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8 19:03:14

BC 잘기리스


{{{#!wiki style="margin:-10px -10px"<tablebordercolor=#00a4d2,#00a4d2>
파일:유로리그 로고 화이트.svg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파일:FC 바르셀로나 로고.svg 파일:FC 바이에른 뮌헨 바스켓발 로고.svg 파일:올림피아 밀라노 로고.svg 파일:ASVEL 로고.svg파일:ASVEL 로고(화이트).svg 파일:사스키 바스코니아 로고.svg
파일:올림피아코스 BC 로고.svg 파일:파나티나이코스 BC 로고.svg 파일:아나돌루 에페스 SK 로고.svg 파일:페네르바흐체 SK 로고.svg 파일:BC 잘기리스 로고.svg 파일:마카비 텔아비브 BC 로고.svg
}}}}}}}}} ||
파일:BC 잘기리스 로고.svg
BC 잘기리스
Krepšinio klubas Žalgiris
<colbgcolor=#08682D><colcolor=#fff> 창단 1944년
소속 리그 리투아니아 농구 리그 (Lietuvos krepšinio lyga; LKL)
유로리그 (EuroLeague)
연고지 카우나스 (Kaunas)
홈구장 잘기리스 아레나 (Žalgiris Arena / 15,415명 수용)
영구 결번 11. 아비다스 사보니스 |13. 파울리우스 얀쿠나스 | 5. 모데스타스 파울라우스카스
약칭 BC Žalgiris
파일:BC 잘기리스 로고.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우승 기록
유로리그
(1회)
1998-99
리투아니아 농구 리그
(25회 / 최다 우승)
1993-94, 1994-95, 1995-96, 1996-97, 1997-98,
1998-99, 2000-01, 2002-03, 2003-04, 2004-05,
2006-07, 2007-08, 2010-11, 2011-12, 2012-13,
2013-14, 2014-15,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2-23, 2024-2025
소련 리그
(5회)
1946-47, 1950-51, 1984-85, 1985-86, 1986-87
리투아니아 컵
(6회)
1990, 2007, 2008, 2011, 2012,
2015
FIBA 사포르타컵[1]
(1회)
1997–98
FIBA 코라치컵[2]
(2회)
1984-85, 1992-93
FIBA 인터컨티넨탈 컵[3]
(1회)
1986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시대2.3. 사보니스 은퇴 이후 새로운 시작
3. 주요 선수

1. 개요

리투아니아 카우나스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농구단이다. 유로 리그 소속이다. 잘기리스 카우나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소련 지배기부터 명문 농구단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리투아니아가 재독립한 뒤에도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농구댜이며 NBA 선수와 리투아니아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를 많이 배출한 곳이다.

리투아니아 농구 리그에서 25회, 소련 내셔널 리그에서 5회( CSKA 모스크바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록 ), 유로리그에서 1회의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둔 농구단이다. 이름은 폴란드-리투아니아-튜턴 전쟁의 잘기리스 전투(또는 그룬발트 전투)를 기념한 것이다. 이 전투는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폴란드 왕국의 연합군이 중세 유럽 최대 규모의 전투 중 하나에서 튜턴 기사단을 격파한 전투다. ‘잘기리스’는 리투아니아어로, ‘그룬발트’는 독일어로 각각 ‘푸른 숲’을 뜻한다.

2. 역사

2.1. 초창기

1944년에 창단되었다. 같은 해 나치 독일 농구단과 경기를 치렀으며, 1945년부터 1947년까지는 ASK라는 이름을,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SKIF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50년부터 팀 이름은 잘기리스로 바뀌었다. 팀은 빠르게 명성을 얻었고 1947년과 1951년 소련 프리미어 농구 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으며 리투아니아 국내 챔피언십에서도 여러 번 정상에 올랐다. 이후 1949년과 1952년에는 소련 리그에서 은메달을, 1953년부터 1956년까지는 네 차례 동메달을 획득했다. 잘기리스는 1953년 소련 농구 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60년대에는 팀의 전력이 하락했지만 모데스타스 파울라우스카스, 로무알다스 벤즈베르가스, 헨리카스 기에드라이티스, 알기르다스 린케비치우스, 세르게유스 요바이샤 등 많은 젊은 선수들이 합류했다.

