
안티오코스 8세 가이포스(차남)
라오디케(딸)
참전 셀레우코스 내전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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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레우코스 왕조의 12, 16대 군주. 찬탈자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몰아낸 뒤 왕위에 올랐으나, 중간에 파르티아군에 사로잡힌 뒤 수년간 억류당했다가 탈출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의 반란으로 피살되었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2세의 후손들과 안티오코스 7세의 후손들간에 기나긴 내전이 벌어져 셀레우코스 제국은 나락에 빠지게 되었다.

2. 생애

기원전 160년경 데메트리오스 1세와 라오디케 5세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동생으로 안티오코스 7세가 있었다. 기원전 150년 6월 부친이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에게 패배한 뒤 아내와 함께 처형당하자 크레타로 망명했다. 기원전 147년 라스테네스가 이끄는 크레타 용병대와 함께 시리아로 돌아와 여러 영토를 장악했다. 여기에 프톨레마이오스 6세가 도와준 덕분에, 그는 알렉산드로스 1세를 상대로 한 오이노파루스 강 전투에서 승리하고 왕위에 올랐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했다.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는 아라비아로 피신했지만 그곳에서 곧 암살당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라스테네스가 이끄는 크레타 용병대 덕분에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그에게 복종하기 싫어했고, 시리아 남부 대부분을 정복한 프톨레마이오스 6세에게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위에 올라 다스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로마가 헬레니즘 국가들이 통합되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을 걸 잘 알았기에, 데메트리오스 2세를 섬기라는 말을 남기고 이집트로 돌아갔다. 그러나 곧 문제가 터졌다. 크레타 군인들이 안티오키아 시내를 거리낌없이 약탈하자, 격분한 안티오키아인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진압군이 학살을 자행한 후에야 가까스로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살아남은 시민들은 크레타 용병대와 학살을 용인한 데메트리오스 2세를 증오하게 되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섬기다가 정권이 바뀐 뒤 축출당한 디오도토스 트리폰 장군은 아라비아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알렉산드로스 1세의 어린 아들 안티오코스를 확보한 뒤, 그를 '안티오코스 6세'로 선포하고 안티오키아로 쳐들어갔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이를 막으려 했지만, 병사들이 임금 삭감에 불만을 품고 디오도토스에 귀순하는 바람에 패배했고, 아파메아와 안티오키아의 지배권을 빼앗긴 채 셀레우키아 피에리아에 자리를 잡았다. 안티오코스 6세는 기원전 142년 또는 141년에 죽었고, 디오도토스가 스스로 국왕에 등극했다. 양자는 셀레우코스 제국을 양분한 채 대치했고, 하스몬 왕조 유대 왕국을 포섭하여 상대를 압도하려고 했다. 그동안 셀레우코스 제국의 속국으로 취급받던 유대 왕국은 이 과정에서 완전한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기원전 139년, 동방 영토를 계속 잠식하는 파르티아에 대항하기 위해 데메트리오스 2세가 출진했다. 처음에는 몇 차례의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기원전 138년 산맥을 넘던 중 매복에 걸려 패배하고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이 여파로 셀레우코스 제국의 바빌로니아 일대는 파르티아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데메트리오스 2세의 동생 안티오코스 7세가 형수인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하고 왕위에 올랐다. 파르티아 왕 미트리다테스 1세는 데메트리오스 2세를 살려줬고, 심지어 자신의 딸 로도구네와 결혼시켜 아이를 낳게 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어떻게든 탈출하려 애썼다. 한번은 친구 킬리만데르의 도움을 받아 카스피해 연안의 히르카니아로 피신하려고 했다. 계획은 발각되어 두 사람 모두 체포되었는데, 미트리다테스 1세는 킬리만데르가 왕을 구출하고자 노력한 걸 가상하게 여겨 후한 보상을 해주고 풀어줬다. 한편 데메트리오스 2세한테는 황금 주사위 세트를 줘서 가지고 놀게 했다. 이는 데메트리오스 2세를 장난감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어린 아이로 본다는 의미였다.

이후 안티오코스 7세가 의외로 파르티아를 상대로 수 차례 승리를 거두는 등 유능한 모습을 보이자, 파르티아의 새 국왕 프라아테스 2세는 기원전 130년 안티오코스 7세의 형 데메트리오스 2세를 석방시켜 왕위를 되찾으라고 부추겼다. 그런데 데메트리오스 2세가 도착하기 전, 안티오코스 7세는 그해 겨울 메디아의 몇몇 마을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포위된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진군했다가, 파르티아군에게 매복 공격을 받고 죽어버렸다. 이제 데메트리오스 2세를 풀어줄 이유가 없게 되자, 파르티아 측은 그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데메트리오스 2세는 추격을 따돌리고 시리아에 무사히 돌아와 동생과 결혼했다가 과부가 된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재혼하고 왕위에 복귀했다. 파르티아 왕 프라아테스 2세는 곧 그를 공격하려 했지만, 동쪽에서 쳐들어온 사카족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 후 파르티아가 샤카족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느라 다른 데 신경쓰지 못했기 때문에, 셀레우코스 제국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클레오파트라 2세와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8세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클레오파트라 2세를 돕기로 하고, 이집트로 원정을 떠났다. 그는 이집트로 가는 관문인 펠루시움 요새 밖에 진을 쳤지만,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군대가 굳건히 버틴 데다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가 자신을 안티오코스 7세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급히 귀국해야 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와 수년간 내전을 치렀으나 서서히 밀리다가 기원전 126년 다마스쿠스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스로 달아났지만, 거기에 머물고 있던 아내 클레오파트라 테아가 성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배를 타고 망명하려 했지만, 티레 부근에서 붙잡혀 피살되었다.

사후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가 왕위를 계승했고,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두 아들 셀레우코스 5세, 안티오코스 8세와 함께 프톨레마이스 일대에서 왕을 자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