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17 04:25:01

Ever17 -the out of infinity-/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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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늘어지는 중반부의 전개2. 서술 트릭에 지나친 의존3. 결말 부분의 무리한 매듭짓기4.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개연성


Ever17 -the out of infinity-이 세상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 ~YU-NO~, Steins;Gate와 함께 SF 어드벤처물의 명작이라고 손꼽히고 있지만, 문제점이나 비판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늘어지는 중반부의 전개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점으로, 초반부의 전개 부분과 종반부의 반전 및 해소 부분 사이를 연결하는 중반부의 전개가 늘어져서 지루하다는 평이 많다. 공통 이벤트로 발생하는 발전기 고장, 깡통차기, 창고 침수 등등의 부분도 한 번 보고 나면 다른 루트에서는 별로 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고 스킵 버튼만 연타하게 된다.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이 부분을 수용해서 중반부 전개를 일부 생략하는 방식으로 수정을 했지만 여전히 지루하다는 평이 많다. 후반부의 강렬한 반전으로 보상받기는 하지만 지루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늘어지는 중반부의 전개의 핵심 원인은 결국 등장 인물 간의 갈등의 부재로 귀결할 수 있다. 초반 작중의 상황과 등장 인물을 소개하는 전반부와 후반부에 반전이 일어나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후반부 사이를 메꿀 중반부의 핵심은 등장 인물 간의 갈등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데, EVER17에는 등장 인물 간의 갈등 구조가 거의 없다. 밀폐된 공간에서 언제 침수될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 닥친 등장 인물들이 만난 지 하루 만에 서로 이름으로 부르면서 술래잡기로 친목을 도모하는 전개에서 갈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츠구미나 소년의 돌발 행동이 일시적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작품의 전체 흐름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중반부의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켜 줄 갈등 구조가 없으니 템포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2. 서술 트릭에 지나친 의존

작중에 등장하는 몇몇 복선은 서술 트릭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몇몇 부분은 개연성마저 손상시키기도 한다. 한 예로 초반부 제어실에 모여서 인원 점검을 할 때 생체 반응이 6으로 나왔는데도 등장인물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직 이 부분에서는 소라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소라의 정체를 알고 있는 소라 본인과 유우는 반응을 해야 한다. 또한 전작 Never7을 플레이한 사람을 의식하여 플레이어의 전개 예상을 타임 슬립으로 몰고 가려고 하지만 그게 노골적이라서 오히려 역으로 타임 슬립을 선택지에서 제거하게 만든다.

또한 플레이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점을 이리저리 바꿈으로써 마치 루프물 혹은 평행 세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사실은 17년 후였다'라는 식으로 반전을 주는 것도 플레이어를 정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속이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3. 결말 부분의 무리한 매듭짓기

초반부에 수심 51m의 수압 때문에 밖에 나가자마자 수압에 못 이겨서 죽거나, 설령 이겨낸다 하더라도 아무런 도구없이 맨몸으로 51m를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소라의 설명으로 헤엄쳐 나가는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아 놓았음에도, 코코편 결말 부분에는 너무나 어이없이 맨몸으로 수심 119m를 오가는 기행을 선보인다. 호쿠토는 아빠를 구하기 위해 석판을 끌어안아 119m를 바로 잠수하고, 츠구미를 구하기 위해 장렬하게 해저 119m 아래에 쳐박힌 타케시도 호쿠토의 '아빠 일어나'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나 다시 IBF로 헤엄쳐 돌아온다.

이 모든 것들이 '큐레이 바이러스로 신체가 강화되었기 때문'으로 설명해버리니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맥이 빠진다. 결국 츠구미편에서 타케시와 츠구미는 손에 손을 잡고 헤엄쳐 올라왔으면 그만이었을 상황에서 나름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며 신파극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코코편 이전에 사이펀의 원리,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중성 부력 등등 과학적인 원리를 실컷 제시했으면서 결국 막판에 와서는 비상식적인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그동안의 논리적인 추리는 의미가 없어진다.

또한, 작중 최대의 반전인 제3시점(브릭빈켈, BlickWinkel)에 의한 개입도 무리한 방식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미 전작 Never7에서 써먹은 어떤 트릭을 피하면서 과거에 간섭할 수 있는 좋은 시도였지만, 그 해결 방식이 너무나 직선적이고 강압적이다. BW가 말씀하시니 해저 119m 아래에서 죽었던 타케시가 눈을 뜨고, 치사율 85%에 이르는 바이러스가 후기까지 진행되어 손도 발도 쓸 수 없는 상황이지만, BW 말씀에 따라 동면에 한 번 들어가고 나니 말끔하게 치료되었다. 분명 작중에서 동면은 신진대사를 정지시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병의 증세 악화를 저지시키는 정도밖에 안된다고 설명했지만, BW의 치료의 은사를 입으면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BW에 대한 작중 설명은 3인칭 관찰자 시점마냥 서술했지만 하는 일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

결국, 스토리를 요약하면 새드 엔딩으로 끝났던 이야기가 전지적 작가의 개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해피 엔딩으로 고쳐진다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2002년)에는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메타픽션 요소의 도입이지만, 그 이야기를 매듭 짓는 방식이 너무 단순한 나머지 그 이전까지의 모든 전개, 복선, 떡밥, 갈등 요소는 결말 부분에 가면 별로 신경 안 써도 되는 부차적인 요소가 되어 버린다.

4.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개연성

사건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BW를 불러오기 위한 '의식'으로 '17년 전의 일을 반복'하면 BW가 마치 같은 평면 상에 있는 것으로 속아서 나타나게 된다는 설정도 전혀 납득하기 힘들다. 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인물들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 세계가 속아서 제3시점이 나타나게 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냥 같은 일을 반복하면 다른 차원의 존재가 자신의 차원에 있는 줄 알고 나타나게 된다는 식이다.

물론 작품 내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작전의 입안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BW 본인이라는 게 이에 대한 설명이 되기 때문. 자신이 직접 낚였으니까, 자기 자신을 낚기 위해선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된다. 유우하루가 상세사항을 설계했다고는 하나, 전체적인 방향성은 BW가 잡은 것이므로 이렇게 보면 개연성 자체에 문제는 없다. 다만,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남긴다.

총집편인 해결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정보가 주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플레이 당시에는 제대로 고찰할 여유없이 반전의 여운과 감동에 젖어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지만, 플레이한 한참 후에 다시 생각해보면 결말 전에 주어진 정보를 조합해서는 전혀 추론해낼 수 없는 무리한 개연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제 3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건을 비슷하게 꾸민다는 게 3차원과 3차원을 붙이는 행위가 되는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지는 영역까지는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