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09:31:53

황보유의(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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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로고 화이트.svg

[ 등장인물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676767,#010101><bgcolor=#454545><color=#ffffff><-3> ||
파일:고려거란전쟁_현종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강감찬_neat_ver.jpg
파일:고려거란전쟁_양규_neat_ver.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tablewidth=100%><tablebgcolor=#676767><tablecolor=#ffffff><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2.jpg
||<width=25%>
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width=25%>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
[[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
안예은
2024. 01. 18.
[[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tablebgcolor=#454545><tablewidth=100%><width=1000> 방영 목록 ||<width=25%> 명대사 ||<width=25%> 역사 탐구 ||<width=25%> 평가(논란) ||
<colbgcolor=#070707><colcolor=#fff> 황보유의
皇甫兪義
파일:고거전 황보유의01.jpg
캐릭터
지위 선휘판관 (3회 ~ 4회)
→ 병부낭중·행영도병마판관 (4[1] ~ 16회)
→ 시어사 (16 ~ 24회) → 중추원 일직 (25회)
→ 급사중 (29회 ~ 32회)
등장회차 3 ~ 8회, 10 ~ 27회, 29회 ~ 32회
배우
장인섭

1. 개요2. 작중 행적
2.1. 3회2.2. 4 ~ 8회2.3. 10회2.4. 11 ~ 15회2.5. 16 ~ 20회2.6. 21 ~ 25회2.7. 26 ~ 29회2.8. 30 ~ 32회(최종회)
3. 묘사4. 어록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소처럼 일하는 고려 조정의 실무자. 2차 거란 침입 때는 전쟁에 몸소 참전했으며, 이후 장연우와 함께 군현제 개정작업에 참여한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2.1. 3회

선휘판관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김치양 일파에 의해 정전에서 포위당한 목종과 재상들이 신혈사(현재의 진관사)에서 위기에 빠진 대량원군(후에 현종)을 구하기 위해 채충순의 지시로 변장해 궁궐을 탈출하고, 이후 군사들을 모아 신혈사로 이동한다.[2] 이후 신혈사에서 천추태후의 명으로 대량원군을 해치려 한 최 상궁 일파를 물리치고 대량원군에게 목종의 친서를 전하고 개경으로 모셨다.

2.2. 4 ~ 8회

4회 초반 강조의 정변에 대한 사정을 충주에서 올라온 충주 판관 강감찬에게 전하면서 강감찬에게 그 정변으로 인한 후폭풍을 듣고 당황해한다. 이후 관직이 '병부낭중'이 되면서 상관인 '병부시랑' 장연우와 함께 중대사 강조의 동원령을 점검했다. 거란의 침입이 시작되는 5회부터는 병부낭중을 겸해 행영도병마판관이 되어 공주로 내려가 그 곳의 절도사 김은부를 만나 징병과 현지 상황을 살폈고, 6회에 삼수채에 도착해 병부시랑 겸 행영도통부사 장연우가 "자신의 옆에 붙어있으라."고 말한 이후 줄곳 장연우가 등장할 때 같이 나온다. 이때 "이미 한 번 참전 경험이 있는데도 두려운 것이냐?"고 묻자 "두 번 겪으면 두 배로 두려운 것이 전쟁이네."라는 장연우의 대답을 듣는다. 7회에선 삼수채 군영을 이탈하려는 탈영병을 처단하려가 장연우의 제지로 막혔고, 8회에 장연우와 함께 거란군을 피해 숨어서 이동하던 중 인기척을 느끼고 죽은 척을 했는데, 다행히 같은 고려군을 만나 함께 영주성으로 이동햇다. 이때 "왜 그런 짓을 했냐?"라는 한 병사의 말에 장연우가 자신에게 책임전가를 하자 교과서를 읽는 톤으로 맞받아쳤다.[3] 그러나 이동해 간 영주성이 거란에 항복한 이현운의 계략으로 성의 관리와 군사, 백성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막다가 넘어진다.

