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0 23:19:32

김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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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립운동가 김덕목.webp
출생 1913년 5월 10일
평안남도 용강군 신정면 구룡동[1]
(현 평안남도 대안군 오신리)
사망 1977년 7월 2일 (향년 64세)
본관 의성 김씨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직업 독립운동가, 군인
학력 인성학교 (졸업)
상해 육청중학 (졸업)
중산대학 법학원 (경제학 / 학사)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경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1. 개요2. 생애3. 참고 자료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2. 생애

김덕목은 1913년 5월 10일 평안남도 용강군 신정면 구룡동(현 대안군 오신리)에서 독립유공자 김붕준·노영재 부부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아버지를 따라 가족 전체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학교(仁成學校)와 상해 육청중학(育靑中學)을 졸업하였다.

1931년 흥사단에 가입하여 단원으로서 한·중 우호 증진 및 항일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하던 중, 윤봉길훙커우 공원 의거로 독립운동가 일제 검거에 나선 일본 경찰에 의해 1932년 4월 상하이 프랑스조계에서 체포되었다가 그해 5월 14일 혐의점을 찾지 못해 가출옥하였다. 그 후 1933년 9월 중산대학 법학원 경제학과에 입학하였고, 1934년 2월 애국비밀단체인 동방구락부 간부로 중국 학생항일구국회 간부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항일투쟁의 수단으로 대적선전 및 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37년 7월 루거우차오 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 고취 및 대적선전, 장병위문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1939년 3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였고, 군사훈련을 수료한 뒤 중국군에 배속되어 항일전에 참전하였다. 1940년 초에는 난닝 전투에 참전하였고, 같은 해 5월 중국 군사위원회 군령부 첩보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중국군 상위(上尉)에 올라 적정 수집, 일본군에 대한 정보수집 및 파괴활동, 연합군의 중국해안 상륙을 위한 특수공작 수행에 전념하는 한편,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로서 활약하였다.

8.15 광복 후 1945년 12월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항전기념장을 수여받았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으며, 1977년에는 건국포장이 수여되었다. 1977년 7월 2일 별세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참고 자료


[1] 의성 김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