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권상익(權相益) |
생몰 | 1900년 11월 14일 ~ 1943년 5월 5일 |
출생지 | 함경북도 성진부 |
사망지 | 중국 만주 목단강시 적십자병원 |
종교 | 대종교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권상익은 1900년 11월 14일 함경북도 성진부(현 김책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함경도 성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5월 만주 밀산현(密山縣) 당벽진(當壁鎭)[1]으로 망명했으며, 그해 10월 대종교에 입교했다. 이후 1929년 밀산현에서 대일시교당(大一施敎堂) 찬무(贊務)와 전무(典務)를 역임했다. 이후 윤세복을 교주로 모시며 포교 활동과 민족 운동을 병행하였지만 1942년 11월 19일 국내에서의 조선어학회 사건이 벌어진 후 조선과 만주 각지에서 일제의 대종교 탄압이 가해지면서 동지 24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1943년 3월 목단강 경무처와 액하 형무소[2]에 이감되었으며, 3개월 동안 목단강성 경무청 특무과에서 혹독한 취조를 당했다.
그 후 목단강 고등검찰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무수한 고문을 받고 병보석 출옥했지만 1943년 5월 5일 목단강시 적십자병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권상익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