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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1991)/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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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3.1. 11-12시즌3.2. 12-13시즌3.3. 13-14시즌3.4. 14-15시즌3.5. 15-16시즌3.6. 16-17시즌3.7. 17-18시즌3.8. 18-19시즌3.9. 19-20시즌3.10. 20-21시즌3.11. 21-22시즌3.12. 22-23시즌3.13. 23-24시즌3.14. 24-25시즌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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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희진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부산 상리초등학교 4학년 재학 중 살을 뺄까 해서 육상부 높이뛰기 선수로 활동하다 5학년 말 두각을 나타내면서 육상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희진의 부모는 그녀가 운동을 하는 것을 심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몰래 운동을 하다가 부모에게 들킨 후, 6학년 때까지 해보고 성과가 없으면 그만두기로 했고 그럴 리가 보란 듯이 2003년 소년체전 높이뛰기 금메달을 획득했다. 키도 175cm를 넘으면서 농구부, 배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 당시 김희진의 아버지는 몸싸움이 심해 자주 다칠 수 있는 농구보다는 배구를 권유했다.[1] 때마침 중앙여자고등학교 심재호 총감독이 그녀를 적극적으로 스카웃하면서 2003년 6학년 2학기에 고향 부산을 떠나 상경, 추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김희진은 2004년 중앙여자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했다. 보통 배구 선수들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입문하는 것에 비하면 늦은 출발이었다.[2] 그러나 중학교 3학년이던 2007년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같은해 유스(U18) 대표로 아시아와 세계대회에도 출전했다. 2008년 중앙여고 시절에는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8년 아시아주니어(U19)선수권대회에서 주포로 활약했다. 2009년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에서는 박정아의 남성여고를 3:0으로 꺾고 중앙여고의 대회 2연패를 이끈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김희진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큰 키와 중학생 수준을 뛰어넘는 파워로 큰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 단순히 키만 큰게 아니라 골격도 크고 건장했다. 서울중앙여중·고 시절부터 김연경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 불리며 김희진이 프로에 올라오기만을 학수고대하는 팬덤이 형성됐고, 많은 배구 팬들 역시 국가대표 경기에서 김연경-김희진 쌍포를 보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200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인 국가대표로 뽑혀 FIVB 월드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했다.[3] 이후 IBK기업은행이 신생팀 창단을 발표함에 따라 1순위로 IBK기업은행의 지명을 받으며 입단했다. 프로 입문 이전부터 이미 성인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뛰어난 기량을 입증한 김희진은 대한민국 여자 배구계의 초신성으로 떠올랐다.

3.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 특별 지명되어 프로에 입문했다.[4]

그러나 기업은행이 연고지 선정 문제로 2010-11시즌에 불참하게 되면서 김희진은 2011-12시즌에 데뷔했다.[5]

그리고 2024년 현재까지도 이적 없이 기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3.1. 11-12시즌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지만[6] 이동공격 1위, 속공 2위, 서브 5위, 23경기 265득점에 공격 성공률 44.18%를 기록하며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3.2. 12-13시즌

데뷔 두 번째 시즌이었지만, 해설위원이 "김희진 대 상대팀"이라고 칭하는 경기가 있는가 하면 일명 '김희진 세트'라며 혼자 25점 중 12~13점을 다 가져가는 세트도 존재했다.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발전된 김희진의 실력이 리그 성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여기에 김희진-박정아-알레시아의 삼각편대가 호흡을 맞춰가면서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덕분에 기업은행은 25승 5패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창단 2년 만에 정규리그 1위 및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다. 순수한 신생팀으로서는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단 기간 정규리그 우승이자 통합우승이었다.

3.3. 13-14시즌

2013 안산우리카드컵에서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7]을 달성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컵대회 MVP로 선정됐다.

정규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총 432득점으로 처음으로 400득점을 넘겼다. 공격 성공률도 42.65%로 높았으며, 특히 블로킹이 매우 올라와 세트당 0.62를 기록했다.

팀은 정규리그를 우승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GS칼텍스와 5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준우승을 하였다.