2.3. 10회

영주성에 이어 숙주성으로 이동했으나 그 곳마저 함락되어 정처없이 이동하던 중 어느 산자락에서 쉬다가 장연우가 처량하고 한심스럽게 시를 읊으면서 푸념을 하자 이전 8회에서 장연우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서 비꼬다가 서경에 안 가려던 그를 놔 두고 병사들과 이동하다가 계속 헛소리하는 장연우에게 "안 따라오냐?"고 한 소리 지른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 시간을 벌기 위해 거란에 친조 사신으로 갔다가 틀키면서 추격받은 예부시랑 강감찬을 구하고, 이후 서경이 그 곳이 분대어사 조자기에 의해 지원하려 온 동북면 군사들이 들어가면서 항복하려던 서경부유수 원종석을 처단해 효수한 상황을 본 강감찬이 자신들에게 "개경으로 가라."라고 하면서 먼저 간 뒤 이를 실행하려는 장연우를 아래처럼 한심스럽게 바라보면서 "개경으로 갈 생각하지 마라. 개경이 함락되면 책임질 거냐?"라고 묻자 장연우가 "그렇다. 서경이 이제 안전하니 황제 폐하를 모셔야 한다."면서 이동하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군사들을 이끌고 개경으로 간다.
파일:고려 한심좌 황보유의.gif

2.4. 11 ~ 15회

그러나 이후 서경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한 11회에 장연우, 그리고 서경 외곽에서 패한 후 내려온 중랑장 지채문과 함께 개경에 대한 방어전략을 세우면서 아직 개경에 방어진이 없어서 그 위쪽인 절령에 진을 구축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룻동안 거란군을 상대로 방어하지만, 중과부적으로 인해 패하고 먼저 내려와 몽진 준비를 하던 헌정황후와 조정 대신들에게 상황을 보고하였다. 이에 원정황후의 명으로 강감찬과 함께 현종을 모시러 가다가 옥새와 최후의 다짐을 적은 조서를 들고 오는 전전승지 양협을 만나 현종이 자결을 위해 정전 문을 잠갔다는 말을 듣고 강감찬의 명으로 궁궐 내 어느 장소에서 도끼를 구해[4] 정전의 문을 부숴 강감찬이 심적 한계에 몰린 현종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후 12회부터 현종과 원정황후, 그리고 채충순, 장연우, 지채문 등과 함께 몽진을 나서면서 연이은 패배에 대한 죄책감에 식사를 거부하고 밖에 나간 지채문을 따라[5] 나오면서 지채문을 달래다가 근처까지 온 거란의 추격대를 상대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헤어져 충주 호장 박진의 습격을 받은 현종 일행을 뒤쫓아와서 구하고(12회 최후반 ~ 13회 초반), 자신은 지채문과 함께 화살에 맞은 박진을 추격하나 놓친다. 이후 충주에서 개경으로 올라오던 통군사 최사위와 충주사록 김종현 일행을 만나 어느 빈 관아에 현종 일행을 모시면서 지채문, 김종현과 함께 경계를 설 때 김종현과 강감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근 백성들이 가지고 온 음식을 먹는다.

14회에서 초반에 지채문을 따라하려는 장연우의 활 솜씨에 낙담한 표정을 지었고, 이어 창화현를 지날 때 그 곳의 호장들이 동원한 백성들과 맞서다가 구원하려 온 하공진의 도움을 받았고, 15회에서 현종이 원정황후와 헤어지고 평복 차림으로 몽진을 이어갈 때 전전승지 양협과 함게 '짐꾼'으로 전락해 고생을 했다.[6] 그리고 고생 끝에 도착한 공주에서 그 곳의 절도사 김은부의 환대를 받으면서 식사하던 중 지채문과 술을 가지고 대치하던 장연우를 채충순과 함께 '못 말리겠다'라는 듯이 바라보았고, 다음 날 말을 타고 현종을 따라 나주로 이동한다.

