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43

광명성 위성

광명성 4호에서 넘어옴
1. 개요2. 상세
2.1. 광명성 1호2.2. 광명성 2호2.3. 광명성 3호
2.3.1. 1호기2.3.2. 2호기
2.4. 광명성 4호
3. 여담

1. 개요

북한이 발사한 인공위성의 명칭이다. 흔히 광명성 '로켓'이라고 보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틀린말이었...으나 2016년 2월 발사되어 광명성 4호를 궤도에 올린 발사체의 이름이 광명성 로켓으로 붙으며 이제는 맞는 말이 되었다.

2. 상세

1호를 발사하는데 쓰인 발사체는 백두산 로켓이고, 2, 3호를 발사하는데 쓰인 발사체는 은하 로켓이고, 4호를 발사하는데 쓰인 발사체는 광명성 로켓이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발사체 탑재 위성 발사일시 발사장소
북한명 한미명 북한명 미국명
백두산 로켓 대포동 1호 광명성-1호 1998.8.31. 화대군 무수단리
동해위성발사장
은하-1 (추정) 대포동 2호 미상 2006.7.4.
은하-2 광명성-2호 2009.4.5.
은하-3 (1차) - 광명성-3호 1호기 2012.4.13.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은하-3 (2차) - 광명성-3호 2호기 KMS 3-2 2012.12.12.
광명성 - 광명성-4호 KMS-4 2016.2.7.
천리마-1 (1차) - 만리경-1호 1호기 - 2023.5.31.
천리마-1 (2차) - 만리경-1호 2호기 - 2023.8.24.
천리마-1 (3차) - 만리경-1호 3호기 MALLIGYONG-1 2023.11.21.
미상 - 만리경-1-1호 - 2024.5.27.

2.1. 광명성 1호

광명성 1호는 1998년 8월 31일 백두산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으나, 궤도에 진입하는데 실패했다. 북한은 지표면으로부터 최단 218.82 km, 최장 6,978.2 km의 타원궤도를 165분 6초 주기로 돌고 있으며, 김일성장군의 노래 등을 모스 부호 27 MHz로 전송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광명성 1호는 30kg 정도의 초경량 위성이라고 한다.[1]
파일:광명성-1호 모형.png
북한이 공개한 《광명성-1》호 모형

2.2. 광명성 2호

광명성 2호는 2009년 4월 13일 은하 2호 로켓[2]에 실려 발사되었다. 북한은 광명성 2호도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선전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이를 구라로 본다. 나중에 보도된 분석기사에 따르면 정상 궤도까지 진입하는데는 성공했으나, 3단로켓의 분리가 잘 안되어서 안정적인 궤적을 그리는데는 실패하고 추락했다고. 이 위성은 본체의 표면을 태양전지판으로 두르고 있다고 한다. 자체동력을 가지고 있는 셈.

2.3. 광명성 3호

2.3.1. 1호기

광명성 3호는 2012년 4월 13일 오전 7시 39분경 발사되었다.[3] 하지만 발사 1분여 후에 그대로 군산 부근 서해 바다로 입수해버렸다.

이로써 광명성은 세번 실패했다. 2호는 1호의 두 배는 넘게 날아갔지만, 3호는 1호의 세 배는커녕 1/3도 못 날아가면서 가장 처참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로켓 개발에서 실패는 원래 다반사고, 현재 우주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조차도 초기 위성은 몇 번 실패했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 같은 경우는 원래 기술도 모자란데다가, 자원도 한정되어 있고, 제재를 받기 때문에 개발조건이 더욱 열악하여, 이런 실패는 처참한 결과가 아니라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계속 단점을 보완한 듯 하다.[4]

북한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00kg의 질량을 가지고 있으며 수명 2년의 기상위성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접철식 태양전지판까지 있는 것으로 봐서는 광명성 2호보다는 훨씬 기술적으로 발달한 듯 하다.

