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4:52:59

흥화진 전투

1. 개요2. 흥화진 전투(1010년)(제2차 여요전쟁)3. 흥화진 전투(1014년)4. 흥화진 전투(1015년)5. 흥화진 전투(1017년)6. 흥화진 전투(1018년)(제3차 여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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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興化鎭戰鬪

여요전쟁 시기, 고려거란 요나라강동 6주의 하나이자 요충지인 흥화진(興化鎭)[1]에서 여러차례 싸운 전투. 총 5차례 벌어졌으며 1010년, 특히 1018년의 흥화진 전투가 가장 유명하다.


흥화진 성은 현재 평안북도 의주군 위원면에 위치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의 경우 삼수채가 휘감고 있어 규모는 작으나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성이다. 사실상 고려의 방어진이라고 볼수 있는 강동 6주 가운데서도 패배 기록 자체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방어감과 존재감에서 거의 독보적인 수준이다.

2. 흥화진 전투(1010년)(제2차 여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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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군거란군이 흥화진에서 처음 치러진 전투이면서 제2차 여요전쟁 중 첫번째로 일어난 전투이다.

3. 흥화진 전투(1014년)

1014년 10월, 요 성종 야율융서의 장인 상온 소적렬이 이끄는 거란군이 흥화진을 공격했다. 이에 장군 정신용과 별장 주연이 반격을 가해 700여 급의 머리를 베었고, 수많은 거란군 병사를 익사시켰다. 현종은 공을 세운 정신용을 상서우복야 상주국으로 제수했다.

이 부분의 기록이 고려사에는 통주로 언급되지만 고려사절요에는 통주의 흥화진으로 언급된다.

4. 흥화진 전투(1015년)

1015년 음력 1월 22일(양력 2월 13일) 거란군이 다시 흥화진을 포위하자, 장군 고적여와 조익 등이 반격하여 물리쳤다.

5. 흥화진 전투(1017년)

1017년 5월, 거란의 소합탁이 흥화진을 포위하고 9일 동안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다. 장군 견일, 홍광, 고의가 출격하여 거란군을 크게 물리쳐서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수가 매우 많았다.

6. 흥화진 전투(1018년)(제3차 여요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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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군과 거란군이 제3차 여요전쟁 중 흥화진에서 첫번째로 치른 전투. 고려의 강감찬수공으로 거란의 소배압을 물리친 전투로 유명하다.


[1]평안북도 의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