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1-20 00:09:48

깨다

1. 개요
1.1. 깨다1
1.1.1. 의미
1.1.1.1. 잠에서 깨다1.1.1.2. 생각이 계몽되다
1.2. 깨다2
1.2.1. 의미
1.2.1.1. 단단한 것을 무너뜨리다1.2.1.2. 생각이나 기대 또는 예상을 뒤엎다
1.2.2. 다른 언어에서
1.3. 깨다3

1. 개요

한국어의 '깨다'는 크게 보면 아래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이외에 '까다'에서 파생된 피동사/사동사 등이 있지만 부수적이다.

비록 오늘날에는 3번 뜻만 '까다'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을 추측할 수 있지만 다른 두 뜻도 '둘러싸고 있는 무언가를 벗겨냄'이라는 의미에서 '까다'와의 연관성이 보일락말락하기는 한다. 특히 1번 뜻은 '잠에서 깨다'와 같이 주로 자동사로 쓰이기 때문에 '*잠을 까다' > '잠에서 까-이-다'로 발달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오늘날에는 1번 뜻 역시 '잠을 깨다' 식으로 목적격을 많이 쓰게 되었지만. 1번의 '깨다'는 [깨ː다]로 장음이라는 사실도 접사 파생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게 한다.

현대국어에서 'ㅐ'를 어근으로 하는 동사의 특징상 연결어미 '-어-'가 붙을 때에는 표기상으로 '어'가 수의적으로 탈락할 수 있다(예: 깨다 - 깨서). 사실 '깨다[깨다]'→ '깨지다[깨ː지다]'로 장음이 되기 때문에 음운적으로는 탈락이 아니고, '깨어지다>깨애지다>깨ː지다'의 완전 순행 동화(연결어미 '-어-'가 '깨'의 'ㅐ'에 동화되어 'ㅐ'로 변화)로 볼 수 있다. 장단이 거의 사라진 오늘날에는 탈락으로 봐도 거의 무방할 듯하다. 표기상 '수의적'으로 탈락한다고 하긴 했지만 요즘 사람들 가운데 '깨어지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도 '가다>가아서'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이미 준말 쪽이 우세해진 것에 비하면[1] '깨다>깨어서'는 아직도 그렇게 쓰는 사람이 있기는 있다.

1, 3번의 '깨다'는 [깨ː다]로 장음인 반면 2번은 [깨다]로 단음이다.

어근이 ''와 동음이의어이지만 '-삶다'와는 달리 '깨-깨다'를 이용한 말장난은 찾아보기 어렵다. '깨다'의 1번 의미는 유정명사에서 주로 쓰이고 2번 의미는 어느 정도 크기가 되는 물체에 쓰이기 때문에 두 의미 모두 '깨'와는 연관성을 찾기 어려워서인 듯하다. 써놓고 보니 생활의 참견에서 한 번 말장난이 등장한 적이 있긴 했다. 대장 내시경 하기 전에 환자한테 깨나 딸기같이 씨앗으로 된 건 먹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 수면 내시경을 하던 중 간호사가 앰풀을 깨뜨리자 "깨먹지 말라고 했잖아!!" 라고 소리쳤더니 환자가 "(깨 먹어서)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를 했더라는 일화. '먹다'라는 동사가 '-어 먹다'로 보조동사로 쓰일 수 있는 데다가, '깨다'가 어근이 'ㅐ'여서 연결어미 '-어-'가 생략될 수 있는 음운 구조이기 때문에 음이 같아진 사례이다. 이렇게 줄줄이 설명하니까 정말 노잼이다

1.1. 깨다1

어마니미 드르시고 것ᄆᆞᄅᆞ죽거시ᄂᆞᆯ ᄎᆞᆫ 믈 ᄲᅳ리여ᅀᅡ ᄭᆡ시니라
어머님이 들으시고 까무러치시거늘 찬물 뿌려져야 깨시니라
석보상절(釋譜詳節, 1447)
역사적으로는 'ᄭᆡ-'로 아래아를 갖고 나타난다.

