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arfix]
1. 실존 인물
1.1. 前 PD, 前 MBC 부사장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PD) 문서 참고하십시오.1.2. 개그우먼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개그우먼) 문서 참고하십시오.1.3. 前 주 세르비아 대사관 대사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외교관) 문서 참고하십시오.1.4. 前 농구 선수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농구) 문서 참고하십시오.1.5. 前 남양주시장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정치인) 문서 참고하십시오.1.6. 前 경북대학교 총장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교육인) 문서 참고하십시오.대한민국의 영문학자, 교수. 1972~1979년 경북대학교 제6·7대 총장을 역임했다.
1.7. 코미디 유튜버 김땡희의 본명, 유튜버 희스터즈 멤버
자세한 내용은 김땡희 문서 참고하십시오.1.8. 닥종이 인형 작가 겸 에세이 저자
통칭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아이를 많이 낳기도 했지만[1] 아이 모양의 닥종이 인형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또한 본인이 1992년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도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인데, 미술에 크게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닥종이 인형 제작자보다는 이 책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2] 참고로 이 책 이후로 계속해서 독일 생활과 자식들을 소재로 하는 여러 에세이를 썼다.1944년 해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첫 남편과 사별 후 1981년에 열네 살 연하의 독일 청년과 결혼해[3] 독일 뮌헨으로 이주, 그곳에서 닥종이 조형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4] 김영희는 그 당시 어떤 작가도 다루지 않았던 재료와 형태, 표현기법으로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퍼포먼스를 가져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잘 알려진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1978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 1990년, 1992년, 1994년, 1998년, 2002년, 2003년에 귀국 초대전을 가져 국내 관객들에게도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2008년, 5년 만에 고국에서 전시를 열게 된 김영희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종이 조형 작품과 사진, 조각 작품 70여 점을 선보였다.
1.9. 순정 만화가
1992년 댕기에서 데뷔. MASCA, 에뷔오네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양감이 뚜렷한 다이나믹한 그림체로 판타지나 역사물에 강점을 보인다.1.10. 중앙일보 기자
(金永熙 / KIM,YOUNG-HIE) 1936 ~ 20202016년 7월, 국익을 위해 차라리 THAAD 배치를 포기하자고 주장한 기고문을 실었다.
2. 가상 인물
2.1. 네이버 웹툰 '아메리카노 엑소더스'의 조연급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아메리카노 엑소더스) 문서 참고하십시오.2.2. 빨간토마토 애니메이션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김영희(빨간토마토) 문서 참고하십시오.[1] 사별한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3명을 낳았고, 5년후 재혼한 독일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2명을 낳았다.[2] 저자의 인생 및 저자 집안(친정)의 사연이 매우 드라마틱하고,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자도 적어서 해외가 미지의 세계였던 시절에 독일에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이 책은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자의 필력도 좋다.[3] 유럽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매우 낮았던 시절이었는데, 태권도를 배워서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기 전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가 김영희와 만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구애했다.[4] 다만 이 독일인 남편과는 2000년대 별거를 거쳐 결국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