3.4. 14-15시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팀으로 돌아와 김사니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맞춰본 시간 대비 안정적인 플레이로 시즌을 시작했다. 141018 인삼공사전 김희진 cut 그러던 중 팀의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김희진이 그 공백을 채웠다. 특히 2015년 2월 2일 도로공사의 10연승을 저지하는 경기에서 레프트, 라이트, 중앙, 후위 어느 곳 하나 가리지 않고 맹공을 퍼부으며 35득점[8]을 기록,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경기 이후 이정철 감독으로부터 "할 말이 없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데스티니 후커의 자리를 채우는 김희진

김희진은 시즌 30경기 출장, 450득점을 올리며 득점 부문 전체 6위(국내 1위)에 자리했다.[9] 팀은 정규리그를 2위로 마무리하며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김희진은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20득점을 했는데, 그 가운데 4세트에만 10득점을 몰아치며 대역전승을 거뒀다. "그야말로 4세트는 김희진의 세트입니다." 이와 같은 플레이로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기여했다.

3.5. 15-16시즌

2015 청주KOVO컵에서 4경기 동안 무려 121득점을 올리며 MVP에 선정됐다. 흥국생명전 22득점, GS전 41득점[10], 인삼공사전 23득점, 현대건설전 35득점을 기록했으며, 평균 점유율이 47%나 됐음에도 평균 공격 성공률은 43.25%로 매우 높았다.

정규리그 초반 박정아의 슬럼프와 맥마혼의 기복, 잦은 포지션 변환,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피로도 누적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다소 부진했지만, 3라운드 흥국생명전(12.13)에서 2011-12시즌 황연주 이후 맥이 끊겼던 국내 선수의 트리플 크라운을 4년 만에 달성하며 깨어났다. 김희진 개인 1호 트리플 크라운 득점 cut 팀의 사정으로 인한 센터 → 라이트 포지션 변경은 트리플 크라운 뿐만 아니라 기업은행이 11연승을 달성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김희진은 15-16시즌 서브 1위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런데 GS전(01.30)에서 이소영의 공격을 블로킹하다가 손가락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맥마혼마저 블로킹 도중 부상을 입었다. 이에 김희진은 수술 후 20여일 만에 깁스를 풀어야 했으며, 이미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음에도 '챔피언결정전을 대비해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다'는 명목으로 잔여 경기에 투입됐다.[11]

이 후유증이 챔피언결정전에도 이어지면서 현대건설에 3연속 셧아웃 완패를 당했다.

3.6. 16-17시즌

연봉 2억 5천을 수령하면서 3억에 FA 재계약을 체결한 양효진에 이어 여자부 최고 연봉 수령자가 됐다. 이 시즌부터는 팀의 주장으로 임명됐다.

2016 청주KOVO컵에서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피로와 부상의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제 몫을 충분히 수행하면서 팀의 사상 첫 컵대회 2연패에 기여했다.

정규 리그가 시작되고 주전 세터의 개인사와 부상으로 인해 이고은 세터와 주로 플레이를 하게 됐다. 센터 포지션은 세터와의 호흡이 특히 중요한데, 올림픽에 다녀오면서 시즌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데다가 시즌 중에 스타팅 세터가 바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점유율이 이전 시즌에 비해 떨어지게 됐다.[12] 그러나 큰 공격을 위주로 풀어가면서 손발을 맞춰갔으며, 플레이오프에 들어서 그 정점을 찍었다. 이 시즌에는 후위에서 리베로와 교체되지 않고 2자리를 보며 수비와 백어택에 가담했으며, 덕분에 수비가 크게 향상됐다.

포스트 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위해 탈진해가며 경기에 임했다. 당시 기업은행은 플레이오프부터 이틀 간격으로, 그것도 셧아웃 경기 없이 많은 세트를 계속해서 치러왔다. 결국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체력적 열세가 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김희진은 4차전까지 풀로 소화하면서 주장의 투혼을 보여줬다.[13] 그렇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 세 번째 별을 추가했다.

시즌 종료 후 첫 FA를 맞이했다. 기업은행과 연봉 3억원에 재계약하며 양효진과 여자부 연봉 공동 1위에 올랐다.