1970~1990년대에 들어서며 잘기리스는 블라다스 가라스타스 감독과 발데마라스 코미치우스, 리마스 쿠르티나이티스의 합류로 소련과 유럽에서 지배적인 클럽으로 성장했다. 팀은 1971년, 1973년, 1978년 소련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2. 아비다스 사보니스의 시대

1980년에는 FIBA 유럽 컵위너스컵에 데뷔했으며, 가장 큰 변화는 17세의 아비다스 사보니스 영입이었다. 사보니스는 1981년 클럽에 데뷔한 후 뛰어난 수비력, 팀플레이, 3점슛, 페인트존 지배력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잘기리스는 소련 내셔널 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으며, 매번 결승에서 CSKA 모스크바를 꺾었다. 1985년 사포르타 컵 결승에 진출했으나 FC 바르셀로나에 패했고, 이듬해 소련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유로리그에서는 결승에 올라 KK 치보나에게 패했다. 이 시기 잘기리스는 유럽 최고 클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에는 PBC CSKA 모스크바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BC 잘기리스가 3차례나 결승문턱에서 패배했으나, 1984~1985년에는 CSKA 모스크바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무려 9년이나 이어져온 CAKA 모스크바 왕조를 끝냈고, 이후 3차례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이를 본 리투아니아 국민들이 리투아니아에 대한 재독립 열망을 드러냈기에 1990년 리투아니아가 다시 독립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농구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만들어낸 스포츠로서 다른 스포츠보다 인기가 몇 배 높아졌고 리투아니아의 국민 스포츠가 됐다.

1980년대 중반 잘기리스와 CSKA 모스크바의 라이벌 관계는 리투아니아 민족 부흥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는 Sąjūdis 민족 운동과 국가 독립 재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87년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팀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부상에서 복귀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같은 부상을 당해 1987-88 시즌 대부분을 결장했다. 해당 시즌 잘기리스는 소련 리그 결승에서 CSKA 모스크바에 패해 은메달을 차지했다. 다음 시즌에는 유럽 컵위너스컵 준결승에 올랐고 소련 리그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으나 극적인 결승전에서 스트로이텔 키예프에 패했다.

1989-90 시즌 개막 직전, 잘기리스는 사보니스, 쿠르티나이티스, 요바이샤, 코미치우스, 그리고 감독 가라스타스를 동시에 잃었다. 이는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리투아니아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진 변화였다. 같은 시즌 잘기리스는 컵위너스컵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에 패했다.

리투아니아 국가 재건법 이후 잘기리스는 소련 챔피언십을 떠났다. 그 후 팀은 1991년, 1992년, 1993년 리투아니아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1990년에는 LKF 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1994년에는 첫 LKL 타이틀을 차지하며 결승에서 아틀레타스 카우나스를 3-1로 꺾었다. 이후 2년 동안 잘기리스는 LKL 토너먼트를 다시 지배하며 1995년에는 아틀레타스를 3-0으로, 1996년에는 시리즈에서 0-2로 뒤진 후 3-2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FIBA 유럽 리그와 FIBA 유럽 컵 예선에서는 고전하며 유럽 대회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96년, 리마스 쿠르티나이티스가 복귀한 잘기리스는 1995-96 FIBA 유러피언 컵에 참가해 준결승에 올랐으나 PAOK 테살로니키에 패했다. 1997년에는 다시 LKL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결승에서 제마이티요스 올림파스를 3-0으로 꺾었고, 사포르타 컵 16강에 진출했으나 파리 바스켓 레이싱에 패했다. 이 시기 요나스 카즐라우스카스 감독 아래 다리우스 루크미나스, 긴타라스 에이니키스, 케스투티스 셰슈토카스, 다이니우스 아도마이티스, 다리우스 마스콜리우나스 등이 활약했다.

잘기리스는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에 클럽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울리우스 슈톰베르가스, 다이니우스 아도마이티스, 에우렐리우스 주카우스카스, 토마스 마시울리스, 민다우가스 주카우스카스, 그리고 프란요 아라포비치와 에니스 왓틀리 같은 외국인 선수들이 요나스 카즐라우스카스 감독 아래에서 활약했다. 1998년 사포르타 컵 결승에서 잘기리스는 스테파넬 밀라노를 82-67로 꺾었고, 사울리우스 슈톰베르가스는 결승에서 35점을 기록했다. 잘기리스는 또한 아틀레타스를 상대로 5연속 LKL 타이틀을 달성했다.

1998-99 시즌, 잘기리스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유로리그 파이널 포에 진출해 준결승에서 올림피아코스를, 결승에서 킨더 볼로냐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타이어스 에드니는 유로리그 파이널 포 MVP로 선정되었다. 같은 시즌 팀은 LKL과 북유럽 농구 리그(NEBL)에서도 우승하며 국제적으로 리투아니아 리그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유로리그 우승 다음 해 잘기리스는 최악의 시즌 중 하나를 겪었다. 유로리그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NEBL에서는 3위를 차지했으며, LKL 결승에서는 처음으로 리에투보스 리타스에 패했다. 2000-01 시즌, 팀은 새로운 유로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AEK에 패했지만, LKL 결승에서는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3-2로 꺾고 챔피언십을 되찾았다. 2001-02 시즌은 유로리그 조별 리그 탈락과 함께 LK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에 패하며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2002-03 시즌, 잘기리스는 다시 유로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으나 LK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2로 제압하고 정상에 올랐다.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스페인 ACB 리그와 NBA에서 활약한 후 2003년 클럽의 주요 소유자가 되었고, 2003-04 시즌에는 선수로도 복귀했다. 그는 유로리그 정규 시즌과 탑 16 MVP를 수상하며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잘기리스는 유로리그 파이널 포 진출에 근접했지만 마카비 텔아비브와의 경기에서 정규 시간 종료 직전 데릭 샤프의 극적인 3점슛으로 연장전에 돌입했고, 결국 패했다. 시즌은 LK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0으로 꺾으며 마무리되었다. 이 시즌 파울리우스 얀쿠나스가 잘기리스에서 데뷔했다.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2003-04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3. 사보니스 은퇴 이후 새로운 시작

