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3:42:54

데니스 프로코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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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안드리 빌레츠키 이호르 모시추크 막심 조린 데니스 프로코펜코
대행 대행 제4대
미키타 나토치 보흐단 크로테비치 데니스 프로코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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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A3B,#000><colcolor=#000080> 제4대 아조우 여단장
데니스 헨나디요비치 프로코펜코
Дени́с Генна́дійович Прокопе́нко
파일:prokopenko.jpg
출생 1991년 6월 27일 ([age(1991-06-27)]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키예프
국적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학력 국립 키이우 언어대학 영어교육과
가족 아내 카테리나 프로코펜코
복무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2014년~ )
계급 대령
현직 제4대 아조우 여단장
2017년 ~ 2022년
2023년 ~ 현재
참전 돈바스 전쟁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우크라이나의 군인으로 아조우 여단의 현 여단장이다.

2. 생애

1991년 6월 27일 출생했다. 키이우 국립 언어 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후 사병으로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에 입대해 돈바스 전쟁에 참전했다. 탁월한 지휘 능력을 인정받아 쾌속 진급을 거듭하며 2017년에는 소령으로 진급하고 아조우 연대장이 되어 우크라이나의 최연소 영관급 장교이자 최연소 연대장이 되었다.
파일:Denys_Prokopenko_111.jpg
마리우폴 포위전 이전의 모습.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22년 3월 19일 마리우폴 포위전의 영웅적인 항전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인에게 수여할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우크라이나 영웅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4월 13일 중령[1]으로 진급했다. 패배가 확실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2달이 넘는 처절한 항전 끝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철군 명령으로 러시아군 및 반군에 항복해 포로가 되었다.
파일:Redis_Hero_of_Ukraine.jpg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와 금성메달을 수여받은 데니스
2022년 9월 말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종전까지 튀르키예에 체류하는 조건부 석방이며 현재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보호 하에 있다.[2]

2023년 7월 8일 데니스 프로코펜코 중령 등 아조우스탈 지휘부 5명은 튀르키예에서 우크라이나로 귀환했다. 이후 아조우 여단 병사들을 독려하며 재활치료 이후 일선 전투에 복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2024년 10월 이래, 제6대대를 우크라이나 내무부장관이 찾아 독려하는 현장에서 대령으로 진급했음이 밝혀졌다.

3. 기타

  • 조부가 겨울전쟁 참전자인 카렐리야 핀란드계 혈통으로, 전쟁 당시 조부만 생존하고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다고 하며 이런 집안 내력 덕에 강경한 반러·반공 성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아내 카테리나와의 금슬이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인다. 카테리나의 트위터의 게시물 대부분이 남편에 대한 것이며, 게시물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나온다. #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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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연하지만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군 최연소 중령이다.[2] 당연한 얘기지만 실질적으로 연대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기에, 마리우폴 항복 이후로 쭉 임시 연대장을 맡아 온 미키타 나토치 소령이 계속 임시 연대장 직을 수행한다. 나토치 소령은 본래 제2대대장으로 마리우폴 전투 중 부상당해 3월 21일 보급작전 후 귀환하는 헬기 편으로 후송되어 포로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