3.7. 17-18시즌

팀의 구성이 전면적으로 변하게 되면서, 팀에 유일하게 남은 창단 멤버이자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게 됐다. 이전에도 그렇게 해왔지만 이 시즌부터는 유독 심하게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며 플레이했다. "기업은행의 경기가 잘 풀리는지 안 풀리는지는 김희진의 포지션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1, 2세트에서 윙에서 공격이 해결되지 않으면 김희진이 라이트로 투입됐고, 중앙에 공백이 생기면 다음 세트에 다시 센터로 기용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희진은 17-18시즌 서브 1위[14], 이동공격 3위, 시간차 2위에 올랐다. 그러나 팀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에 패배해 준우승했다.

3.8. 18-19시즌

국가대표 스케줄 중간에 부상으로 이탈, 데뷔 후 처음으로 비시즌에 재활을 하고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전 시즌보다 더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주며 전반적으로 많이 올라왔다는 평을 들었다. 도로공사전(12.25)[15]에서는 무려 공격 성공률 72.22%를 기록했다. 이날 김희진의 공격 대부분이 중앙뻥오픈이었는데, 경기 내내 다양한 코스를 공략하며 높은 공격 성공률을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장 김종민 감독은 "김희진이 오늘처럼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타점도, 때리는 각도도 모두 좋았다."며 극찬했다. 도로공사전(12.25) 김희진 cut

리그 초반 팀은 1위를 달리며 기세 좋게 출발했으나, 후반에 무너지면서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렇게 6시즌 만에 처음으로 봄배구를 가지 못하게 됐다.

3.9. 19-20시즌

국가대표팀에서 라바리니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라이트로써의 기량이 크게 발전했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시즌도 센터가 아닌 라이트로 시작했다.

라이트 김희진은 홈 개막전에서부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김희진 개인 2호 트리플 크라운 득점 cut 이날 경기는 5세트까지 갔지만 김희진은 이미 3세트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상태였으며, 5세트 매치포인트에서 서브 에이스 하나를 추가하면서 경기를 끝냈다.[16]

그러나 주전 세터와의 백토스 호흡이 갈수록 흔들렸고, 오히려 이단 볼의 오픈 공격 성공률이 더 높은 상황이 많이 연출됐다. 자연히 김희진의 공격 성공률은 점차 하락했고, 주포가 흔들리니 팀의 성적도 좋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팀에 센터 자원이 부족해 중앙 높이에 결점이 생기는 바람에 김희진은 다시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해야 했다. 당시 2020 도쿄 올림픽 티켓 획득을 위한 예선을 앞두고 있었기에 국가대표에서 라이트로 뛰어야 할 선수의 포지션 변경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고, 이 부상을 안고 올림픽 예선을 다녀와야 했다. 부상의 여파로 한 달간 결장하게 됐는데,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리그가 조기 종료됨에 따라 팀은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됐다.

시즌 종료 이후 2번째 FA를 맞이했다. 장고 끝에 기업은행과 연봉 5억에 재계약했다.

3.10. 20-21시즌

트라이아웃을 통해 라이트 포지션에 안나 라자레바가 들어오면서 이 시즌에는 포지션 변경 없이 센터로 나서게 됐다. 그리고 2016~18시즌 이후 3시즌 만에 다시 한 번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

팀 훈련 도중 동료의 발을 밟아 발목에 부상을 입어 컵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부상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면서 시즌 내내 발목 부상을 달고 뛰었고, 예전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17]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부상으로 인한 결장이 길어지면서 커리어 로우를 찍었다. 정규리그 기준 200득점으로, 지난 시즌에 절반 이상 결장했음에도 203득점을 올렸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기록이었다.[18]

라자레바의 수훈으로 팀은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차전에서 김희진은 블로킹 6개를 잡아내며 본인의 한 경기 최다 블로킹 타이 기록[19]을 수립,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최종전에서 셧아웃 완패를 당하며 1승 2패로 흥국생명에게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그 후 1.5억이 삭감된 연봉 3.5억에 계약했다.

3.11. 21-22시즌

20-21시즌이 끝나자마자 개인적으로 재활 및 보강운동에 돌입했음이 알려졌다. 5월에는 무릎 수술[20]을 받게 되면서 올림픽 출전은 물론 이후의 커리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수술한 지 겨우 두 달 된[21] 김희진을 대체할 아포짓 스파이커 자원이 전무해 라바리니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 투혼을 발휘했다.