2003-04 시즌이 끝난 뒤 아비다스 사보니스가 떠나자 잘기리스는 기복 있는 시기를 겪었다. 2004-05 시즌에는 타노카 비어드, 민다우가스 티민스카스, 다이니우스 살렝가와 새로 영입된 로버트 팩의 활약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유로리그 정규 시즌에서 8승 6패를 기록하며 마카비 텔아비브와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원정 승리를 거두었으나, 톱 16에서는 0승 6패로 탈락했다. 국내 무대에서는 LK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0으로 꺾었고, 결승에서 64-60으로 승리하며 초대 발틱 농구 리그(BBL) 챔피언에 올랐다.

2005-06 시즌은 팀 변화가 많았다. 민다우가스 티민스카스, 다이니우스 살렝가, 로버트 팩이 떠났고 에드 코타가 복귀하며 더 젊은 팀이 구성됐다. 다류스 라브리노비치의 활약으로 유로리그 정규 시즌을 9승 5패로 마쳤으나, 코트 밖의 문제로 톱 16에서 다시 0승 6패로 탈락했다. LKL과 BBL 타이틀도 리에투보스 리타스에 내줬다. 이 시즌의 유일한 수확은 신예 포인트 가드 만타스 칼니에티스의 성장으로, 그는 부진한 케니 앤더슨을 대신해 주전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6-07 시즌 잘기리스는 아이나르스 바가츠키스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유로리그에서 부진했다. 시즌 중 리만타스 그리가스가 감독으로 승격되고 포인트 가드 데후안 콜린스를 영입한 뒤 팀은 반등에 성공했다. 잘기리스는 새로 창설된 LKF 컵에서 우승했고, LKL 결승에서도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었다.

2007-08 시즌 전 잘기리스는 베테랑 마커스 브라운을 영입하고 처음으로 NBA 팀과 맞붙는 경기를 치렀다. 유로리그 정규 시즌에서 8승 6패로 성공적인 성적을 거뒀으나 톱 16에서 1승 5패로 탈락했다. 잘기리스는 LKF 컵에서 2년 연속 우승하며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83-72로 제압했고, BBL 결승에서는 콜린스의 결승골로 86-84 승리를 거뒀다. LKL 결승에서도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1로 꺾으며 브라운이 MVP에 선정됐다.

2008-09 시즌은 요나스 마추일리스와 로렌 우즈의 재계약, 마커스 브라운의 잔류, 새 포인트 가드 윌리 딘 영입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성적이 하락했고, 리만타스 그리가스 감독이 해임되며 긴타라스 크라피카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유로리그에서는 7연패를 기록하며 윌리 딘이 방출됐고, 만타스 칼니에티스가 팀을 이끌며 반등했지만 정규 시즌 2승 8패로 톱 16 진출에 실패했다. 재정 문제와 로렌 우즈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잘기리스는 LKL, BBL, LKF 컵 결승에 모두 진출했으나 세 대회 모두 리에투보스 리타스에 패했다. 시즌 종료 후 팀의 핵심인 요나스 마추일리스와 파울리우스 얀쿠나스가 팀을 떠났다.

2008-09 시즌 동안 잘기리스는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했다. 2009년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자신의 지분 대부분을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가 이끄는 우키오 방코 투자 그룹(ŪBIG)에 매각했고, 이 그룹은 클럽 지분 75%를 확보했다. 사보니스는 21.5%를 유지했으며, 3%는 소수 주주가, 0.5%는 카우나스 시가 소유했다.

