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다'는 한국어의 종결어미 중 하나이다.현대 한국어 문어체에서 동사/형용사/계사는 모두 종결어미 '-다'와 결합한다. 때문에 일상의 문자언어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종결어미 중 하나이다. 중앙어에서는 구어에서 잘 쓰이지 않으나 동남방언에서는 구어에서도 자주 쓰이는 편이다.
2. 역사
종결어미 '-다'는 한글 창제 이전 구결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구결에서는 '-다'를 주로 'ㅣ'와 유사한 자형으로, '-라'는 'ㆍ'에 가까운 자형으로 나타냈다.아래 어형 문단에서 보듯 20세기 이전까지 '-다'는 이형태 '-라'로 나타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계사 뒤, '-니라', '-리라' 등에서 폭넓게 '-라'로 나타났기 때문에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종결어미 '-다'가 '다'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예가 단 한 예도 없다. 물론 《훈민정음》 언해본이라는 텍스트 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동시대 간행된 석보상절에서는 '다'의 형식으로 출현한 예도 물론 보이고 있다.
오늘날처럼 문어체에서 거의 모든 문장을 '-다'로 종결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례로 독립신문 초판본(1896)을 보면 상당수 문장에서 '상관 아니 홈', '보내기 바라옴' 식으로, 오늘날로 치면 음슴체의 형식으로 문장을 끝내고 있다. 독립신문 초판(1896) 이미지[1] '-다'가 쓰였다 해도 후술하듯 이형태 '-라'로 나타난 문장('하노라, -이라' 등)들도 상당히 많다.
3. 어형
종결어미 '-다'는 제법 많은 조건에서 이형태 '-라'로 나타났다. 15세기 중세 한국어를 기준으로 '-라'가 나타나는 환경들은 다음과 같다.- 계사 '-이-'(이다) 뒤
- '-이라고', '-이라 하는' 등의 형식은 이 '-이라'의 흔적이다.
- 선어말어미 '-오-' 뒤
주어가 1인칭일 때에만 쓰인다. 현대 한국어에서 이 선어말어미는 소멸하여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 선어말어미 '-니-', '-리-' 뒤
- 선어말어미 '-더-' 뒤
이때 '-다'와 '-라'의 교체는 선어말어미 '-오-'에서 제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선어말어미 '-오-'는 주어가 1인칭일 때만 붙기 때문이다. 때문에 같은 '가다'의 현재형이어도 1인칭이면 '가노라'(가-+-ᄂᆞ-+-오-+-다), 그렇지 않으면 '가ᄂᆞ다'가 된다. 현대 한국어에는 이 '-오-'가 없으므로 '가다'의 현재형으로 인칭과 무관하게 '가ᄂᆞ다'의 후대형 '간다'를 쓰고 있다.
선어말어미 '-오-'는 소멸했고 '-니라', '-리라'는 예스러운 표현이 되었지만 계사는 여전히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이-' 뒤의 '-라'가 유지되었다면 현대 한국어에서도 '-라'로 나타나는 예를 많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를 즈음하여 '-이라'가 '-이다'로 나타나기 시작하며 20세기까지도 '-이라/-이다'가 공존하다가(이지영 2019: 12-14) 오늘날에는 '-이다'가 완전히 굳어졌다. 그래도 '-이라'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남아는 있다. 이렇듯 20세기 초를 즈음하여 이형태 '-라'가 쓰이는 환경은 매우 줄어들었기에 이 '-라'가 '-다'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꽤 있지만,[3] 15세기에도 '-다'는 쓰였고 '-라'와 교체하는 양상을 보였으므로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앞의 글: 14). '-라'가 쓰인 환경이 줄어듦에 따라 '-라'의 고어 같은 이미지는 생겨났을 수 있겠다.
우리가 創造를 發刊하메 臨하여、무론 文藝에 主力을하엿지만 朝鮮語彙에도 적지안흔 노력을 하엿다。(중략) 小說에 잇서서도 그때의 先輩 春園의 文章에도 아직舊態가 만히 남어 잇섯다。가령말하자면 『P』라하는 小說의 맨마지막 한구절에 『P는남자러라』[4]한것이잇는데 그것은 비단 그소설뿐 아니라『이러라』『이더라』『이라』等 아직 채口語化하지못한 말이 만히 잇섯다。創造를發刊함에 잇서서 우리는同人會를열고 그런 文章은 죄 拒否하여버리고 純口語體 로만쓰기(본문 큰 글자)로 작정하엿다. 地方사투리ㅅ가운데서도 쓸만한 말은 모도 추어서 使用하여 朝鮮語를 豊富하게 하도록 하자고 결의하엿다.
