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 광산재벌 | |
장르 | 대체역사, 빙의 |
작가 | 구오 |
출판사 | KW북스 |
연재처 | 문피아 ▶ |
연재 기간 | 2024. 09. 09. ~ 연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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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인조, 명군이 되다를 집필한 구오.2. 줄거리
"500년이나 건드리지 않은 광산이라면 사실상 새것이나 마찬가지.
엉뚱한 놈들 뱃가죽이나 불릴 바에야 내가 차지하는 게 정답 아닐까?"
엉뚱한 놈들 뱃가죽이나 불릴 바에야 내가 차지하는 게 정답 아닐까?"
3. 연재 현황
2024년 9월 9일 문피아에 연재를 시작했다.4. 등장인물
- 황보신
주인공. 황희의 차남. 본래 사치하며 놀고먹는 한량이었으나, 기생집을 나오던 중 넘어져 머리를 부딪히면서 전생의 기억을 각성한다. 그 후 조선에서 성공을 거둬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국책으로 손대지 않는 조선의 광산을 자신이 차지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현대적인 관념과 동료의식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노비들의 대우를 크게 개선하고, 여흥의 광산을 차지하는 등 광업가로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잠채로 쌓은 부귀, 석암공사로 조직된 체계적이고 충성심 높은 조직, 미래지식과 사방에서 모은 지식으로 태종~세종이 인정하는 최상위급 인재이나 본인은 당연히 두 갑질상사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한다.
- 황희
조선조의 명재상. 본래 10년대부터는 황희는 기존의 명재상 이미지가 아닌 부정부패한 능신으로서의 이미지도 강해졌는데, 여기서는 그런 이미지보다도 노회한 정치인이자 실력자로서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작중 시점에서는 양녕 폐위를 반대하다가 파직당하고 남원으로 유배당한 상태이나, 그 누구도 황희가 몰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한양 현지의 권신들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떨친다.
주인공은 부친에게 자신이 개심했다면서 도움을 구하고, 황희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 후에 차남을 도와준다.
이후 세종 즉위 이후 복권되어 조정에 다시 들어오나, 아들 황보신의 잠채와 재능이 문제되어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들이 강제로 출사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 세종 이도
조선 4대 임금. 큰형의 폐위 이후 갑작스레 세자가 되어 즉위했다. 황보신의 뛰어난 능력과 설득에 감화되어 그가 진심으로 자신과 함께하며 나라를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물론 황보신은 아예 독약을 물고 들어와서 세종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드러누웠다.
- 양녕 이제
폐세자당한 이전의 왕세자. 세종의 편애와 고집으로 이후 평생 개망나니처럼 횡포를 부린다는 것을 주인공과 독자들은 알지만, 여기서는 부친 태종이 언젠가 죽여두라고 은연중에 천명한 상태나 마찬가지다.
황보신은 눈여겨본 금맥을 빼앗기 위해 양녕대군을 찾아가 그를 끌어낸다. 여기서 밝혀지는 이제의 진심은 천성이 궁중 생활을 못 버티는 한량 측에 가까웠다. 부친과 신하들이 요구하는 왕재의 자신도 없었기에 그 반감으로 더 악행을 저질렀다고. 그러다 목숨까지 날리게 된 판에 자신과 판을 벌리자는 제안에 합류한다.
- 태종 이방원
조선 3대 임금. 세종에게 왕위를 계승한 상왕. 작중 초반부터 주인공이 어떻게든 피하려고 한 공포의 대상이다. 통칭 대마두. 사돈댁과 최측근들을 오직 후대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신하들의 약점을 잡아서 예산을 뜯어내는 등 행보 하나하나가 주인공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세종 이도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전쟁을 계획하던 중 황보신의 상언으로 대마도 정벌이 아닌, 서북 여진 토벌로 방향을 바꾸고 승전하면서 주인공을 눈여겨본다.
- 장영실
본 역사대로 태종이 발굴해 벼슬길에 올랐으나, 워낙에 신분에 의한 차별을 심하게 당해서 폐세자로 인한 정치적 혼란상을 이용해 황희가 빼내서 황보신에게 보낸다.
- 이순몽
내금위 무관. 세종이 대놓고 '광패하다'라고 깠을 정도로 양아치스러운 무장이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장군으로 원 역사에서도 여러모로 활약했다. 세종이 먼터무를 잡아오라고 특파했고, 본거지로 돌아오기 위해 협상을 시도한 먼터무의 동생들을 고문해 오도리부의 본거지를 쳐서 파괴한다.
- 아이신기오로 먼터무
여진 족장. 건주좌위 오도리부 만호. 본래 두만강 이남 지역에 거주했으나, 조선과의 지속적인 마찰로 조선을 쫓아내고 오도리부도 보복을 피해서 요동으로 달아났다.
조선의 대대적인 압록강 일대 여진 토벌을 노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압록강 여진족을 비밀리에 지원해 수천의 여진족이 포위를 뚫고 남하하는 사태를 일으켰다. 때문에 조선은 계획에 없던 기백에 달하는 피해를 더 보아야 했다. 그러나 열받은 세종은 황보신의 조언대로 이후 혼란해진 만주에서 두만강으로 돌아오려는 먼터무를 수백 명의 기병대로 급습해 일거에 토벌, 오도리부를 반파시키고 먼터무 일가도 추포한다.[1]
5. 개변된 역사
- 평안도 완전화(4군 정벌)
본래 세종조의 첫 군사정책은 대마도 정벌이나, 황보신의 상주로 더 성공적인 훗날의 정책인 평안도 정벌로 변경된다. 1만 5천의 대군과 최윤덕, 황희 등이 지휘하는 조선군은 압록강 이남의 여진족을 압도적으로 격파한다.
본래 계획은 이들을 서, 남에서 몰아 압록강을 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주좌위의 아이신기로오 먼터무가 이들을 충동질해 조선군과 맞서도록 만든다. 이 계획으로 조선군은 큰 피해를 보았으나, 이후 반격으로 혼란해진 요동 일대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오도리부를 급습해 승리하면서 건주여진한테도 큰 피해를 입히고 해서, 야인여진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오도리부를 격파한 조선은 동북면까지 손쉽게 정벌할 기반을 손에 넣는다.
[1] 먼터무가 굳이 측근을 보내 조선을 자극하지 않았으면 그의 계획대로 고향 복귀를 조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막지 않았을 것이나, 이미 조선군 수백의 피해를 야기한 그를 세종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