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후한 말기, 삼국시대의 오환족의 수령이자 아라반의 형.2. 행적
조조가 원소 사후에 원담, 원상 등을 격파했으며, 구루돈은 아라반, 호류 등과 함께 원상을 뒤따라 요서로 달아났다. 이 때 유주, 기주의 관리, 백성들 중에 오환으로 달아난 자가 십여만 호에 이르러 원상이 그 병력을 이용해 중국을 도모하려 했지만 207년에 조조가 친히 정벌해 답돈을 격파하면서 20여만 명을 죽였고 나머지 무리 만여 락은 중국으로 옮겨 거주했다.청룡 연간[1]에 조예가 요동의 공손연을 토벌하려고 하자 관구검이 재주, 계책이 있어 237년에 그가 유주의 군사들을 이끌고 양평에 도착해 요수에 주둔했는데, 이 때 구루돈은 우북평 오환선우로 있다가 호류와 함께 예전에 요동으로 달아났던 무리 5천여 명을 이끌고 위나라에 항복했다.
관구검기공비에 따르면 토구장군인 오환선우가 있다는 구절이 남아있는데, 왕국유(王國維)의 주장에 따르면 가장 먼저 나오는 토구장군 오환선우는 위나라에 항복한 구루돈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구루돈은 관구검을 따라서 고구려 공격에도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구루돈은 비류수 전투 이후 기록에서 사라지는데, 당대 기록을 보면 위군이 철수할 때 오환군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일체 나타나지 않으며 3세기 후반 낙동강 일대에서 갑자기 오환 계통의 유물이 나타나는 점을 들어 위군이 구루돈을 비롯한 오환군을 버리고 돌아갔고, 갈 데가 없어지자 낙동강 일대로 남하했다는 설이 있다.[2]
3. 창작물에서
소설 조자룡 하북제패에서는 난루의 조카로 조운이 유성 바깥의 오환 부락을 찾아오자 인사했으며, 조운이 고구려로 가는 것을 돕는 역할을 했다.[1] 233 ~ 236년이다.[2] 비슷한 사례로 342년 선비족 모용부의 나라인 전연의 모용황이 342년 11월 고구려를 침공해서 수도를 탈탈 털었지만 별동대 1,5000명이 전멸당했다고 하는데 모용황이 귀국 과정에서 잔존 별동대를 수습했다는 기록이 일체 나타나지 않고 이후 신라에서 '기병 집단'이나 다소 이질적인 군사 집단에 대한 서술이 나와 생존자들이 신라로 망명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