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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군인, 법조인. 전 최고재판소장.2. 생애
1930년 6월 27일, 중국에서 태어났다. 김일성 항일유격대 중대장 김중권의 아들로, 아버지는 1937년 보천보 전투 때 전사했다. 해방 이전에는 펄프공장의 노동자로 살다가 해방 이후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대학 특설학부를 거쳐 체코 프라하 공대로 유학을 갔다. 6.25 전쟁 중 김일성의 호위무관을 지냈다고 하며 귀국 후 1955년 중앙위원회 학교교육부 지도원을 지냈다. 1969년에 평안북도 책임비서로 사업했다.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토론자로 출석하여 토론하였으며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1980년대 내내 평안북도 책임비서로 사업했으며, 1985년부터 평안북도 인민위원장을 겸했다. 그러나 1986년 김일성에게 유자녀라고 믿고 맡겼더니 일을 개판으로 하고 있다면서 호된 비판을 받았으며, 1989년 김학봉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1986년 8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대의원 겸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 1991년 5월, 허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4년 1월, 호위사령부 정치위원으로 재임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자 장의위원을 지냈고 1995년에는 오진우 장의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95년 10월 8일에 김정일이 최고사령관 명령 0065호를 통해 대장으로 진급시켜주었으며 10월 7일,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 로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군복을 벗고 중앙재판소 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최원익의 뒤를 이어 중앙재판소장, 법제위원회의 위원,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8년 12월, 전문섭 장의위원, 1999년 9월, 리종옥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법제위원, 중앙재판소장에 유임되었고 2009년 4월 12기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법제위원, 중앙재판소장에 유임되었다. 중앙재판소 대표단을 이끌고 2003년에 중국, 2006년에 러시아를 방문하였으며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0년 4월, 중앙재판소가 최고재판소로 개편되자 재판소장에 유임되었으며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이후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을 받았다. 통일부에서는 죽을 때까지 최고재판소장을 지낸 것으로 파악했지만, 북한의 부고를 보면 어느 시점에서 최고재판소 고문으로 물러난 상황이었다. 2010년 1월, 김정일의 중앙재판소 현지지도에 동행한 것을 마지막으로 현지지도 동행도 중단했고 외국 사법대표단도 최고재판소 참사나 제1부소장을 대신 시킨 것을 보아서 건강이 썩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1월 4일,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재판소 고문으로 재직하던 중 83세를 일기로 악성림프종으로 인해 사망했다. 당중앙위원회는 부고를 발표, "김병률동지는 당과 수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온 우리 당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다. (...) 김병률동지는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튼튼히 무장하고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였다. 김병률동지는 비록 서거하였으나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세운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있이다."라고 칭송했다. 김정은이 화환을 보내주었는데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죽기 직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정말 뵙고싶습니다. 원수님을 더 받들어모시지 못하는 제 마음 죄송합니다 원수님의 안녕을 바라는 전사 김병률 올립니다."라고 후빨하는 글을 올려 김정은에게 바쳤다고 한다. 한동안 북한은 최고재판소장이 공석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2014년 13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된 후에야 박명철을 신임 최고재판소장으로 선거했다.
3. 참고문헌
- 김광운, 북한 정치사 연구 1: 건당, 건국, 건군의 역사(서울: 선인, 2003).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2017 (서울: 통일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