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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nance BL 15-pounder |
1. 개요
19세기 말에 영국에서 개발된 76mm 야포. 제2차 보어 전쟁 당시 영국군의 야포였고, 일부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사용되었다.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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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이 포는 1883년에 제작된 BL 12파운드 7cwt 야포의 개량형이었다. 1892년에 기존 화약 대신 현대식 무연 추진제 코다이트가 사용되면서 12파운더는 최대 15파운드(6.8kg)의 더 무거운 포탄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이 결정되었다. 14파운드(6.4kg) 포탄이 채택되었고, 개량형 포는 15파운더로 명명되었다.1904년부터 BL 15파운더 포는 현대식 QF 18 파운더포로 대체되었다. 남은 BL 15파운더 포는 현대식 주퇴복좌기를 추가한 BLC 15파운드포로 개량되어 예비군에 "대체 QF포"로 배치되었다.
견인 시에는 보통 3쌍으로 나뉘어 6마리의 말이 견인했다.
4. 형식
- Mk I 대차: 반동은 드래그 슈(drag-shoe)로 조절되었다. 드래그 슈는 바퀴 아래에 위치했으며, 체인과 케이블로 바퀴 허브와 트레일(rail)에 연결되었다.
- Mk II 대차: 이 역시 동일한 드래그 슈 시스템과 유압식 완충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짧은 반동만 허용했고, 성공적이지 못했다.
- Mk III 대차: 1899년에 초보적인 반동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이 시스템은 차축 아래에 "삽"이 파고들어 포가 반동할 때 파고들도록 설계되었으며, 강철 와이어로 트레일에 있는 실린더의 스프링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장치가 장착된 Mk I 및 II 포대는 Mk 1*과 Mk II*로 불렸다. 후자는 유압식 버퍼를 유지했다.
발사 시 포 전체가 튀어나와 뒤로 움직였지만 스프링이 발사 위치로 되돌려주었기에 반동 메커니즘이 없는 기존 모델에 비해 발사 속도가 여전히 빨라졌다. Hogg와 Thurston은 아이러니하게도 "총이 보통 1피트(30cm) 뒤로 물러나고 2피트(61cm) 앞으로 튀어나왔고 한다."라고 언급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대차들이 나왔는데, 모두 차축 삽이 달려 있었지만 완충 장치는 없었다.
5. 실전
5.1. 제2차 보어 전쟁
1899년~1902년 제2차 보어전쟁 당시 349문이 사용되었으며 영국군은 총 233,714발 중 166,548발의 포탄을 발사했다.이 포는 최대 5,800~5,900야드(5,300~5,400m)까지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지만, 1899년에 사용된 56번 시발신관은 연소 시간이 13초에 불과해 최대 시발사거리가 4,100야드(3,700m)로 제한되었다. 당시 사용된 파편탄은 보통 적의 정면 상공에서 폭발하도록 시발사거리가 설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포수는 적에게 사격하기 위해 적으로부터 약 4,200야드(3,800m) 이내로 접근해야 했다. 신관은 최대 사거리까지 접촉 시 폭발(타격)하도록 설정할 수 있었지만, 파편이 접촉 시 폭발하는 것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이는 전쟁 후반에 5,800~5,900야드(5,300~5,400m)까지 시발사거리가 설정 가능한 57번 "청색 신관"으로 보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