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27 23:18:37

196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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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쿠데타 발생4. 관련 문서

1. 개요

1966년 6월 28일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쿠데타. 이 쿠데타로 아르투로 움베르토 일리아의 정권이 실각하고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2. 배경

후안 페론1946년부터 1955년까지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1955년 9월 16일 군부가 일으킨 소위 해방 혁명(Revolución Libertadora) 쿠데타로 실각했다. 페드로 에우헤니오 아람부루와 에두아르도 로나르디 등이 주도한 군사정권은 페론주의를 전면 부정하며, 후안 페론과 지지자들의 정치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이들은 페론이나 에비타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법화할 정도로 강력한 탄압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군부의 무능과 경제 혼란 속에 페론은 비밀리에 영향력을 유지하며 정치 복귀를 노렸다. 1958년 대선에서는 아르투로 프론디시를 물밑 지원해 당선에 기여했고, 프론디시 집권 후 페론주의자들의 입지가 다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군부는 1962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프론디시를 축출했다. 이후 민정 이양이 이루어졌으나, 페론주의자들의 정계 진출은 여전히 금지된 상태였다.

한편 민정 이양 이후 1963년 대선에서 당선된 아르투로 움베르토 일리아는 집권 후 1965년부터 페론주의자들의 정치 참여를 점진적으로 허용했고, 이는 곧 군부의 반발을 불러왔다.

3. 쿠데타 발생

1966년 6월 28일 후안 카를로스 온가니아를 중심으로 하는 장군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일리아 정권을 전복시켰다. 하지만 정작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경기 침체와 야당 탄압으로 지지율이 떨어졌고 군사 독재에 반발하는 정치 테러가 횡행했다. 군부 내부에서는 온가니아가 1970년 마르셀로 레빙스톤에 의해 실각했고, 레빙스톤 또한 알레한드로 라누세에 의해 실각했다. 결국 1973년 알레한드로 라누세가 3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후안 페론이 다시 정계에 복귀했으나 후안 페론은 1년 뒤에 병으로 사망했다.

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