2009-10 시즌에 요나스 마추일리스와 파울리우스 얀쿠나스가 떠난 뒤 팀은 마커스 브라운과 재계약하고 마르티나스 포치우스를 영입했다. 그는 곧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잘기리스는 만타스 칼니에티스와도 재계약했고, 시즌 초에는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고 새로운 BBL 컵을 우승했다. 그러나 성적 부진으로 긴타라스 크라피카스 감독이 해임되고 라무나스 부타우타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부타우타스는 유로리그 정규 시즌을 3승 7패로 마무리하며 팀을 톱 16에 진출시켰고, VTB 리그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로마노프는 부타우타스를 경질하고 다리우스 마스콜리우나스를 감독으로 앉혔다. 잘기리스는 BB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고 타이틀을 되찾았지만, LKL 결승에서는 3-4로 패했다. 시리즈 중 로마노프가 마스콜리우나스를 해임하고 마커스 브라운을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하면서 의도적으로 결승을 내줬다는 논란이 발생했고, 이 시즌은 클럽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해로 알려져 있다.

2010-11 시즌을 앞두고 잘기리스는 파울리우스 얀쿠나스, 데후안 콜린스와 재계약하고 토마스 델리닌카이티스를 영입했으며, 세르비아 출신 알렉산다르 페트로비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시즌 초 강력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부진이 이어지자 로마노프는 페트로비치를 해임했고, 팀은 5승 5패로 가까스로 유로리그 톱 16에 올랐다. 이후 미르자 베기치의 팀 이탈과 함께 부진이 이어졌고, 새 감독 일리아스 주로스 아래 톱 16에서 1승 5패로 탈락했다. 그러나 마커스 브라운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 잘기리스는 LKF 컵과 BBL에서 우승하고 LK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1로 꺾으며 2008년 이후 처음으로 LKL 타이틀을 되찾았다.

2011-12 시즌에는 NBA 파업의 영향으로 소니 윔스와 타이 로슨을 영입하고 마르코 포포비치와 재계약했다. 또한 전 리에투보스 리타스 주장 로베르타스 야브토카스를 센터로 영입했다. 하지만 시즌 초 부진으로 일리아스 주로스 감독이 경질되고 알렉산다르 트리푸노비치가 부임했다. 유로리그 정규 시즌을 4승 6패로 마무리했으나 톱 16에서 조기 탈락했다.

타이 로슨의 팀 이탈 후 만타스 칼니에티스가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고, 잘기리스는 LKF 컵을 우승했다. BBL 파이널 포 결승에서는 부상과 전력 손실에도 불구하고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었다. 토마스 델리닌카이티스와 마르코 포포비치의 활약으로 잘기리스는 LKL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3-0으로 제압하며 리그, 컵, 발틱 리그의 두 번째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2012-13 시즌 잘기리스는 리투아니아 국가대표 선수 리만타스 카우케나스, 다류슈 라브리노비치, 크시슈토프 라브리노비치, 트레멜 다든, 포인트 가드 올리버 라피예트를 영입했다. 시즌은 새로 창설된 LKF 슈퍼컵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으며 시작됐다. 시즌 초반 만타스 칼니에티스가 팀을 떠났고 이브라힘 자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안 플라자 감독의 지휘 아래 잘기리스는 유로리그에서 5연승을 기록하며 13년 만에 조 1위(8승 2패)로 톱 16에 진출했다. CSKA 모스크바와의 홈 경기에서는 15,812명의 관중을 모으며 구단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재정 문제가 다시 불거지며 다든이 팀을 떠났고, 이어 Ūkio Bankas의 붕괴와 함께 블라디미르 로마노프가 클럽 소유권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떠났다. 이후 파울리우스 모티예우나스가 팀 디렉터로 임명됐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잘기리스는 유로리그 톱 16에서 6승 8패로 클럽 최고 성적을 거뒀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후반에는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0으로 꺾고 3연속 LKL 우승을 차지했으며, VTB 유나이티드 리그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3-14 시즌은 로마노프의 사임과 조안 플라자 감독의 퇴임 이후 시작됐다. 일리아스 주로스가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시즌 초반 부진으로 해임되고 사울리우스 슈톰베르가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팀은 저스틴 덴트몬, 샤루나스 야시케비추스와 계약했고, 덴트몬은 현대 유로리그에서 잘기리스 선수 최다 득점(36점)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유로리그에서는 5연속 톱 16 진출에 성공했지만 2승 12패로 부진했다. LKL에서는 4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준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고 결승에 진출, 넵투나스 클라이페다를 상대로 4-2로 승리해 4연속 LKL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4-15 시즌 프리시즌에는 저스틴 덴트몬이 떠나고 윌 체리, 다리우스 송가일라, 제임스 앤더슨이 합류했으며 샤루나스 야시케비추스가 은퇴 후 수석 코치로 팀에 남았다. 루카스 레카비추스가 두각을 나타냈고, 잘기리스는 유로리그 톱 16에 진출(5승 9패)했으며 3년 만에 LKF 컵을 우승했다. 이어 12연승으로 LKL 정규 시즌을 마무리하고 결승에서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으며 5연속 LKL 타이틀과 통산 1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15-16 시즌에는 이안 부기우카스를 영입했고, 유로리그 정규 시즌에서 7연속 톱 16에 올랐다. 그러나 톱 16에서는 부진한 출발로 긴타라스 크라피카스 감독이 해임되고 샤루나스 야시케비추스가 지휘를 이어받았다. 로베르타스 야브토카스의 부상과 만타스 칼니에티스의 이탈로 어려움을 겪었고, 킹 민다우가스 컵 결승에서는 리에투보스 리타스에 패했다. 유로리그는 2승 12패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으나, 잘기리스는 LKL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고 결승에서 넵투나스 클라이페다를 4-1로 꺾으며 6연속 LKL 우승을 달성했다.