2.5. 16 ~ 20회

나주에 머물다가 거란군이 철수했다는 소식을 들은 현종이 환궁할 때 갑주를 입고 뒤따라 폐허가 된 개경과 궁궐을 바라봤고, 이후 수창궁에서 열린 조회에서 논공행상을 통해 시어사[7]로 승진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현종의 관용으로 용서받은 것도 모자라 승진한 우간의대부 탁사정이 뻔뻔하게 조정을 나가는 모습을 판어사대사로 승진한 장연우와 예부낭중이 된 강민첨과 함께 바라본다. 17회 이후로는 현종과 형부시랑 김은부가 추진하는 지방개혁에 장연우와 중추사 채충순, 참지정사 최사위 등과 함께 지지를 표명하는데, 그 과정에서 전전긍긍하던 장연우를 감찰어사 김종현, 진중시어사 조자기와 함께 한 소리하고 떠밀다가 현종이 그 자리에 직접 행차하자 "자신도 폐하와 함께 모든 일을 겪었다."라면서 현종의 개혁에 지지를 표명했다. 이 과정에서 테세 전환을 한 장연우를 한시하게 바라본 건 덤. 그리고 18회 때 정전에서 강민첨의 뒤에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19회에 현종이 낙마하면서 의식을 잠시 잃었고, 정국의 흐름이 급진적 개혁에 반대하는 원정황후와 내사시랑평장사 유진에게 흐르면서 이들에 의해 채충순과 최사위가 지방으로 떠나고 개혁을 계획한 김은부가 탄핵당해 체포되자 김종현, 조자기, 그리고 같이 개혁에 동참한 우습유 최충과 함께 김은부의 집으로 찾아가 그의 큰 딸[8]과 함게 대책을 강구했고, 이어 관련 자료들을 작성해 상관인 장연우에게 건내지만, 장연우가 김은부를 변호하는 것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또 도망치려는 거냐? 삼수채에서도 도망갔고 영주성에서도 도망갔는데 또 도망가려는 거냐? 폐하께 목숨을 바쳐 뜻을 받들겠다는 맹세는 어떻게 된 거냐?"라면서 다그치자 장연우가 "목숨을 걸려면 너나 걸으라."라는 답을 듣고 상소를 들고 정전을 향하는데, 자신보다 늦게 도착한 장연우가 그 자료를 뺏으면서 본인이 변호하는 모습을 보았고, 회복한 현종이 진상을 알고 김은부를 변호할 때 대부분의 대신들이 이에 항의할 때 장연우, 강민첨과 더불어 서 있었다. 다행히 당시 파직되어 고향 금주에 가 있던 前 한림학사 승지 강감찬이 현종에게 보낸 서찰을 통해 현종이 김은부의 큰 딸을 부인으로 삼고 궁으로 불러들여 일단락되었고, 지방에 내려갔던 채충순과 최사위가 돌아와 장연우를 만난 20회에서 반복적인 장연우의 무용담을 참다못해 김종현, 조자기와 함께 웃어 장연우에게 "웃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다.

