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론 매체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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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記者. Reporter.
사회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찌라시 혹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기자들은 기레기 라고도 한다.
2. 이집트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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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3. 상나라의 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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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상나라의 왕족. 주왕이 폭정을 저지르자, 그에게 간언하였는데, 되레 옥에 갇히고 말았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무너뜨린 이후 풀려났으며, 기 땅의 자작(기자)으로 책봉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까지 기자조선은 실존했던 국가로 인식되었지만, 현대 사학계에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존했음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나 유적이 나온 것이 없는데다, 기자동래의 기록 또한 당대로부터 8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부터야 등장하기 때문.
기자동래설은 중국에서는 한민족을 복속하기 위한 이념적 토대[1]로 활용되었다. 실제로 중국은 이런 식의 전과가 많은데, 흉노가 하나라 걸왕의 후손이라거나 왜는 진나라의 신하 서복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는 등 타민족의 기원을 자신들의 역사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조선 등 한민족의 국가에서 기자동래설은, '우리 땅에서 유학의 역사는 중국에서의 그것(공자)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성인(기자)이 찬탈자(주무왕)를 피해 이곳 동방으로 왔다.'는 서사는 '폭력과 야만의 중화 vs 덕과 예의 한민족'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최적이었다. 그래서 한민족에게 기자조선이란, '우리 또한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내지는 '우리가 중국보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 같은 자부심을 증명하는 존재였다.
4. 제5인격의 생존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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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1] '이(夷)는 어질다.(仁) 그러나 성인의 교화가 있어야만 그 천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성인은 중화에서만 나올 수 있으며, 이적의 사회에는 나올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중화를 따라야 한다.' 같은 논리이다.참조 : 중국 정사에 보이는 우리 민족의 이미지-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