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경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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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단
http://infor.sahak.or.kr/portal_main.asp2015년 사립대학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4.5%로써 다소 낮은편이다.(전국 평균 56.9%)
사립대가 대부분 그렇듯 재단이 매우 열악한데, 경기대는 그중에서도 심하다. 재단의 모체가 여행사 하나이며 한해 벌어 들이는 수익금이 7천2백만원으로 전국 하위권에 속한다. 즉,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교비는 전액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된다.
2014년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율 현황 운용수입중 등록금 비율이 70.1%로...전국평균 63.2%보다 약간 높다.
당연히 부패할 대로 부패했고 총장 및 재단 이사장은 손씨 일가를 벗어나본 적이 거의 없다.[1] 2000년대 중반 교육인적자원부의 중재로 겨우 손씨 일가의 독재를 벗어나게 되었지만, 워낙 손씨 일가가 해쳐먹은 게 많기 때문에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 덤으로 교직원들이 구 재단편이라는 건 비밀도 아니다(...)[2]
특히 손씨 일가 마지막 손종국 총장은 총장과 이사장을 왔다갔다하며 눈에 띄게 해쳐먹었다. 덕분에 학생을 더 받기 위해 신설 학과는 부지기수로 생겼지만 관련 시설 증설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으며 신설학과 학생들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해야 했다.
물론 기존 학생들도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90년대에는 손씨 일가 퇴진을 위해 시위를 하던 학생들과 장학금을 끊는다고 학교 당국측에게 협박당한 운동부 학생들 사이에 손도끼와 쇠파이프가 오가는 집단난투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이사진은 이런 학내 분위기를 잠식시키고 외부의 인지도를 위해 공약을 자주 걸었는데...
- 80년대 의대 유치 실패
- 90년대 한의대 유치 실패
- 로스쿨 유치 실패[3]
그래도 현재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중재에 의한 외부 이사진의 영입으로 그나마 학교가 학교다워지고 있다는 평이 여기저기서 들리지만. 2010년 들어서는 전 총장 손종국이 학교운영권을 되찾으려고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동국대나 몇몇 기업등이 인수전을 벌였던 적이 있었지만 흑역사에 가깝다.
2011년 9월 8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 회의에서 경기대학교가 안건으로 올라왔는데,구 재단 복귀가 결정되었다. 아직 최종 결정된 건 아니지만,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동안 보여준 결정을 보면 심히 막장이라...[4]. 2012년 7월 13일 결국 사분위에서 정상화라고 쓰고 구 재단 복귀라고 읽는 결정을 내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 재단이 완벽하게 복귀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재단이사 7명 가운데 3명이나 구 재단과 연관된 인사인 것이 문제다.
2. 구 재단 복귀
전 인창의숙 이사장. 현재는 이사로 활동 중. 참고로 인창의숙은 경기대 서울캠 옆의 경기초, 인창중고등학교를 거느린 재단이다. 손 여사가 제 18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교육부 파견 정이사로서 이사회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박승철 전 경기대 이사장이 법학과 교수 채용부정으로 인해 사퇴한 이후 바로 가천대학교 특임부총장 겸 석좌교수로 임명 받은 그의 행보에도 구린내가 많이 난다. 심지어 손희자 이사장은 학생, 교수, 직원들에게 모두 욕을 쳐먹고 있는 박승철 이사를 내치기는 커녕 감싸주고 있어 둘 사이에 무슨 커넥션이 있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박승철 이사장이 채용한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의 아들 법학과 김모 조교수의 임용무효처분소송에서 원고 정모씨의 승소 판이 나자 박승철 이사는 이사직에서 사퇴했다. 경기대 체대 명예교수 전모 씨가 후임이사로 선출됐다.3. 손씨 일가의 퇴출
2021년 6월 30일 비리 및 인사 개입 의혹으로 한동안 논란이 제기됐던 손종국 전 경기대 총장이 학교와 관련된 모든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경기대학교는 손씨 일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지리적인 장점과 '경기'대학교라는 명칭 상의 이점을 그동안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경기대의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다.[1] 설립자가 아니다. http://www.kyonggi.ac.kr/webService.kgu?menuCode=K00M000105 참고[2] 사분위 회의에 직원노조 위원장이 구 재단측 대표 중 1명으로 참석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사실 학교에서 유치하려는 의지도 없었다.[4] 상지대학교, 세종대학교, 조선대학교항목 참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