2.6. 21 ~ 25회

이 기간에는 사실 비중이 그저 수창궁 정전에서 거란의 사신이 찾아와 '친조'나 '강동 6주(정확히는 흥화진)의 할양'을 요구하던가 현종이 명을 전할 때 강민첨 주변에 서 있는 모습으로만 나왔고, 24회에서는 어사대에서 지난 번 무관들이 집단 행동을 벌인 일을 가지고 6위 중 3위의 장수들에 대해 장연우와 함께 조사를 하다가 최질의 난입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시점이 1014년으로 넘어가면서 복구된 궁궐 정전을 향해 현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들의 뒤를 이어 걸었고, 25회에 중추원의 익징이 되면서 중추사가 된 장연우에게 "재상이 되신 걸 축하한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덕이 있다."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능력과 충심 때문이다."라는 장연우의 말을 듣는다. 이때 다른 재상들에 의해 재정과 관련된 일을 떠맡은 장연우가 부족해진 관리들의 녹봉에 대해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를 자신에게 떠넘기자 결국 근무 중이던 병부낭중 최구를 찾아가 무관들의 명단을 살피면서 '무관들의 영업전을 회수해 관리들의 녹봉으로 삼는다'는 안을 제시해 만들면서 한밤중에 술상을 들고 온 장연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당 안을 완성했다. 문제는 이러한 얘기를 넌지시 한 바람에 이미 현종을 없애기로 한 장작주부 박진의 편인 최구를 통해 박진, 나아가 그동안 자신들의 차별 대우에 불만이 많았던 무관들의 수장인 상장군 김훈과 최질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다음 날 장연우에 의해 그 안이 현종에게 올라가 조정을 시끄럽게 했는데, 황보유의가 계획해 작성했고, 이를 장연우가 발표한 안은 무관들의 영업전이 세습이 되던 관행을 폐지하고 부정하게 세습된 것을 회수해 관리들의 녹봉으로 충당하자는 것이다. 물론 전사자의 유족들에 대한 대책은 중추사 강감찬과 참지정사 최항, 그리고 현종이 각자 나름의 대책을 제시하긴 했지만, 이미 뒤틀릴대로 뒤틀린 김훈과 최질은 '영업전 철폐'만 듣고 막무가내로 반대하면서 조정을 나갔고, 그 즉시 반란이 일어났다. 김훈과 최질이 이끈 반란군은 궁궐 정전을 포위하면서 현종에게 '문제의 상소'를 작성해 올린 장연우와 황보유이 두 사람의 유배를 요구하나, 현종이 거부하자 조정을 포위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하루 정도 주겠다고 겁박을 했다. 현종을 구원하러 서북면 행영도병마사 유방과 동북면에서 중추사 강감찬이 이끌고 온 군사들이 개경으로 향할 때, 정전을 포위한 반란군에 의해 조정이 마비되었고, 정전 바닥에 주저 앉았던 황보유의는 결심한 듯 일어나 "자신을 유배 보내달라. 그렇지 않으면 역도들이 더욱 포악해질 것이다."라면서 저청한다. 현종은 거절했지만, 뒤따라 일어난 장연우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면서 현종에게 "한번쯤은 떳떳한 신하 노릇을 해보고 싶다."면서 먼저 밖으로 나가자 뒤따라 나가 정전 앞에서 반란군의 수장인 김훈과 최질을 노려본다. 그러다가 최질이 장연우를 밀칠 때 도우려다가 주변에 있던 무관들에게 장연우와 같이 피를 토할 정도로 발길질을 당한다.[9]

2.7. 26 ~ 29회

26회에 초주검이 된 채 장연우와 유배길에 올라 27회에 도착하는데, 거의 죽어가던 장연우를 놔 두고 다른 유배지로 가려던 것을 막기 위해서 호송해 온 안무사 앞에서 엎드려 "저 사람과 같이 있어달라."고 빌자 안무사도 "설마 역도들이 여기까지 신경쓰진 않겠지."[10]라면서 같이 있게 해준다. 그리고 마루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우는 장연우를 달래준다.