무릎 재활과 휴식을 위해 컵대회에는 결장할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라이트로 교체 출전했다. 승패와 관계없이 이미 탈락이 확정된 마지막 경기에 아예 스타팅으로 나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공격 점유율을 가져갔다.

센터 포지션으로 정규리그를 시작했으나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외국인 선수의 결정력 부족으로 인삼공사전(11.04)부터 세트별로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며 플레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라운드 페퍼저축은행전(11.09) 4세트 스코어 18:15에서 네트 플레이 도중 김하경의 발을 밟고 오른쪽 무릎이 꺾이는 부상을 당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행히 정밀 검사 결과 악화 소견은 없었지만, 관절 연골 부종으로 회복 운동을 겸하며 경과를 관찰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메디컬 리포트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어 2라운드 인삼공사전(11.12) 원정길에 동행해 선수들과 함께 몸을 푸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경기에는 결장하면서 휴식을 취했고 2라운드 페퍼저축은행전(11.16)에 교체 투입되어 코트로 복귀했다. 1, 2, 3세트에는 라이트, 4, 5세트에는 센터로 뛰면서 팀내 최다 득점인 17득점, 공격 성공률 45.45%를 기록, 팀의 연패 탈출과 시즌 첫 승을 견인했다. MVP 인터뷰

외국인 선수가 교체된 이후인 3라운드 흥국생명전(12.18)부터는 아예 라이트로 전향, 팀의 외국인 선수 역할을 수행했다.[22] 3라운드 도로공사전(12.23)에서 공격 성공률 37.18%, 32득점을 올리며 2021-22시즌 국내 선수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수립했고, 4라운드에 114점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6위(국내 1위)에 이름을 올렸다. 5라운드 인삼공사전(01.30)에서 시원한 연속 블로킹을 포함해 블로킹 7개를 잡아내며 역대 개인 한 경기 최다 블로킹 득점 기록이자 올 시즌 한 경기 최다 블로킹 타이기록을 세웠다. 5라운드에도 92점으로 득점 랭킹 8위(국내 2위)에 자리했으며, 새로운 삼각편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팀의 5라운드 5승 1패 선전에 기여했다.

라이트 포지션에 고정된 이후 15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김희진은 시즌 29경기 출장, 398점을 올리며 득점 9위(국내 3위), 공격 성공률 36.08%로 공격 8위(국내 2위), 후위공격 6위(국내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계속되는 여자부 선수들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리그가 조기 종료됨에 따라 팀은 5라운드 종료 시점의 순위인 5위로 시즌을 마치게 됐다.

한편 3년 만에 개최되는 2021-22 V-리그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113,448표를 획득, 올스타전 사상 최초로 10만 표를 돌파하며 통합 1위의 영예를 안았다.[23] 김희진은 올스타전 당일 2세트와 스파이크서브 킹 컨테스트 객원 해설위원을 맡아 이정철 해설위원과 이선규 해설위원, 윤성호 캐스터와 호흡을 맞췄다. 하이라이트[24]

3.12. 22-23시즌

연봉 6억원에 도장을 찍으며[25] 2022-23시즌 여자부 연봉 3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9-20시즌 이후 3시즌 만에 아포짓 스파이커[26]로 등록되었다.

지금까지 아포짓 스파이커로 풀 시즌을 치른 적이 없었는데, 만약 이번 시즌 끝까지 동일 포지션으로 완주할 경우 온전히 아포짓으로 치르는 첫 시즌이다. 다만 상황은 좋지 않다. 시즌 전 국가대표 차출 당시 2021년에 수술을 했던 무릎 연골이 찢어졌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VNL에서도 후반부에는 거의 경기를 뛰지 않았으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제외되었다.[27] 이후 코보컵을 소화하는 등 다시 회복이 되는 듯 보였으나 본 시즌 개막전인 GS칼텍스전(10.23)[28] 이후 무릎 이상으로 출전이 어렵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빈자리는 아웃사이드 히터인 육서영이 채웠다.[29]

이후 결장 및 교체출전을 반복하다가 1라운드 마지막 경기인 현대건설전(11.08)에서 다시 13득점을 하며 복귀 조짐을 보이다가 2라운드 GS칼텍스전(11.23)에서 개막전 이후 첫 선발 출전을 한다. 이 날 백어택 5득점을 포함하여 21득점을 선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끈다.김희진 cut '컨디션 이상 무' 김희진, 연패 탈출의 일등공신

