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제주 고씨[1] |
출생 | 1919년 3월 19일[2] |
강원도 정선군 정선면 봉양리[3] | |
사망 | 2009년 11월 23일 |
서울특별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165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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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고광돈은 1919년 3월 19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면(현 정선읍) 봉양리에서 아버지 고영근(高韺根, 1890. 2. 21 ~ 1945. 2. 7)과 어머니 강릉 최씨(1901. 10. 2 ~ 1981. 12. 8)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춘천농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8년 9월 말, 조국의 독립을 실현할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에 가입하여 1940년 3월 졸업 때까지 농촌의 계몽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했다.
춘천농업학교 졸업 후에는 함경북도 무산군 읍면 성천동(현 무산군 무산읍)으로 이주하였고, 무산영림서(營林署)에 임업수(林業手)로 취직하여 근무하는 한편, 일전에 가입한 독서회 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1940년 12월 10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미결수로 투옥되었다가, 1942년 10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당일 출옥하였다.
1940년 9월 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
출옥 후에는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다가 8.15 해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그 뒤에는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다가 2009년 11월 23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고광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25일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