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국시대의 강족에 대한 내용은 가오(삼국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賈午
(260 ~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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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서진의 인물이자 가충의 4녀로 가남풍의 여동생이다. 사례 평양군 양릉현 사람.2. 생애
사마충의 태자비로 예정되었다가 가오는 키가 작고 몸이 작아서 성인 옷을 입지 못했다는 이유로 270년에 가남풍이 태자비가 되었다.결혼 전부터 남편과 사통한 것으로 유명했다. 어느날 연회에서 아버지 가충의 비서인 한수(韓壽)에게 반해 이름을 알지 못하다가 여종을 통해 이름을 알게 되고 자나 깨나 한수에 대해 생각했다. 여종이 한수의 집으로 가오를 모실 때 이에 대해 한수에게 전했는데, 한수가 이를 듣고 가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 몰래 편지를 통해 왕래해 밤마다 만났다. 당시 무제는 서역에서 조공으로 받은 기이한 향을 가충에게 하사했는데, 이를 가오가 몰래 훔쳐 한수에게 주면서 그 향기를 맡은 가충이 조사 끝에 가오가 건넸음을 알게 되고 시녀를 문책해 둘이 사통한 지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자 가오를 한수에게 시집보냈다. 이에 대해 <고사경림故事瓊林>에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그리고 한수와의 사이에서 한밀(韓謐)이라는 아들을 낳았다.[3]
가남풍이 자식을 낳지 못하고 낙양에서 가남풍의 집안이 멸하게 되리라는 동요가 퍼지자 곽괴가 가오, 조찬이 네(가남풍) 일을 어지럽힐 것이니 자신이 죽은 후에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지만 가남풍은 가오, 조찬을 받아들였으며, 가오는 조찬 등과 함께 가남풍이 계책을 꾸미고 사마휼을 비방하는 것에 참여했다.
300년에 사마륜이 가남풍을 몰아내면서 아들 가밀과 함께 살해당했다.
[1] 여기서 곽씨는 가오와 가남풍의 어머니인 곽괴를 말하며 집안의 대를 끊은 일이란 두번씩이나 자신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유모를 때려 죽이는 바람에 두 어린 아들이 충격으로 시름 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던 일을 뜻한다.[2] 사실 현대적인 기준으로는 어머니인 곽괴나 언니인 가남풍의 행위는 마찬가지로 경악을 할 만한 일인 것에 반해 가오가 한수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대시한 것은 그냥 그 나이 또래의 젊은 여자라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이다. 딱히 잘못한것도 없는데 욕만 먹었다[3] 훗날 아들이 없는 가충의 손자로 들어가 가밀로 이름을 바꿔 가씨 가문을 잇게 했고 그후 가남풍 세력의 주요 핵심 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