대체로 자동사로 쓰이기 때문에 피동형은 없다는 것이 2번 뜻과 큰 차이. '깨지다'라고 쓴다면 대체로 2번 뜻이다.

1.1.1. 의미

1.1.1.1. 잠에서 깨다
  1. (-에서 / -이 / -을) 술기운 따위가 사라지고 온전한 정신 상태로 돌아오다.
    • 잠에서 깨다, 잠이 깨다, 잠을 깨다

주로 오는 대상은 '잠, 술, 마취, 환상' 등이다. '마취(痲醉)'도 뒷글자는 '취할 취(醉)'이기도 하고.

좀 더 능동적인 의미로 '잠을 깨다'라고 목적격을 쓰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논항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잠이 깼다'를 '잠을 깼다'라고 한다고 해서 '내가 잠을 깼다'라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잠이 나에게서 깨였다' 식으로 수동태를 상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동적으로 깬 게 아니라 좀 더 의지적으로 잠에서 벗어났다'라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잠이 깼다' 대신 '잠을 깼다'라고 조사를 바꿔서 썼을 뿐이다.

사동형은 '깨우다'이다.
1.1.1.2. 생각이 계몽되다
  1. (-이) 생각이나 지혜 따위가 사리를 가릴 수 있게 되다.
    • 생각이 깨다

'잠에서 깨다'라는 것이 '정신을 차리다'로 의미가 확장되어 '(잠들어있지 않고) 사상 등이 진보해있는' 등의 의미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에 따라 논항 구조도 조금 바뀌었는데, '생각이 깨다'와 같은 문장은 윗 문단 식으로 생각하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이 문장은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다. 의미역할(theta role) 측면에서 '잠이 깨다'의 '잠'은 '잠으로부터 빠져나감'이므로 '출발지점역'(source)인 반면 '생각이 깨다'의 '생각'은 대상역(theme)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뜻은 '계몽(啓蒙)'과 단어의 구조가 비슷하다. 이 의미의 영단어는 'enlighten'으로 영어에서는 ''(light)을 의식해서 단어가 생겼다. '깨시민'의 '깨' 역시 이 의미의 '깨다'이다.

사동형은 아마도 '깨우치다'이다. 일반적인 '-이히리기우구추-' 파생은 아니다.

'깨닫다'는 '깨-' + '닫-'(뛰다)의 합성어이다.

1.2. 깨다2

1.2.1. 의미

1.2.1.1. 단단한 것을 무너뜨리다
한국어의 파괴 동사 중 하나. '부수다, 찢다, 깨다' 등등.
므리 能히 ᄌᆞᆷ디 몯ᄒᆞ며 ᄇᆞᄅᆞ미 能히 부디 몯ᄒᆞ며 갈히 能히 ᄢᅢ디 몯ᄒᆞ며
물이 능히 잠기지 못하며 바람이 능히 불지 못하며 칼이 능히 깨지 못하며
금강경삼가해(金剛經三家解, 1482)
고형은 'ᄢᅢ다'이다. 계 합용병서. 위의 '깨다'와는 달리 처음부터 윗아()였다.

피동형은 '깨지다'이며 강세형으로는 '깨뜨리다(깨트리다)'가 있다. 파괴 동사의 특성상 사동형은 상정하기 어렵다.

'부수다'가 덩어리진 물건을 가루로 만든다는 점에, '찢다'가 얇은 걸 갈기갈기 조각낸다는 점에 포인트를 둔다면 '깨다'는 단단한 것의 형체를 무너뜨리는 이미지를 가진다. 대부분의 경우 '깨는 행위'는 일단 어떤 충격이 가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산산조각이 난다. 유리컵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충격이 간 부분만 떨어져나가는 게 아니라 균열이 여기저기로 이어지면서 유리컵 전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식. 그렇기 때문에 '서서히' 부서질 수 있는 '부수다'와는 달리 깨지는 건 '서서히' 깨질 수는 없고, '부서지다'가 점차적으로 바스라지는 것도 포함한다면 '깨지다'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이미지를 준다.

