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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 | 하다카노 라리즈 |
멤버 | 나가타 미키오(베이스) 미즈타니 타카시(기타, 보컬) 쇼다 슌이치로(드럼) 나카무라 타케시(기타) |
장르 | 사이키델릭 록, 노이즈 록 |
결성 | 1967년 |
국가 | 일본 |
활동 | 1967년 ~ 19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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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다카노 라리즈(裸のラリーズ/Les Rallizes Dénudés)는 1967년 일본 교토 시에서 결성되고 1996년 해체한 노이즈 록, 익스페리멘탈 록 밴드이다.2. 상세
리더였던 기타/보컬리스트 미즈타니 타카시(水谷孝)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본래 1962년 예술, 음악 창작 집단으로 시작되었으며 1967년 들어 록밴드의 형태가 되었다. 밴드의 이름 '알몸의 라리즈(하다카노 라리즈)'는 윌리엄 S. 버로스의 소설 네이키드 런치와[1] 당시 전공투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인해 몽롱해진 상태를 의미하던 속어 '라리루(ラリる)'에서 따온 것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60년대의 학생운동과 전공투와 깊은 관계가 있었으며, 초창기 베이시스트였던 와카바야시 모리아키(若林盛亮)는 1970년 요도호 사건에 가담해 북한으로 망명해 현재까지 북한에서 살고 있다. 이외 훗날 산디 앤 더 선셋츠로 알려진 쿠보타 마코토나 무라하치부의 야마구치 후지오도 잠시 거쳐간 적이 있다. 프랑스어로 'Les Rallizes Dénudés'라는 이름도 지었으며 해외에는 주로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2]3. 역사
초기에는 현대예술 극장이나 대학교 바리케이드 콘서트[3]등지에서 주로 공연했으며 엄청난 음량으로 인해 공연 중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1970년에 도쿄로 활동지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공연 활동을 개시한다. 지미 헨드릭스, 핑크 플로이드, 제퍼슨 에어플레인, 블루 치어, 일본 음악가 중에서는 잭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블루 치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록의 초창기에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극단적인 기타 노이즈와 웅얼거리는 보컬, 멜로딕한 베이스 라인 등 독특한 고유의 노이즈 록 작법을 완성했으며 이후 일본의 아방가르드, 실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당대 일본은 물론이고 영미권 등 해외에서도 찾기 어려운 독창적이고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다.[4] 가사는 보들레르 등 프랑스 상징주의 사조의 영향을 받았고 그 문학성 자체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실제로는 웅얼거리는 창법에 보컬에 리버브가 심하게 깔려 있는데다 기타 노이즈가 워낙 시끄러워서 따로 가사집을 보지 않고서는 거의 알아듣기 힘들다.60년대부터 거의 30년간 활동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충분히 인지도가 있음에도 음반 등은 거의 발표하지 않고 공연을 위주로 활동했다. 정식 발매된 앨범은 1991년 미즈타니가 잠시 프랑스에 체류했을 당시 발매된 스튜디오 앨범 2장에 라이브 앨범 1장이 전부이고, 이마저도 극소량만 찍어내 현재는 부르는 게 값인 희귀반이 되었다. 그 대신 공연들을 녹음한 부틀렉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으며, 물론 해적판 음반이지만 밴드는 이런 부틀렉 음반들의 유통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그런 덕에 부틀렉들이 엄청나게 많다. 알려진 것만 100개가 넘는 정도이다. 밴드의 주축인 미즈타니 타카시는 종잡을 수 없는 행보와 극도의 신비주의 등으로 인해 [5] '일본의 밥 딜런'[6]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파격적인 스타일으로 일본 실험 음악의 1세대로 꼽히며 이후 일본 아방가르드 음악이 번성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후시츠샤, 게로게리게게게, 히조카이단, 메르츠보우, 더 나아가서는 보리스, 보어덤스 등 일본의 후대 아방가르드, 재패노이즈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불싸조의 한상철은 나아가 MONO, 월즈 엔드 걸프렌드 등의 일본 포스트 록 밴드들도 크게 보아 이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이즈 록을 파다 보면 한번쯤 접하게 되며, 해외의 노이즈 록 마니아들과 힙스터들에게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 앨범은 91년 발매된 1977년 3월의 공연 녹음을 담은 라이브 앨범 "'77 Live"나 마찬가지로 라이브를 녹음한 부틀렉 앨범 "Heavier Than a Death in the Family", "France Demo Tape" 가 추천된다.
밴드의 주축 미즈타니 타카시는 2019년 12월 11일 작고하였으며, 이 사실은 2021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알려졌다. 미즈타니 사후 밴드는 해적판 음반들의 유통을 막고 정식으로 음원을 발표하는 등 커리어를 정리하고 있다.
굉장히 뜬금없게도 레이디 가가가 이 밴드의 이름이 씌여진 티셔츠를 입은 적이 있다.
쯔꾸르 게임 Space Funeral의 마을 맵 브금으로 밴드의 곡 중 하나인 white waking이 나온다.
참고용 블로그
4. 디스코그래피
1991 '67–'69 STUDIO et LIVE
1991 MIZUTANI / Les Rallizes Dénudés
1991 '77 LIVE
1996 Les Rallizes Dénudés
2021 White Awakening
2022 Vertigo Otherwise My Conviction
2022 The OZ Tapes
2023 Romance of the Black Pain Otherwise Fallin' Love With
2023 CITTA' '93
2023 BAUS ‘93
2024 The Last One〈Poésies : Les Rallizes Dénudés〉
1991 MIZUTANI / Les Rallizes Dénudés
1991 '77 LIVE
1996 Les Rallizes Dénudés
2021 White Awakening
2022 Vertigo Otherwise My Conviction
2022 The OZ Tapes
2023 Romance of the Black Pain Otherwise Fallin' Love With
2023 CITTA' '93
2023 BAUS ‘93
2024 The Last One〈Poésies : Les Rallizes Dénudés〉
[1] 그러나 와카바야시 모리아키는 이 설에 대해 부정했다.[2] 그러나 프랑스어로 제대로 쓰면 Rallizes가 아니라 rallises라는 표기가 맞다고 한다.[3] 당시 경찰 등의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세워 두고 하던 반체제 공연.[4] 이들과 비슷한 성향의 뉴욕 노 웨이브가 70년대 후반에 등장했고 글렌 브랑카와 그에 영향받은 영미권 노이즈 록의 대표 소닉 유스의 결성이 1981년이었다. 즉 후대의 노이즈 록 음악보다 거의 10년 이상 앞서간 것이다. 참고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거의 동시기에 결성되었다.[5] 생전 제대로 직접 한 인터뷰가 뮤직 매거진 1991년 11월호가 유일할 정도다.[6] 물론 음악 면에서가 아니라, 극도로 폐쇄적이고 속을 알수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만 미즈타니는 솔로로서 사이키델릭 포크 성향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