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06 11:15:01

공자 개방

公子 開方
생몰년도 미상

1. 소개2. 생애3. 위문공과의 동일 인물설

1. 소개

제환공 대의 제(齊)나라간신. 원래는 학덕후로 이름난 위의공의 아들이었다. 그는 위나라를 버리고 제나라로 가서 봉직했다고 한다.

2. 생애

개방은 원래 위 의공의 태자였다. 위 의공이 제 환공과 싸워 패한 뒤 그를 시켜 예물을 보냈는데, 그 예물을 제 환공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공자 개방은 제나라의 강성함과 부유함에 반해 눌러 앉아 봉직했다. 제 환공은 그 일로 공자 개방이 충심이 있다고 여겼으나 관중(管仲)이 말했다.

"역아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해야 할 부모가 임금에게 바쳤고, 수초는 자신을 아끼는 게 인간의 본능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공자 개방은 원래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게 인간의 도리인데, 그렇지 않았으니 믿을 수 없습니다."[1]

훗날 관중이 죽을 때 제 환공에게 유언으로 그들을 몰아내라고 했고, 제 환공이 그 말에 따랐으나 습붕마저 죽고 포숙이 그 뒤를 잇자 제 환공은 포숙의 조언을 무시하고 역아, 수초, 개방을 모두 불러들였다.

제 환공이 무거운 병이 들어 죽어갈 때 역아, 수초, 개방은 제 환공을 유폐시키고 권력 다툼을 했다. 그 일로 인해 제 환공은 굶어 죽고 말았다. 권력 다툼이 끝나 공자무휴와 역아, 수초의 무리는 송양공에 의해 제거되고, 제 환공의 장례를 간신히 치를 수 있었다. 개방은 공자 반(潘)을 섬겼고, 제효공이 죽고 공자 반을 세워 제소공이 되게 해 무사할 수 있었다.

3. 위문공과의 동일 인물설

위문공의 원래 이름은 벽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발견된 청화간에는 벽자와 유사한 한자를 사용한 계방이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계방이라는 이름에서 계라는 글자가 한경제의 이름과 같아서 대체된 글자가 개(開)자로 제환공의 삼간이라고 알려진 공자 개방과 같은 이름이 된다. 위나라 종실에서 가까운 두 인물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이런 의견에 따르면 제환공이 왕위에서 거리가 있는 개방을 대신으로 삼았으나[2] 위나라가 크게 파괴되면서 그가 즉위해야 할 상황이 되자 위나라를 재건하는 것을 도와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삼간 취급을 받은 것은 위나라를 재건시켜줬음에도 불구하고 왕위 계승 중에 정치적 영향을 끼친 개방을 제나라 입장에서 비난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어 위키에는 이름이 실전된 위나라의 공자를 실수로 개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사료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위나라같은 강대국의 후계를 포기하고 귀순했으니 제나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탐하겠냐며 간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 공자맹자등도 이나라 저나라 떠돌아 다니며 자신의 뜻을 펼치려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시대쯤 되면 타국에 자신을 PR하여 등용되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리므로 나라사랑 운운보다는 이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2] 개방은 위의공의 친자식으로 나오지만 위문공은 왕위에서 밀린 소백 완의 자식, 그것도 유명한 악녀인 제나라 공주 선강과의 자식으로 위의공의 조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