이어진 페퍼저축은행전(11.27)에서도 선발로 출전하여 20득점을 올리며 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인 흥국생명전(12.02)부터 다시 무릎에 이상이 생기며 제동이 걸렸다. 이 경기부터 육서영과 교체되어 번갈아 출전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3라운드 KGC인삼공사전(12.21)에서 공격성공률 47.37%로 팀내 최다득점인 18득점을 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김희진 cut 상대 아포짓 외국인선수가 무려 46득점을 올리면서 승리는 하지 못했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매 경기마다 웜업하는 모습을 보고 선발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도이며, 연습 전체에 참여할 수 있는 날도 있고 연습마저 온전히 소화할 수 없는 날도 있다고 한다. 5라운드 들어 공수 양면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던 왼쪽의 표승주산타나가 지친 탓인지 힘들어하는 경기가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김희진이 얼마나 활약할 수 있을지, 김희진이 못 나온다면 그 자리를 육서영이 어느 정도까지 채워줄 수 있는지가 팀 승리의 관건이다.

현재까지의 출전 경기 양상을 보면 1세트에서 2세트까지만 제대로 소화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다득점을 한 경기들도 후반으로 가면서 득점력이 떨어지고, 타점이 내려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외적으로 5라운드 한국도로공사전(02.04)에서는 3세트에만 공격성공률 66.7%에 8득점을 올리며 세트 승리에 기여했는데, 이전 세트에서는 교체로 잠깐만 뛰었고 3세트도 14:11 상황에서 투입되어 3세트임에도 힘을 많이 쓰지 않은 상태였다. 김희진은 기술을 활용하기보다는 큰 키와 체공력을 활용하여 높은 타점에서 때려내는 것이 주공격인데 무릎 문제로 자신이 가진 점프력을 100% 활용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로 보인다.[30] 이를 보완하기 위함인지 최근 가운데로 잘라들어오는 시간차공격의 비중이 늘고있다.

해당 시즌 올스타 팬투표에서 김연경에 이어 M스타 공격수 부문 2위로 올스타에 선정되어 출전했다. 올스타전 당일 본인의 응원가인 뉴진스의 Hype boy에 맞춰 2번이나 춤을 췄고, 득점을 낸 김연경을 대신해 이소영과 함께 오빠 댄스를 추는 등 적극적으로 세레모니에 참여했다.[31] 스파이크 서브퀸에 참가한 산타나가 올스타전에 출전할 수 있도록 경기 중간에 산타나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입혀 출전시켰다. 이후 산타나의 득점은 진짜 기록지에 김희진의 득점으로 기록되었다(!) 수상할 정도로 산타나를 닮은 김희진 경기 중 갑자기 주심으로 등장하여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후에도 간간이 경기에 나오는 정도였으나, 결국 2023년 2월 27일 무릎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면서 시즌을 접었다. 예상 재활 기간은 1년으로, 빨라야 다음 시즌 막바지에나 복귀가 가능하다고 한다.

3.13. 23-24시즌

시즌이 끝난 뒤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다. 전술한 것처럼 무릎 수술로 약 1년 간 재활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연봉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고, 원 구단과의 긴 연봉 협상 끝에 2023년 4월 20일 연봉 1억 5,000만 원, 옵션 2억 원에 1년 계약했다.

시즌 개막 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순조롭게 재활 중이며, 시즌을 함께 시작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10월 개막전부터 출전하게 될 경우 당초 예상되었던 재활 기간인 1년보다 4개월 앞당겨서 복귀하게 되는 것이지만 아직 확실한 복귀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코보컵에서는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등번호를 4번에서 7번으로 변경했다.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행운의 숫자인 7번으로 결정했다고 하며, 7번으로 뛰었을 때 결과가 좋으면 유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4번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다고 한다. 이로써 IBK기업은행 배구단 창단 이래 유일하게 4번을 달았던 선수라는 기록이 깨졌으며, 23-24시즌에는 세터 김윤우가 4번을 달게 되었다.