전체적인 형태는 위성 몸체에 태양전지판을 붙인 대한민국우리별 1호와 유사하며 관측용 카메라와 기상센서 등을 탑재하고 있다.[5]
파일:external/archivenew.vop.co.kr/09112407_zz2.jpg
외신기자들에게 《광명성-3》호 인공위성을 설명하는 북한 연구원.
한편 미국의 인공위성 전문가 오버그는 4월 9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공위성이 가짜라는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인공위성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우주에서 과열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서, 클린룸에 보관해 사람의 접촉이나 호흡으로부터 차단되어야 한다.[6] 또 이미 로켓에 탑재해 발사준비를 마쳤어야 하지만 북한은 명색이 인공위성인데 그 인공위성이 있는 방 안으로 취재진을 들어오게 하고, 심지어 아주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허용했다는 것. 또 인공위성의 부스터(추진로켓)가 일반 위성보다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 북한이 광명성 3호의 모형을 공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오버그의 인터뷰는 어디까지나 추측에 가깝다. 이렇게 자세한 정보 없이 그냥 얼핏 공개된 사진이나, 단편적인 정보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오버그 말고도 북한 위성 관련 뉴스에서 상당히 많았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로켓/미사일 기술을 저평가하는 원인이 되었다.

2.3.2. 2호기

2012년 12월 12일, 이번에는 은하 로켓이 발사에 성공해버렸다. 오전 9시 49분 46초에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된 은하 3호 로켓에는 광명성 3호 모델의 제2호기가 인공위성이 실려있었고 발사 9분 27초만에 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고. 미국 NORAD도 이를 확인했다. 위성 식별 ID는 39026, 국제코드는 2012-072A로 등록.

광명성 3호 2호기는 저고도 극궤도 태양동기원궤도 위성으로 분류되며(우리별이나 아리랑 시리즈도 극궤도 태양동기원궤도 위성), 97.4도 궤도 경사각에 근지점 고도 499.7km, 원지점 고도 584.18km인 극궤도, 공전 주기는 95분 29초. 하루 14~15회씩 지구 주위를 돌게 되며, 한반도 바로 위를 지나는 것은 2~3일에 한번 꼴. 실시간 광명성 3호 궤도

북한 서해위성발사장 총책임자에 따르면 광명성 3호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전송하고 최소 2년간 필요한 관측 사진 등 위성자료들을 전송한다고 한다.


12월 20일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광명성 3호가 포착됐다. 남아공 위성관측가인 그레그 로버츠가 유튜브에 영상을 공개했는데, 광명성이 8초에 한 번씩 깜빡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약 16초에 한 번씩 공중제비를 돌면서 위성의 앞, 뒤 두 표면이 번갈아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 위성이 공중제비를 돌면 지구를 계속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정상 교신이 어렵다. 아직까지 광명성 3호와 교신이 되지 않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으로 판단할 수 있다. 지상관제국과의 교신은 2012년 12월 22일 현재도 못하는 걸로 추정된다.

광명성 3호 2호기가 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함으로써 북한은 자체 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를 자국 땅에서 발사한 국가를 칭하는 스페이스 클럽에 10번째로 가입하였다. 하지만 발사 성공하였고 지상 센터와 교신에는 실패하였다.

2023년 9월 16일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소멸한 것으로 판단된다. #

2.4. 광명성 4호

광명성 로켓에 탑재되어 날아간 위성.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광학 촬영 기능이 있는 위성이라고 하나 정확한 사양은 불명이다.

2023년 6월 30일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소멸한 것으로 판단된다. #

3. 여담

  • 영어권 기술관련 블로그 '기즈모도'에서 올린 광명성 3호의 풍자 그림파일. 발사 이후 통제가 안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이 지적을 빗댄 모습.# 애초 목적이 위성이 아니었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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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련이 처음 성공시킨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은 83kg정도이고 미국이 처음으로 올린 익스플로러는 13kg 정도이다.[2] a.k.a. 대포동 2호[3] 4월 15일이 김일성의 생일이라서 이를 기념하려고 발사하는 듯 하다.[4] 다만 그것들도 냉전시대가 끝난직후 막장이 되어있었던 러시아의 배신자로부터 기술을 수입했다거나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의 기술자들로부터 수입했다는 이야기들이 정설로 꼽히거나 추측되고 있다.[5] 사실 1992년에 "위탁"발사된 우리별 1호도 영국 서리대학에서 조립만 했다고 할 정도로 당시 말이 많았다.[6] 인공위성을 연구, 조립하는 과정을 관람한 경험에 의거하면 일반인과 차단이 되어있고 조립장소는 완전히 밀폐된 장소로 정화되고, 연구원들 또한 반도체 공장과 같은 수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민감한 첨단 제품인 인공위성인데 저렇게 아무 데나 방치하는 건 이상하다. 대개 이런 경우 박물관이나 대중에 쉽게 공개할 수 있는 모형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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