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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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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증조부로 알려진 조선 후기의 인물:
김수열(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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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김수열
Kim Su-yeol
파일:김수열.jpg
출생 1965년~1966년
전라남도 고흥군
학력 포두초등학교
단국대학교 (체육학과)
직업 줄넘기 선수
기업인
현직 김수열줄넘기[정보] 원장
가족 아내 강재연[2]

1. 개요2. 생애
2.1. 김수열줄넘기 창업
3.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줄넘기 선수이자 기업인.

자신의 이름을 딴 줄넘기 제조업 회사 김수열줄넘기[정보]의 원장이다.

2. 생애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줄넘기를 놀이 삼아 부단히 해왔다.

경기도로 이사와 중학교를 다니며 용돈 벌이 삼아 돌렸던 신문 배달에서 우연히 일본 줄넘기 선수의 기네스 기록을 보고 나서부터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줄넘기 연습을 해왔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동네에 체육관이 새로 생겼고, 제일 처음 등록해 복싱을 배웠다. 신문을 더 열심히 돌려야 했지만 복싱은 줄넘기를 할 때만큼이나 행복했다고 한다.[4] 이후 매일 1~2시간 이상씩 줄넘기를 했고, 복싱 또한 쉬지 않고 열심히 해왔다.

이후 단국대학교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전 불의의 사고로 더 이상 복싱 선수를 꿈꿀 순 없었지만 줄넘기는 할 수 있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줄넘기를 해왔다.

1990년, 김수열줄넘기 아카데미를 개설하였다.

김수열은 학교를 졸업하고 해외토픽 기사를 보다가 미국 선수가 줄넘기 강의하러 전국을 순회하는데 95년도에 상상도 못할 금액인 연봉 1억을 공연, 교육을 통해 벌고 있던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해 96년도에 줄넘기 한 제품만 파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2.1. 김수열줄넘기[정보] 창업

그는 96년도부터 전국 학교에서 방학 때마다 교육 중 협조를 얻어 줄넘기의 연수, 교육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줄넘기연구회장 이왈규와 함께 96년도에 음악줄넘기를 우리나라 처음 도입했다. 교육을 하다보니 줄넘기도 있어야 겠다 싶어서 직접 만든 게 김수열줄넘기[정보]의 시발점이다.

미국에서는 줄넘기 선수인 버딜이 인터넷을 통해 줄넘기를 팔고 있었고, 일본은 스즈키라는 선수가 '스즈키 줄넘기'를 파는 것을 보고 김수열은 자신도 본인의 이름을 건 줄넘기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고, 이윽고 1996년 줄넘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7]

하지만 1996년 당시 줄넘기로 먹고 살겠다고 결정한 후 주변 시선은 "줄넘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제일 가슴이 아팠던 것은 부모님을 걱정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수열은 자신의 길에 확신이 있었고,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그는 자신의 꿈을 밀어붙였다.

김수열은 "96년에 김수열줄넘기가 처음 나왔고, 그해 여름방학 때부터 음악줄넘기 연수를 시작했다. 그게 전국 학교, 문화센터에서 줄넘기가 활성화된 계기였다"면서 "97년 IMF 외환위기가 왔는데 줄넘기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연수받은 교사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면서 제품개발도 꾸준히 진행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3. 수상

  • 1989년 기네스대회 오래뛰기 1위
  • 1995년 일본줄넘기선수권대회 3중뛰기 1위
  • 1997년 제1회 세계줄넘기선수권대회[8] 3중뛰기 1위
  • 1999년 제2회 세계줄넘기선수권대회[9] 5위

[정보] 1996년 창립, 영문명: KSY Jump Rope,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2] 교사 대상 줄넘기 강습을 하다 만났다.[정보] [4] 김수열은 복싱을 시작하면서 줄넘기를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정보] [정보] [7] 돈을 좇을 땐 보이지 않던 길이 꿈을 좇기 시작하자 선명하게 보였다고 밝혔다.[8] 호주 시드니 개최[9] 미국 세인트루이스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