2015년 11월, FIBA와 유로리그 간의 갈등은 FIBA가 농구 챔피언스 리그 출범을 발표하고 유로리그 팀들의 참가를 권유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잘기리스는 유로리그 장기 라이선스 팀으로서 유로리그 농구 컴퍼니와 계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016-17 시즌을 앞두고 잘기리스는 떠나는 제롬 랜들을 대체하기 위해 리오 베스테르만을 영입했다. 오랜 선수였던 시임-산더 베네와 카스파르스 벡바가르스가 팀을 떠났으며, 팀은 레나다스 세이부티스와 브록 모텀을 잔류시켰다. FC 바르셀로나가 샤루나스 야시케비추스 감독을 노렸지만 그는 잔류를 선택했다. 부족했던 슈터 보강을 위해 케빈 팽고스를 영입했고, 센터 포지션은 아우구스토 리마를 임대해 보강했다. 또한 아르투라스 밀라크니스와 3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리에투보스 리타스 주장 출신의 안타나스 카발라우스카스를 영입해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2월, 잘기리스는 리에트카벨리스 파네베지스를 꺾고 킹 민다우가스 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에드가라스 울라노바스가 MVP를 수상했다. 유로리그에서는 14승 16패로 10위를 기록하며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고, CSKA 모스크바, FC 바르셀로나, 마카비 텔아비브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브록 모텀, 베스테르만, 울라노바스, 루카스 레카비추스가 성장했고, 파울리우스 얀쿠나스는 커리어 최고의 시즌 중 하나를 보냈다. LKL에서는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압도하고 결승에서 리에트카벨리스를 4-1로 꺾으며 7연속 LKL 우승을 달성했다.

2017-18 시즌을 앞두고 잘기리스는 아비아 솔루션스 그룹과 스폰서 계약을 맺고 원정 경기 전용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기를 확보했다. 시즌 초반 브록 모텀이 아나돌루 에페스로 떠나고, 대체자로 아론 화이트를 영입했다. 리오 베스테르만은 CSKA 모스크바와 계약했고, 그 자리는 바실리예 미치치가 대신했다. 로이스 오닐을 영입했으나 그는 NBA 유타 재즈와 계약하면서 떠났고, 대체자로 악셀 투파네가 합류했다. 은퇴한 로베르타스 야브토카스를 대신해 브랜든 데이비스가 센터 포지션을 맡았다. 또한 루카스 레카비추스가 파나티나이코스와 계약하며 이탈하자 디 보스트를 새 포인트 가드로 영입했다. 야시케비추스는 재계약을 맺었고, 야브토카스는 새로운 스포츠 디렉터가 되었다.

프리시즌에서 잘기리스는 폴란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승리했고, 시즌 중에는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꺾고 2년 연속 킹 민다우가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 울라노바스는 2년 연속 MVP를 수상하며 LKL 파이널과 컵 대회에서 지배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2017-18 유로리그에서 잘기리스는 시즌 전 평가에서 하위권으로 예상되었으나, 초반 부진 후 5연승을 기록하며 1라운드를 10승 5패, 3위로 마쳤다. 2라운드에서는 디 보스트가 베노 우드리흐로 교체되었다. 시즌 중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18승 12패(6위)를 기록하며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유로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올림피아코스를 상대로 3-1 시리즈 승리를 거두며 2018 유로리그 파이널 포에 진출했고, 이는 리그 두 번째로 낮은 예산으로 이룬 성과였다. 준결승에서는 페네르바흐체에 76-67로 패했으나, 3위 결정전에서 CSKA 모스크바를 79-77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LKL에서는 정규 시즌 우승 후 리에투보스 리타스를 4-1로 꺾고 8연속 LKL 우승을 달성, 1999년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오프 시즌은 어려웠다. 케빈 팽고스가 바르셀로나, 바실리예 미치치가 에페스로 떠나며 핵심 백코트를 잃었다. 네이트 월터스를 새 포인트 가드로 영입했고, 베노 우드리흐가 떠난 후 도나타스 사베키스를 영입했다. 악셀 투파네가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하면서, 대체자로 마리우스 그리곤과 계약했다. 또한 토마스 워크업을 영입하고, 라우리나스 비루티스를 리저브 센터로 합류시켰다. 몇몇 유망주들은 임대되었으며, 울라노바스는 재계약했다. 야시케비치우스 감독은 다른 유로리그 팀들과 토론토 랩터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잔류를 선택했다. 토마스 마시울리스가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고, 9월 레오 베스터만이 복귀해 포인트 가드 뎁스를 보강했다.

