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0:58:35

히포크라테스(시라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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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쿠사 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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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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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bfff><colcolor=black> 히포크라테스
Ἱπποκράτης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212년
출생지 시칠리아 시라쿠사
사망지 시칠리아
지위 시라쿠사 참주
국가 시라쿠사
가족 에피키데스(형제)
시라쿠사의 참주
재위 기원전 214년 ~ 기원전 212년
전임 아드라노도로스
후임 시라쿠사 멸망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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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라쿠사 20-2대 참주이자 마지막 참주.

2. 생애

아버지는 시라쿠사인이고 어머니는 카르타고인이며, 형제로 에피키데스가 있었다.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두 형제는 아가토클레스에 의해 시라쿠사에서 추방된 뒤 카르타고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후 에피키데스와 함께 한니발 바르카의 군대에서 복무하여 두각을 드러냈다. 칸나이 전투 후, 히에로니무스는 한니발에게 동맹 의사를 타전했다. 한니발은 이에 흔쾌히 응하고 그와 에피키데스를 시라쿠사에 파견하여 시라쿠사가 로마를 적대하는 걸 돕게 했다.

두 형제는 히에로니무스가 로마에 반기를 들게 하는 데 성공했지만, 기원전 215년 히에로니무스가 암살당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때 한니발에게 복귀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히에로니무스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아드라노도로스 마저 피살당하면서 정국이 혼란해지자 차라리 시라쿠사의 참주가 되기로 마음먹고 시라쿠사 귀족들을 포섭한 끝에 에피키스와 함께 스트라테고스에 선임되었다. 형제는 현 상황에서 로마와 싸우는 건 무리라 보고, 기원전 213년 봄에 시칠리아에 상륙한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에게 사절을 보내 평화 협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마르켈루스 역시 시라쿠사와 타협하고 한니발에 전념하고 싶기에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카르타고가 곧 원군을 보낼 거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는 마음을 달리먹고 인근 영토를 약탈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 수비대를 공격해 많은 이를 살육했다. 이에 마르켈루스는 시라쿠사에 전령을 보내 두 사람을 넘기지 않으면 전쟁 뿐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두 형제는 로마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는 레온티니 시로 도피했고, 시라쿠사 인들은 마르켈루스에게 레온티니에 두 사람이 피신했으니, 그들을 친다면 자기들이 돕겠다고 답했다. 마르켈루스는 전군을 이끌고 레온티니 시를 공격했고,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는 성문이 파괴되고 성벽이 공략당하자 아크로폴리스와 에르베소로 피신했다. 로마군을 돕기 위해 출진한 8,000명의 시라쿠사군은 도중에 레온티니 시 주민과 군인들이 전부 도륙당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전해듣고 심한 충격을 받고 행군을 멈췄다.

얼마 후, 로마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가 시라쿠사군을 찾아갔다. 그들은 부디 자신들을 넘기지 말고 보호해달라고 간청하면서, 로마군은 언젠가 시라쿠사도 레온티니 시처럼 만들 거라고 덧붙였다. 시라쿠사 지휘관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시라쿠사 원로원에 조언을 구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이때 히포크라테스는 편지를 가로채어 큰 소리로 읽었다. 그 편지에는 두 사령관이 마르켈루스에게 모든 용병 민병대를 넘겨서 가혹하게 다루도록 하는 대가로 시라쿠사가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도록 하는 게 어떠냐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병사들은 이에 분노했고, 사령관들은 시라쿠사로 달아났다. 군대는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를 새 사령관으로 추대한 뒤 시라쿠사로 돌아왔다. 이후 시라쿠사는 잔혹행위를 자행한 로마와 끝까지 싸우기로 결의하고, 친로마 인사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이에 로마 원로원도 시라쿠사를 응징하기로 결의하고 마르켈루스에게 시라쿠사 공략을 맡겼다. 이리하여 시라쿠사 공방전이 발발했다.

에피키데스가 시라쿠사 수비를 전담하는 동안, 히포크라테스는 기병대를 이끌고 시칠리아 각지를 전전하며 로마에 맞섰다. 그러나 마르켈루스에게 요격되어 큰 피해를 입자, 히밀코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에 가세했다. 이후 히밀코와 함께 시라쿠사를 포위한 로마군에 접근했지만, 히밀코가 좀처럼 마르켈루스와 싸우려 하지 않다가 철수해버리는 바람에 시라쿠사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 기원전 212년 아나포스 강어귀에 주둔하던 중 인근 늪지대에서 생겨난 전염병이 창궐했고, 히밀코와 히포크라테스는 수많은 병사들과 함께 병사했다. 에피키데스는 시라쿠사에서 좀더 저항했으나 끝내 시라쿠사를 내줄 수밖에 없게 되자 아그리젠툼으로 피신한 뒤 기원전 210년까지 그곳에서 항전하다가 아그리젠툼이 함락되자 카르타고로 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