2023년 11월 4일 흥국생명전에서 드디어 복귀 신고를 치렀다. 기존과 달리 미들 블로커로 출전했으며, 2득점을 기록했다. 그 이후에도 관리 차원에서 교체를 해가며 미들 블로커로 출전했다. 하지만 당초 1년의 재활이 예상되었던 만큼, 시즌 중 완전한 복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경기 출장 수도 프로 입단 후 제일 적은 14경기 출장에 19득점이라는 커리어 로우 시즌이 되고 말았다.

3.14. 24-25시즌

배번을 7번으로 유지한다. 비시즌 동안 같은 미들 블로커 포지션에 이주아김채연이 영입되면서 부상 복귀 이후 주전 경쟁을 하게 되었다.

첫 코보컵 경기에선 아포짓으로 뛰었다. 빅토리아 백업으로 뛰는 것 같다.

정규 리그도 등록된 미들 블로커 포지션이 아닌 아포짓으로 뛰고 있다. 주로 빅토리아의 백업으로 뛰거나 김하경과 함께 더블 스위치로 코트를 밟고 있다.

4. 국가대표 경력

프로팀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센터로 등록돼 뛰고 있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라이트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다.[32] 큰 공격을 위주로 해야 하는 라이트 포지션의 특성상 리그에서는 파워가 있는 외국인 선수가 기용되지만 국가대표팀에서는 그 역할을 김희진이 수행한다.

2011-12시즌 종료 후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 대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황연주가 제대로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라이트로 투입되어 터키와 일본을 연파하고 대한민국 여자배구팀을 8년만에 올림픽 본선에 직행시키는 데 일조했다. 특히 일본전에서는 초반부터 범실을 하던 황연주와 교체돼 이동공격을 활용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이렇게 김희진은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파워형 공격수의 표본을 보여주면서 국가대표팀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장신 아포짓 스트라이커 자리에 적합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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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은 2012 런던 올림픽 본선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여자배구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원래는 라이트 백업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는데, 황연주가 손가락을 부상당한 채로 명단에 오른 터라 사실상 황연주와 함께 주전 라이트로 기용됐다. 세르비아전에서 자신의 공격 본능을 발휘했고, 8강전에서도 강호 이탈리아를 3-1[33]로 이기면서 팀의 준결승 진출을 도왔다.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이정철 감독으로부터 기량이 한층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아시안 게임에서 김희진은 센터와 라이트로 출전해 김연경과 더불어 엄청난 득점을 선보였다. 특히 중국과의 결승전 경기는 서브, 블로킹, 이동공격, 백어택 등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했던 경기"였다. 김연경이 인터뷰에서 이날의 김희진을 "미친 선수"라고 표현했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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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센터로 출전해 김연경에 이어 2번째로 다득점을 해냈고, 같은 해 월드컵에는 라이트로 출전, 국가대표팀의 공격 2옵션 역할을 해냈다.

2016 리우 올림픽 예선에서 리그에서 당한 손가락 부상이 조금은 호전된 모습이었지만, 본선에서 부진하며 당시 팀 동료인 박정아와 함께 많은 비판을 받았다.[34]

2017년 7월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예선 2차전 불가리아전 당시 오른쪽 팔꿈치에 이상을 느꼈지만 대체 선수 부족으로 진통제를 맞으며 경기에 임했다. 8월 아시아선수권대회까지 치른 후 그랜드챔피언스컵에는 불참했고, 이후 세계선수권 아시아 예선전에 다시 차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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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 못 쓰면 왼팔로 칠래요"