새로운 로스터로 시작한 잘기리스는 시즌 초반 유로리그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10월 데릭 월튼을 영입하며 포인트 가드를 보강했고, 12월까지 7승 7패로 6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부상으로 팀이 흔들렸고, 월튼은 부진 끝에 2019년 2월 방출됐다. 2월 말 킹 민다우가스 컵에서는 리타스 빌뉴스에 패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토너먼트 우승에 실패했다. 3월 초까지 팀은 9승 15패, 13위로 떨어졌으나, 워크업이 주전 포인트 가드로 전환되고, 웨스터만의 복귀, 톰슨의 상승세가 맞물리며 6연승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5승 15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마카비 텔아비브, 올림피아코스, 레알 마드리드 상대로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페네르바흐체에 패했지만, 평균 14,808명의 홈 관중을 기록하며 유로리그 홈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LKL에서는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고 결승에서 리타스를 3-0으로 스윕하며 9연속 LKL 챔피언십을 달성했다.

오프 시즌 동안 레오 웨스터만과 토마스 톰프슨을 비롯한 다수의 선수가 떠났고, 안타나스 카발리아우스카스는 Žalgiris에서 성공적인 몇 시즌을 보낸 후 은퇴를 발표했다. 루카스 레카비시우스가 2년 간의 그리스 리그 생활을 마치고 복귀했으며, 알렉스 페레즈가 웨스터만의 대체자로 영입되었다. 올림피아코스 출신의 조크 랜데일과 자크 리데이가 합류해 프런트코트가 강화되었고, 전 시즌 LKL에서 활약하며 MVP를 수상한 마르티나스 게벤이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사루나스 야시케비치우스 감독은 한 시즌 더 팀을 이끌었으나, 페레즈는 부진으로 11월 방출되었고 그 시점에서 KC 리버스가 새로 합류했다.

Žalgiris는 결승에서 리타스 빌뉴스를 80-60으로 꺾고 킹 민다우가스 컵에서 우승했다. 울라노바스는 이 대회의 MVP를 수상하며 리투아니아 컵 대회 개인 통산 네 번째 MVP를 기록했다.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2019-20 LKL 시즌이 조기 종료되었고, 당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던 Žalgiris는 10연속 LKL 우승을 차지했다. 2019-20 유로리그에서는 시즌 초반 최하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으나, 2월 이후 반등하며 12승 16패를 기록했다. 시즌은 COVID-19로 중단되었고, Žalgiris는 9위로 마감했다.

팬데믹으로 시즌이 일찍 종료되면서 Žalgiris는 빠르게 로스터 개편에 착수했다. 리데이, 랜데일, 울라노바스, 리버스가 모두 떠났고, 가장 큰 변화는 사루나스 야시케비치우스 감독의 FC 바르셀로나 이적이었다. 코칭 스태프 대부분도 함께 떠났으며, 7월 14일 마틴 실러가 새로운 수석 코치로 선임됐다. 그는 NBA G 리그 솔트레이크시티 스타즈 출신으로 2020년 G 리그 올해의 코치 수상자였다. 잘기리스는 라이벌 리타스 빌뉴스에서 유망주 마렉 블라제비치를 영입하며 주목을 받았다.

시즌 전 평가는 낮았지만, 실러 감독 체제의 Žalgiris는 예상 외의 선전을 펼치며 시즌 내내 플레이오프 경쟁을 이어갔다. 최종적으로 17승 17패로 유로리그를 마쳤고, 마리우스 그리고니스, 조프리 로베르뉴, 나이젤 헤이스가 돋보이는 활약을 보였다. 잘기리스는 리타스를 3-0으로 제압하고 킹 민다우가스 컵 우승과 11연속 LKL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오프 시즌에 타일러 캐버노, 닐스 기피, 만타스 칼니에티스, 조쉬 네보, 에드가라스 울라노바스, 야니스 스트렐니엑스, 에마누엘 무디아이 등이 영입되었고, 루카스 레카비시우스는 재계약했다. 그러나 프리시즌에서 5연패를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고, 정규 시즌 초반 3연승에도 불구하고 하위권 팀을 상대로 고전했다. 유로리그 0승 2패 후 마틴 실러 감독이 경질되고 유레 즈도브츠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로베르뉴와 스트렐니엑스의 부상, 무디아이의 부진으로 Žalgiris는 유로리그 0승 9패라는 최악의 출발을 했다.