(현대어 풀이) 우리가 창조를 발간할 때, 물론 문예에 주력하였지만 조선어휘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하였다. (중략) 소설에 있어서도 그때의 선배 춘원[5]의 문장에도 아직 옛 형태가 많이 남아 있었다. 가령 말하자면 P라는 소설의 맨 마지막 한 구절에 ’P는 남자러라‘라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비단 그 소설뿐 아니라 ’이러라‘, ’이더라‘, ’이라‘ 등 아직 구어로 바꾸지 못한 말이 많이 있었다. 창조를 발간함에 있어서 우리는 동인회를 열고 그런 문장은 죄다 거부하여 버리고 순 구어체로만 쓰기로 작정하였다. 지방 사투리 가운데서도 쓸 만한 말은 모두 찾아서 사용하여 조선어를 풍부하게 하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김동인, 문단 십오 년 이면사(裏面史), 창조잉태 (5), 조선일보 1934년 4월 5일자 6면#, 이희정(2009: 236-237)[6] 참조.
소설가 김동인이 '이러라, 이더라' 등을 지나간 문어로 보고 '이엇다'[7]를 사용한 것은 유명하다. 3인칭 '그'의 사용과 함께 김동인이 꽤 강조하던 부분이다. 이는 요약하자면 '-더-' 대신에 '-었-'을 쓰자는 주장이다. 위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종결어미 '-다'는 '-더-' 뒤에서는 '-라'로 바뀌지만('-더라') '-었-' 뒤에서는 '-다'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었다') '-라'로 출현하는 문장은 더더욱 적어지게 되었다.[8][9](현대어 풀이) 우리가 창조를 발간할 때, 물론 문예에 주력하였지만 조선어휘에도 적지 않은 노력을 하였다. (중략) 소설에 있어서도 그때의 선배 춘원[5]의 문장에도 아직 옛 형태가 많이 남아 있었다. 가령 말하자면 P라는 소설의 맨 마지막 한 구절에 ’P는 남자러라‘라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비단 그 소설뿐 아니라 ’이러라‘, ’이더라‘, ’이라‘ 등 아직 구어로 바꾸지 못한 말이 많이 있었다. 창조를 발간함에 있어서 우리는 동인회를 열고 그런 문장은 죄다 거부하여 버리고 순 구어체로만 쓰기로 작정하였다. 지방 사투리 가운데서도 쓸 만한 말은 모두 찾아서 사용하여 조선어를 풍부하게 하도록 하자고 결의하였다.
김동인, 문단 십오 년 이면사(裏面史), 창조잉태 (5), 조선일보 1934년 4월 5일자 6면#, 이희정(2009: 236-237)[6] 참조.
4. '-다' 단독 종결문
- 기본형: 사전에 실리는 동사와 형용사의 기본형은 대체로 '먹다'와 같이 '-다' 꼴을 쓴다.
- 활용형
- 동사: 과거 사건을 현재형으로 언급하는 데 쓰임 '건담, 대지에 서다.'
- 형용사, '이다': 사건을 현재형으로 서술함. '너는 참 착하다.'
동사의 경우는 오늘날에 아무 것도 붙지 않은 '-다'는 앞서 말한 것처럼 '건담, 대지에 서다'마냥 책 제목으로만 쓰이지 발화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장을 절대문이라 한다. 현재라면 '-ㄴ/는-'을, 과거라면 '-었-'을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활발하게 쓰이는 종결어미 '-어'나 '-지'가 어간 바로 뒤에도 붙어 '먹어', '먹지' 등으로 쓰이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한편 중세 한국어에서는 이렇게 어간과 '-다' 사이에 아무 것도 쓰지 않으면 주로 과거를 나타냈다. 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 '-ᄂᆞ-'가 있어야지만 현재로 해석할 수 있었다.