2018년에는 어깨와 손목, 팔꿈치 등에 입은 부상이 심해지면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19년 대표팀의 새로운 사령탑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부임하면서 비로소 라이트로만 대표팀 경기를 소화할 수 있게 됐다. 2019 VNL 대회에서 김연경의 합류가 늦어지면서 김희진이 주포 노릇을 했으며,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경험을 쌓았다.[35] 그렇게 라바리니 감독의 지도 하에 라이트로써의 기량이 성장했고 2019 FIVB 월드컵에서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2020년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상태로 2020 도쿄 올림픽 대륙간 예선전을 치렀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첫 훈련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을 걱정할 정도로 부상이 심해졌는데, 고민 끝에 출전을 결정해 올림픽 티켓 획득에 일조했다. 당시 라바리니 감독이 김희진을 '마이 아포짓(My Opposite)'이라고 부르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2021년 5월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하며 2021 VNL 대회 참가선수 25인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라바리니 감독의 호출을 받아 속성으로 재활에 돌입,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했다.[36] 예선 케냐전에서 서브에이스 4개, 블로킹 1개 포함 양 팀 통틀어 최다인 20득점을 올리며 셧아웃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부상 부위가 눈에 띄게 부어 있었고 경기가 없을 때는 걷기도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 스스로도 답답해할 만큼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예선 케냐전을 제외한 다른 경기에서는 부진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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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VNL 대회의 유일한 아포짓으로 발탁, 전격적인 세대 교체를 진행 중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장 박정아를 도와 팀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았다. '에이스' 김희진의 당찬 각오 그러나 출국을 하루 앞두고 무릎 연골이 찢어진 상태라 출전 시간을 조절해서 뛰어야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부분의 경기에서 후배 선수들과 교체 기용되었으며, 2주차 세르비아전과 태국전을 제외한 3주차 3경기에는 투입 없이 휴식을 취했다. 이후 세계선수권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부상 재활 문제와 더불어 개인 기량도 떨어지면서 2022 VNL 이후로는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국가대표팀에서는 은퇴했다.


