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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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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純成 | Kwon Soonseong[1]
파일:권순성.jpg
출생 1965년 11월 25일[2] ([age(1965-11-25)]세)
충청남도 논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창초등학교 (졸업)
유성중학교 (졸업)
대전체육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 (체육학 / 학사)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3]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4]
종목 기계체조
주종목 평행봉, 링
소속 수원시청(1988~1990)
연기군청(1990~1995)
신체 157cm, 54kg[5]
종교 개신교
가족 아내 김정주, 딸 권하림

1. 개요2. 생애3. 경력4. 수상 기록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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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기계체조 선수다.

2. 생애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부창국민학교 4학년 때 주위의 권유로 손근수의 지도아래 체조를 시작하였다. 주종목은 평행봉과 링이었으며 순발력이 뛰어나고 링에서는 수평버티기와 물구나무서서 10자잡기에 자신감이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는 세계무대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조차 중국과 일본이 주름잡고 있어 한국에게는 불모지[6]나 다름없었던 기계체조 종목에서 혜성같이 등장하여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제대회 데뷔전이었던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7] 한 것을 시작으로, 성인무대에서는 1986 아시안 게임에서 개인전에서 금1, 은1개를 획득했으며, 한국 체조사상 최초로 남자 단체전에서 일본을 꺾고 준우승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주역이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남자 단체전 뿐 아니라 체조 메달 종합순위에서도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8]한다.

권순성은 미국 체조 전문 잡지인 '인터네셔널 짐내스트'로 부터 서울 올림픽에서 톱스타로 떠오를 것이라며 주목을 받았지만 1987년 10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렸던 세계선수권에서 링과 철봉에 출전했던 권순성과 박종훈의 실수로 15위를 기록하여 12위까지 주어지는 서울올림픽 단체전 출전권 자력획득에 실패했고, 1988년 1월에는 서울 올림픽에 참가할 9명의 남자 체조 선수[9] 중 1명으로 뽑히고 이를 계기로 수원시청 체조팀의 창단멤버로 입단했지만 대회 직전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에 낙마했다. 비록 조국에서 열린 서울올림픽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국가대표로서의 활동 또한 부상의 여파로 서울 올림픽 이듬해인 1989년에 마감해야 했지만 은퇴하지 않고 체조선수로서는 많은 나이인 32살까지[10] 23년 간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

3. 경력

  • 1985년 5월 서울아시아청소년체조선수권대회[11] 평행봉 1위[12]
  • 1985년 8월 고베 하계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 1985년 12월 국가대표선발전 개인종합 2위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 평행봉 1위[13], 링 2위, 도마 6위, 철봉 7위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 개인종합 8위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남자 단체[14] 2위[15]
  • 1986년 11월 23일 주니치컵 체조대회[16] 링 공동 1위 [17]
  • 1986년 11월 27일 동경국제선발체조대회[18] 링 1위[19], 철봉 4위
  • 1986년 한국체육기자연맹 선정 1986년 올해 최우수 남자 선수
  • 1987년 3월 맥도날드컵 국제체조대회 개인종합 18위[20]
  • 1987년 7월 자그레브 하계유니버시아드 마루 6위[21], 링 8위[22]
  • 1987년 10월 세계체조선수권대회[23] 남자 단체 15위[24]
  • 1987년 11월 24일 주니치컵 체조대회 남자 링 7위
  • 1988년 1월 서울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5위[25][26]
  • 1991년 10월 전국체전 남자일반부 링 1위[27]
  • 1992년 10월 전국체전 남자일반부 링 1위[28]
  • 1995년 10월 전국체전 남자일반부 링 4위[29]
  • 2022년 사단법인 세계스포츠선교회 세계스포츠선교회 대의원

4. 수상 기록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 서울 평행봉
은메달 1986 서울 단체전
은메달 1986 서울

5. 여담

  • 1981년 전국체전에 첫 출전하여 주특기인 링 종목에서 6대회 연속 금메달[30]을 포함하여 총 10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체조선수를 은퇴하는 1995년까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
  • H.O.T.3집 앨범 Thanks To에 장우혁이재원이 그에게 감사인사를 올렸다.
  • 대한민국의 여자 다이빙 선수 권하림이 그의 딸이다.

[1] 아시안 게임 당시 선수 등록명은 Kweon Soon-seong이다.[2]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선수등록 정보 기준이며 1964년 생이라는 언론보도도 있다.[3] 석사 학위 논문: 鐵棒運動 Endo 動作의 運動學的 分析(1991. 2)[4] 박사 학위 논문: 척추안정화 운동을 병행한 자세교육 프로그램이 체조 선수의 척추형태와 염증변인 및 체력요인에 미치는 영향(2011. 8)[5]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당시 기준이다.[6] 기계체조 종목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링의 김국환, 평행봉의 이영택이 금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으나 이후 대회부터 중국이 참여하면서 금메달과 멀어졌다.[7] 당시 한국체육대학교 2학년이었다.[8] 중국 (금12, 은8, 동5), 한국 (금3, 은4, 동6), 일본 (은1, 동4)[9] 권순성, 박종훈, 안봉민, 윤창선, 송유진(이상 한체대), 임군기, 임정수, 주영삼(이상 경희대), 이정식(상무)[10] 본인 스스로는 나이가 들 수록 근력이 생기는 것 같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실제로 2000년 이후에는 30대 올림픽 체조 선수들도 많아졌고 30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11] 개최장소 : 잠실실내체육관[12] 1차 9.75점, 2차 9.35점. 총점 19.10점[13] 19.65점[14] 권순성, 박종훈, 윤창선, 이정식, 주영삼, 한충식[15] 287.25점[16] 개최장소 : 일본 아이치현 체육관 (現 돌핀스 아레나)[17] 19.35점. 중국 허지광과 공동우승[18] 개최장소 : 국립 요요기 경기장[19] 9.65점[20] 총점 53.95점[21] 19.25점[22] 19.125점[23] 개최장소 : 네덜란드 로테르담 아호이 스포츠센터[24] 565.75점[25] 111.0점 (규정+자유종목)[26] 그러나 이후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에는 낙마한다.[27] 9.750점[28] 9.600점[29] 9.525점[30] 1989년~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