대상이 되는 재질(?)은 주로 유리이다. 깨진다는 말을 들으면 다들 '유리창와장창 깨지는' 장면을 연상할 것이다. 그래서 잘 깨지는 걸 갖다가 '유리OO'라고 하기도 한다. '유리몸, 유리멘탈' 등.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인지 '깨진 유리창 이론, 깨진 유리창의 역설'의 비유처럼 '파괴된 상태'의 비유로 '깨진 유리창'을 든 사례도 있을 정도. 그밖에도 도자기 그릇 같은 것도 깨지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완전히 부서지지 않더라도 약간 금이 간 것도 '깨졌다'라고 표현한다. 좀 더 이 현상만을 지칭할 땐 '금(이) 갔다'라고 한다. 여기서의 '금'은 '금을 긋다'의 '금'과 동일한 듯하다.

한국어에서 된소리로 시작하는 단어들인 '깨다', '찢다', '빻다'에서 파괴하는 의미가 많이 들어가있는 건 꽤 재밌는 현상인 듯.

이처럼 단단한 것을 무너뜨린다는 이미지 때문에 물질이 아닌 것에도 자주 쓰인다.
1.2.1.2. 생각이나 기대 또는 예상을 뒤엎다
근래에 추가적인 논항 없이 '깬다'라고 쓰면 그 전까지 갖고 있던 환상이나 좋은 이미지가 깨져서 실망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아직 이 의미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리지 않았다. 'A의 행동 때문에 A에 대한 이미지가 깨졌다' > 'A가 내 이미지를 깼다' > 'A가 깬다 (이미지를 깨고 있는 상태)' 식으로 된 것 같기도 하다. 논항이 줄어들어버려서 1번의 '깨다' 같아보이기도 하고. 'ㄴ다' 식으로 현재형을 쓸 수 있는 건 위의 일반적인 '깨다'하고도 좀 달라진 부분이다. 위의 '깨다'는 파괴 동사라서 습관적인 행동이나 상태로서 잘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1.2.2. 다른 언어에서

1번 뜻과 2번 뜻은 한국어에서도 동음이의어 관계이므로 외국어 가운데 두 뜻을 모두 지니는 경우는 드물다.

일본어로는 '割る(わる)'가 이런 식으로 튼튼한 걸 무너뜨리는 의미에 맞닿아있다. 한자 '割'은 깬다는 뜻이 별로 없는데 특이한 부분. 破る(やぶる)도 유리에다 쓸 수 있긴 한데 이 단어는 부수는 걸 전반적으로 다 지칭할 수 있는 단어로, 심지어 종이 같은 걸 '찢는' 것도 표현할 수 있다. 반대로 종이에다가 '割る'를 쓰는 건 조금 무리니 '割る'가 좀 더 특화된 단어인 셈.

영어로는 'break'가 '부수다', '깨다'를 모두 담당한다. 이 'break'는 살짝 끊는다고 해서 '휴식'이라는 뜻도 된다. 약간 금이 간 것은 따로 'crack'이라고 부르는데 이 '크랙'은 컴퓨터 쪽에서 프로그램의 틈을 파고 든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1.3. 깨다3

  • 알에서 깬 병아리

'새끼를 까다'의 피동사.

'까다'의 2번 뜻이 '병아리를 까다'와 같이, 유정명사 [새끼]를 목적어로 꽤 특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이 '깨다' 역시 [새끼]를 주어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병아리 같은 난생 동물은 '알'이라는 탈격(벗어남) 논항도 있어서 더 적격이다. 같은 '까다'로 묶여있어도 '마늘을 까다' 같은 것은 '마늘'이 무정명사이기 때문에 '마늘이 깨다' 식으로 써봤자 이런 문장을 상정할 상황이 없다.

하지만 '병아리를 까다'라는 문장 자체가 등장 빈도가 꽤 낮은 편이기 때문에 1번의 '까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태어나는 것도 잠들어있다가 깨는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1] 제55항: 홀소리로 끝난 어간의 밑에 ‘이 아 어’가 와서 어우를적에는 준대로 적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