5. 유사 어형
'-습니다', '-ㅂ시다', '-리다', '-나이다' 와 같은 어형에서 나타나는 '다'는 기원적으로 '-ᅌᅵ다'로[11]위의 '-다'와는 다르다. 이 어형은 현대 한국어로도 '-ㅣ다'의 형식으로만 나타나며 한글 창제 이래로 '-라'로 나타난 적은 없다.[12] 어찌저찌 '-ᅌᅵ-+-다'로 분석할 여지도 있어 보이지만 '-ᅌᅵ-'가 다른 종결어미와 결합한 형식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나타난다.[13]중세 한국어에는 2인칭 의문형 어미로 '-ㄴ다/ㄹ다'가 있었다. 가령 오늘날의 '-ㄴ가'는 '그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처럼 3인칭을 받을 수도 있지만, '-ㄴ다'는 '너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처럼 '너'에만 쓸 수 있었다. 이 표현이 쓰인 유명한 예는 청산별곡의 '가던 새 가던 새 본다'이다. 언뜻 보기에는 현재 시제 평서형 '-ㄴ다'처럼 보이지만, 중세 한국어에서 현재 시제 평서형은 '-ᄂᆞ다'이므로 시대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후대형이 섞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면 '(너는) 보느냐?'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장윤희 2002:391-392).[14]
일본어 종조사(終助詞)[15] '-た'는 종결어미이면서 어간 뒤에 바로 붙을 수도 있다는 점, [ta]라는 음상이 한국어 '-다'와 유사하다. 가령 어간의 음상과 의미가 비슷한 'いる'와 '있다'에 각각 '-た'와 '-다'가 결합한 'いた'와 '있다'는 발음이 꽤 비슷하다. 단, 한국어 '-다'는 별다른 기능을 지니고 있지 않은 반면 '-た'는 과거를 나타내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 기본적 종결어미라는 면에서는 '-る'가 더 '-다'와 유사하다. 명사에 붙는 종조사 だ는 그 자체의 의미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한국어 '-다'와 유사하지만 명사에만 결합한다는 차이가 있다.[16]
6. 여담
계사 '이다'의 경우 받침이 없는 명사 뒤에서 어근에 해당하는 '이-'가 수의적으로 생략되기 때문에 어말어미만 남는다. (학교이다→학교다)'-다'는 매우 자주 쓰이는 종결어미이기 때문에 한국어는 'ㅏ'를 쓰지 않고 문장을 작성하는 리포그램의 난이도가 매우 높다.
[1] 두 문체를 섞어서 '-홈이라' 식으로도 자주 나타났다. 현대어로 치자면 '하는 것이다'와 유사하다.[2] 오늘날에는 이를 분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내놓으라 하는'으로 오해해 '내노라'라고 적고 발음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꽤 있다.[3] 이런 오해에는 아래에서 보듯 과거 표지 '-더-'가 '-었-'으로 대체되면서 '-더라'가 '-었다'로 바뀌게 되는 것이 영향을 주었다.[4] 이광수의 ≪윤광호≫라는 소설의 문장이다.[5] 이광수(소설가)의 호다.[6] 이희정(2009), <창조> 소재 김동인 소설의 근대적 글쓰기 연구. 국제어문, 47(0), 231-264.[7] 당시엔 'ㅆ' 받침을 쓰지 않았다.[8] 김동인은 위 인용문 외에도 종결어미 문체에 관한 본인의 소회를 많이 남겼다. 이지영(2019: 17-19)에서 김동인의 종결어미 문체에 관한 회고의 글을 4개 인용하고 있다.[9] 이지영(2019), 종결형의 변화와 근대적 문체, ≪어문연구≫ 47-3, 5-27.#[10] '갓'은 오늘날에는 발화시(특정 경우 상황시)에서 하루를 벗어나지 않는 [직전 과거\]의 의미로 주로 쓰이지만, 노걸대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어로 '어제 갓 왔다'는 약간 이상하다.[11] 이 어형은 15세기 반말형에서 '(받침)ㆁ다'로 나타나기도 했다. 'ᄒᆞᄂᆞᅌᅵ다 - ᄒᆞᄂᆡᇰ다'가 그 예. 여기서 받침 ㆁ까지 떨어진 '-ㅣ' 형식이 오늘날 '-하게', '-하세', '-하이' 등 주로 하게체의 형태로 남아있다.[12] 앞서 예로 든 '-리다'는 '-리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하리다'는 화자의 추측을 나타내며 '하리라'는 화자의 의지를 나타내 별개의 어미이다. '하리라'의 '-라'는 본 문서에서 설명하는 종결어미 '-다'이다.[13] 굳이 찾자면 '-니ᅌᅵᆺ가/-니ᅌᅵᆺ고/리ᅌᅵᆺ가/리ᅌᅵᆺ고'가 '-ᅌᅵ-'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14] 장윤희(2002). 국어사 지식과 고전문학 교육의 상관성. 국어교육, 108, 13-400.#[15] 종결어미에 해당된다. 후술할 た는 한국어 문법론 용어로 치자면 조사가 아니라 어미이지만 일본어 문법론에서는 조사와 어미를 구별하지 않는다.[16] 단, 한국어는 명사에 종결어미 '-다'가 결합할 때 '이다'가 개재되어야 하기에 '학교이다', '학생이다'와 같이 된다. 이 '-이-'는 선행 체언이 받침 없이 끝날 때 생략될 수 있다(ex: 학교다). 때문에 받침 없는 체언에 결합한 '-다'는 일본어 명사 + だ와 음상이 매우 유사해진다(ex: 山田だ / 야마다다). 한국어-일본어 사이에 기능과 음상이 매우 유사한 조사로는 '-가/が'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