11월 무디아이가 방출되고 타이 웹스터가 영입되었으며, 조란 드라기치도 합류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웹스터는 LKL에서도 부진했고 드라기치는 연말 방출됐다. 2월까지 Žalgiris는 4승 20패로 최하위에 머물렀으나, 3월 들어 부상에서 복귀한 조프리 로베르뉴의 활약으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며 반등했다. 또한 2022년 킹 민다우가스 컵에서 BC 리에트카벨리스를 91-66으로 꺾고 우승했다.

잘기리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러시아 팀과의 경기 거부를 선언한 첫 번째 유로리그 팀이 되었고, 이로 인해 러시아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시즌은 KK 크르베나 즈베즈다를 상대로 한 103-98 승리로 마무리되었으며, 최종 기록은 8승 20패였다. 러시아 팀들이 실격 처리되면서 공식 순위는 올랐지만, 참가 자격이 있는 팀들 중 최하위였고 2015-16 시즌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4월 초 Žalgiris는 LKL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다시 Rytas에 순위에서 밀렸고, 이는 2013-14 시즌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은 달 말 팀은 부진한 유레 즈도브츠 감독을 경질하고 리투아니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카지스 막스비티스를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막스비티스 체제에서도 반등은 없었고, 기존 로스터에서 최적의 라인업과 로테이션을 찾지 못한 채 어려움이 이어졌다.

LKL 플레이오프에서는 문제점이 더욱 드러났다. Žalgiris는 8강에서 BC Neptūnas를 상대로 풀 시리즈(3-2) 끝에 간신히 승리했고, 준결승에서는 Lietkabelis를 상대로 첫 경기를 따낸 후 3연패를 당하며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이로써 Žalgiris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LKL 결승 진출에 실패하며 11년간 이어온 리그 지배가 막을 내렸다. 위로 라운드에서 BC Šiauliai를 4-0으로 제압해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Rytas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시즌은 뼈아픈 결말을 맞았다. 시즌 후 Paulius Jankūnas가 은퇴하며 구단 스포츠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2021–22시즌의 실패 이후 Žalgiris는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막스비티스 감독은 LKL 결말 이전 장기 계약을 맺었고, Webster, Nebo, Blaževič, Miniotas, Milaknis, Strelnieks, Giffey, Lauvergne 등이 팀을 떠났다. 전 주장 얀쿠나스는 스포츠 디렉터로 남았으며, 루카스 레카비시우스와 에드가라스 울라노바스만이 핵심 선수로 잔류했다. 가장 큰 과제로 지적된 포인트 가드 문제는 키넌 에반스를 영입하며 해결했고, 케바리우스 헤이스와 라우리나스 비루티스가 센터진을, 롤란트 슈미츠가 얀쿠나스의 자리를 메웠다. 토마스 딤샤가 복귀했고, 리에트카벨리스의 돌파구였던 도비다스 기에드라이티스와 리타스의 주장 아르나스 부트케비치우스, 그리고 캐나다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이그나스 브라즈데이키스가 합류하며 전력은 크게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LKL 우승 후보로는 꼽았지만 유로리그에서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회의적으로 봤다.

그러나 시즌은 예상 밖으로 전개됐다. 유로리그 경험이 적은 막스비티스 감독 체제에서 Žalgiris는 초반부터 경쟁력을 보였고, 키넌 에반스가 팀의 중심으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12월 에반스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Žalgiris는 9승 8패로 플레이오프권에 있었고, 많은 이들이 하락을 예상했지만 팀은 빠르게 움직여 Isaiah Taylor와 Achille Polonara를 영입하며 공백을 메웠다. 브라즈데이키스가 시즌 중반부터 적응하며 리더로 부상했고, 울라노바스, 슈미츠, 헤이스, 그리고 테일러와 폴로나라가 가세해 팀은 균형을 되찾았다. 부트케비치우스는 강력한 수비와 활동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핵심 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Žalgiris는 정규 시즌 15승 15패로 마감했고, 7번 시드로 유로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홈에서는 마카비 텔아비브를, 원정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을 꺾는 등 강팀들을 상대로 중요한 승리를 챙겼다. Žalgirio Arena는 17번의 홈 경기 중 16경기를 매진시키며 KK 파르티잔에 이어 관중 수 2위를 기록했고, 카우나스는 2023 유로리그 파이널 포 개최지로 선정됐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전 감독 사루나스 야시케비치우스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와 맞붙었으나, 0-3으로 패하며 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보여준 투지와 반등은 홈 팬들로부터 뜨거운 기립 박수를 받았다.