[1] 김희진은 농구와 배구를 둘 다 좋아한다. 다만 아버지가 위의 이유 때문에 배구를 시키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농구도 거의 프로 수준으로 잘한다. 여담으로 김희진의 피지컬이면 파워 포워드 내지는 센터를 맡을 수 있다.[2] 상대적으로 입문이 늦었기 때문에 서울중앙여중 시절 1년 유급을 했다. 그래서 1991년생임에도 1992년생들과 동기이다.[3] 2021년 출연한 런닝맨에서 밝히기를, 윗선에서는 더 빨리 국가대표로 데려가려고 했으나 학교 선생님들의 우려로 늦춰진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고등학교 2학년이지만 나이는 19살이었다.[4]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선수 지명 드래프트 이전에 기업은행에서 고등학교 3곳을 우선 지명했다. 그 중 서울중앙여자고등학교가 1순위로 선택을 받았다. 기업은행에서 지명한 3개교를 제외한 선수 풀에서 나머지 구단이 드래프트를 진행, 당시 행정상 1라운드 1순위로 뽑힌 선수는 표승주이다. 그러나 기업은행에서 김희진을 가장 처음으로 호명했기 때문에 통상 2010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는 중앙여고의 김희진으로 여겨진다.[5] 학창시절 1년 유급과 팀의 리그 참가 지연으로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프로에 입문했다.[6] 팀 동료 박정아가 수상했다. V-리그 토크쇼에서 한유미와 이숙자 해설위원은 김희진의 공격 성공률이 더 높았으나, 시즌 중 복근 부상으로 인한 일부 경기 결장, 포지션 차이에 따른 점유율과 때리는 공의 차이 등의 이유로 박정아의 득점이 더 많아 수상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7] 컵대회에서의 기록이기에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남녀부를 통틀어 컵대회 1호 기록이다.[8] 자신의 정규리그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9] 김희진의 역대 정규리그 득점 순위 가운데 최고 성적이다.[10] 황연주와 컵대회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 타이. 특히 2015년 KOVO컵은 외국인 선수 없이 치러졌기에 더욱 의미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GS전(41득점) 김희진 cut[11] 수술 후 움직일 때마다 울림이 심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근 한 달만인 3월 2일 코트로 복귀하게 됐다. 이날 본인도 경기를 뛰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기사[12] 김희진은 이 당시를 슬럼프라고 표현했으며 배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잘 하지 않던 기도도 하게 됐다고 전한 바 있다. 영상 특별히 '1111'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받고 싶어서 11시 11분에 기도 알람을 맞춰 놓을 정도로 간절했다고. 막상 기도 시간인 11시 11분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13] 챔피언결정전 2차전 2세트에서 김희진의 포지션을 라이트로 변경한 전략이 적중했다. 김희진이 라이트에서 상대 용병을 마크하고 상대 블로킹을 찢어주면서 공격의 활로가 생겼고, 듀스 접전 끝에 세트를 가져온 것이 승부처가 됐다.[14] 특히 3라운드 흥국생명전(12.02)에서 서브에이스 6개를 기록하며 역대 개인 한 경기 최다 서브에이스 기록을 세웠다. 김희진은 3세트에만 무려 5개의 서브에이스에 성공했는데, 이는 V-리그 여자부 한 세트 최다 서브에이스 타이 기록이다.[15] 김희진은 크리스마스날 경기를 하면 그렇게 날아다닌다.[16] 여담으로 이날 경기 해설위원이 "김희진이 그토록 원했던 아포짓 스파이커", "라이트를 고집했다" 등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김희진의 라이트 기용은 개인적 욕심이 아닌 올림픽을 앞두고 라이트로서의 감을 유지하기 위한 계획이었으며, 이마저도 팀의 상황에 따라 센터와 라이트를 오가게 되면서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 # # #[17] 이 부상이 결국 무릎에까지 영향을 줘, 시즌 종료 후 오른쪽 무릎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하게 됐다.[18] 후에 밝히기를 이 시기에 은퇴까지 고민했다고 한다.[19] 이 기록은 2021-22시즌 5라운드 인삼공사전(01.30)에서 블로킹 7개를 달성하면서 경신되었다.[20] 손가락 수술 이후 선수 인생 두 번째 수술이었다.[21] 대회 기준으로는 두 달이었지만 하동 코호트 훈련에 합류한 일자(06.29)를 기준으로 하면 불과 한 달만의 차출이었다.[22] 2021-22시즌 팀의 주전 라이트로 기용된 국내 선수는 남녀부를 통틀어 김희진이 유일하다. 다만 시즌을 센터 포지션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담이 걱정거리였다. 오죽하면 김호철 감독이 "매일 보면 아찔하고 안쓰럽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희진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포지션을 변경해서 체력적인 소모는 없다"며 "대표팀에서도 해왔던 포지션이기에 체력관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 알고 있다. 다음 시즌은 비시즌의 나에게 맡기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김호철 감독의 공언대로 김희진은 2022-23시즌 라이트로 등록되었다.[23] 여자부 2위 선수와 21,371표, 남자부 1위이자 전체 2위 선수와는 13,946표 차이로 압도적인 기록이다. '배구 최고의 별' 김희진 "팬들 시키는 건 다 할게요!"[24] 특히 이정철 해설위원과는 오랜만에 만나서 덕담을 했고, 이날 얼굴이 더 작아진 탓에 이선규 위원의 걱정을 샀다. 이유는 다이어트를 빡세게 하느라 얼굴이 더 작아졌다고.[25] FA 당시에는 3년 15억에 계약했으나 실 연봉은 5억-3.5억-6억으로 3년 총 14.5억이다.[26] 2022-23시즌부터 V-리그의 포지션 명칭이 국제 표기 기준으로 변경되면서, 이제 라이트가 아니라 아포짓 스파이커로 칭해야 한다.[27] 자세한 내용은 하단 국가대표 문단에 서술되어있음[28] 13득점, 공격성공률 36.36%[29] 좋은 공격력을 가졌지만 리시브에 약점이 있는 선수인데, 아포짓 스파이커로 출전하면서 긍정적인 활약을 보였다. 특히 백어택이 압권.[30] 실제로 경기에서 공격이 성공할 때를 보면 원 블락인지 투 블락인지 등 상대 블로킹의 수보다 토스의 높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31] 올스타전 MVP로 뽑힌 김연경이 자신이 받지 않았다면 김희진이 받았을 거라고 언급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M스타 막내라인이라 그런 듯[32] 후술하겠지만 김희진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센터, 라이트 두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으며, 라바리니 감독 부임 이후에서야 대표팀의 아포짓으로 포지션을 고정할 수 있었다.[33] 18-25, 25-21, 25-20, 25-18[34] 올림픽 이후 김연경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상당한 오른손 손가락이 여전히 제대로 펴지지 않는 모습이 포착됐다. 수술 이후로 일상생활에서 왼손을 쓰다가 양손잡이가 됐을 정도로 부상의 후유증이 컸다.[35] 당시 V-리그를 기준으로 정규리그와 포스트 시즌(챔피언결정전)까지 치렀을 때보다도 더 많은 수인 35경기에 출전,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3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36] 후에 김희진은 엔트리에 포함됐을 때 1옵션으로 차출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습 과정에서 점프도 잘 되지 않았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자신이 바라왔던 퍼포먼스"라며 옆에서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