Žalgiris는 2023년 King Mindaugas Cup에서 우승하며 대회 4연패를 달성했고, 결승에서 활약한 Ulanovas가 다시 한 번 MVP로 선정되었다. LKL에서는 4월에 디펜딩 챔피언 Rytas를 꺾고 정규 시즌 1위를 확정지었으며, 28승 5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Žalgiris는 8강에서 BC Nevėžis를 2-0으로 제압했고, 준결승에서는 Lietkabelis를 3-1로 꺾으며 전 시즌 패배를 설욕했다. 결승에서는 Rytas와 맞붙어 치열한 시리즈를 펼쳤다. 카우나스에서 열린 1, 2차전을 각각 108-93, 95-80으로 이겼지만 빌니우스 원정에서는 94-71, 69-68로 패하며 승부는 5차전으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홈 5차전에서 Žalgiris는 97-87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3-2로 마무리하고 LKL 왕좌를 되찾았다. 결승에서 32점을 올린 Isaiah Taylor는 LKL 파이널 MVP에 선정되었다.

놀라운 2022–23 시즌 이후 Žalgiris는 주축 선수 다수와 재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2013년부터 클럽 디렉터였던 Paulius Motiejūnas가 Euroleague Basketball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고, Paulius Jankūnas가 스포츠 디렉터에 이어 클럽 디렉터 역할도 겸임하게 되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Keenan Evans가 남은 반면, LKL 파이널 MVP Taylor와는 재계약을 하지 않는 unpopular한 결정을 내렸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는 Tyler Cavanaugh와 Karolis Lukošiūnas가 팀을 떠났고, Taylor의 대체자로 Naz Mitrou-Long, 그리고 Cavanaugh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NCAA 출신 Brady Manek을 영입했다. 또한 Nevėžis에서 좋은 시즌을 보낸 Danielius Lavrinovičius와 계약했다.

전력은 유지됐지만 시즌 시작 전 큰 악재가 찾아왔다. 팀의 핵심 Ignas Brazdeikis가 Olympiakos로 이적했고, Žalgiris는 즉각적인 대체자를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즌 초반 Žalgiris는 LKL 무패, 유로리그 3승 1패로 출발하며 Evans의 활약 속에 상승세를 탔으나, 10월 이후 급격한 부진이 찾아왔다. LKL에서 흔들렸고 유로리그에서는 1라운드를 2승 11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마쳤다. Mitrou-Long은 부진 끝에 11월 Olympiakos로 트레이드됐고, Brazdeikis의 대체자로 영입된 Edmond Sumner는 기복 있는 경기력으로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여기에 Arnas Butkevičius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수비 라인이 붕괴됐다. 12월 초 Trinchieri의 부임설과 선수단 반발설이 돌았고, 결국 유로리그 1라운드 5승 12패로 마감한 직후 Maksvytis와 결별, Trinchieri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Trinchieri 체제에서 Žalgiris는 점차 안정을 찾았다. 유로리그 2라운드에서 9승 8패를 기록하며 시즌 합계 14승 20패로 마감, 플레이인 경쟁까지 이어갔으나 AS Monaco 원정에서 패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은 좌절됐다. Keenan Evans는 시즌 내내 맹활약하며 유로리그 최고의 가드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Laurynas Birutis는 Kevarrius Hayes를 제치고 선발 센터로 완전히 자리 잡으며 팀의 중심으로 성장했고, Dovydas Giedraitis는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Žalgiris는 카우나스에서 열린 2024년 King Mindaugas Cup에서 우승하며 대회 정상에 올랐다. 8강에서 BC Wolves, 준결승에서 BC Šiauliai, 결승에서 BC Lietkabelis(준결승에서 Rytas 제압)를 차례로 꺾었고, Birutis가 MVP를 수상했다. LKL에서는 Rytas를 정규 시즌에서 모두 제압하며 26승 4패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즌 내내 Evans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 드러났다. 특히 3월 Lietkabelis와의 준결승에서 3-0으로 승리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Evans가 슬개골 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되는 치명적 부상을 당했다. Evans가 빠진 결승에서 Žalgiris는 무너졌고, Rytas는 홈 어드밴티지를 빼앗은 뒤 카우나스에서 시리즈를 3-1로 마무리하며 LKL 우승을 탈환했다. 이 시리즈는 LKL 역사상 최대의 이변 중 하나로 남았다.

3. 주요 선수

BC 잘기리스에서 활약했던 스타 선수로는 아비다스 사보니스, 파울리우스 얀쿠나스, 바실리예 미치치, 아이재아 하텐슈타인, 조크 랜데일,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 고란 드라기치, 케빈 팡고스, 조란 드라기치, 만타스 칼니에티스 등이 있다.
[1] 이전 FIBA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각국의 컵 대회 우승 구단이 참가한 대회다.[2] 권위로는 유로리그, 사포르타 컵에 이어 세 번째였던 유럽 클럽 대항전.[3] 유럽, 북미, 남미 등 대륙의 최상위 클럽 대항전 우승 구단이 참가하는 대회. FIBA 클럽 월드컵으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