28회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사이 반란군 수뇌부들을 현종이 처단하면서 돌아와 시점이 1018년으로 넘어가던 29회 중반 나레이션 부분부터 현종과 재상들의 회의장에 서서 나성 축조에 관한 의견을 밝힌다. 그리고 1018년으로 넘어간 29회 후반, 관직이 급사중이 되면서 상서우승인 이자림과 함께 여전히 나성 축조와 관련해 현종과 재상들 앞에 축성 현황을 설명한다.[11] 그리고 관청에 돌아와 빈 상석을 보면서 먼저 떠난 장연우를 회상하다가 그를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빈 상석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이후 서경에서 거란이 다시 고려를 침입하기 위해 징발령을 내리자 개경에 내려와 이를 알리면서 동원령을 내려달라는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이 밝힌 '대회전 전술'을 듣고,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유진과 문하시랑평장사 최항, 참지정사 채충순이 반대할 때, 문하시랑평장사 최사위에 이어서 강감찬의 계획에 동의하면서 "폐하께서 그간 고려를 개혁하신 것도 다 이런 날을 위한 것이 아니옵니까?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하옵니다."라고 밝혔다.[12] 결국 현종은 강감찬의 계획을 수용하고 그를 상원수에 임명해 부월을 하사하고 강감찬이 이끄는 군사들이 출정할 때 성 밖에서 현종과 다른 대신들과 함께 바라본다.

2.8. 30 ~ 32회(최종회)

30회 초반부터 현종과 다른 대신들과 함께 회의하는 자리에 말석에 앉아 여러 전황을 듣다가[13] 이후 거란이 전투를 피하면서 개경으로 직공하자 현종이 고심 끝에 개경을 수호하는 의지를 다른 대신들과 함께 확인하고 참지정사 유방과 중추원부사 노전, 상서우승 이자림과 우상시 지채문과 함께 갑주[14]를 입고 개경 외곽의 백성들을 독려하여 청야전술을 시행하는 것을 돕는다. [15]

31회 예고에서 이들 4인(유방, 노전, 지채문, 이자림)과 함께 금교역 전투를 진행하는데 자신은 이자림과 함께 언덕에서 매복해 거란군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나왔고, 마지막회 인 32회에서는 귀주에서의 강감찬의 승전 소식을 현종과 모든 신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3.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현종의 회상으로 황보유의 등이 사찰에 보내졌던 자신을 궁궐로 다시 데려온 일화만 언급된 이후 등장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드라마에서는 초반부터 나름 맡은 일을 잘 하는 재능있는 중간직 정도의 인물로 묘사했다. 특히, 6회 이후 무겁게 흘러가는 본 작품의 분위기에서 극에서는 상관 역할인 '장연우'와 함께 분위기를 환기해 주는 개그 캐릭터 역할을 담당하는데, 정확히는 본인은 개그 캐릭터라고 할 수 없는 진지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장연우랑 얽히면서부터 개그씬을 찍는 상관을 타박하거나 한심스럽게 보는 모습이 많이 나왔다. 다만, 그 때문에 후반에 펼쳐진 '김훈 최질의 난'에 장연우와 함께 미화된 모습으로 나왔을뿐만 아니라 거란에 대해 최사위나 강감찬 정도는 아니지만, 강경하게 묘사되었다.[16] 실제 인물은 관료로서 능력이 좋게 평가되지는 않는 것이 이 시대를 다룬 여러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며, 때문에 실제에 가까운 묘사는 비슷한 시대를 다룬 전작이 더 낫다는 평을 받고 있다.

4. 어록

패하였습니다. 지채문 중랑장도 쫓겨 오고 있사옵니다. 어서 피하시옵소서. 이제 곧 거란군이 개경으로 들이닥칠 것이옵니다.
거기서 죽었으면 이렇게 폐하를 모시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도 여러 번 도망쳤습니다. 그게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한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살아남은 덕에 다시 싸울 수가 있었습니다. 중랑장도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천하의 지채문이 전투 한 번 치르고 죽어서야 되겠습니까? 수없이 싸우고도 끝까지 살아남아야지요.


[1] 아래의 행적처럼 4회에는 '병부낭중'이었고, 5회 이후부터는 '행영도병마판관'을 겸했다.[2] 이때 전령을 따로 서북면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이 전령은 중간에 김치양 일파에 의해 처단되어 서북면에 있던 강조는 목종의 부탁을 받지 못하고 단독으로 군사를 일으켰다.[3] 그리고 이 시점부터 이전과 달리 장연우에 대한 눈빛과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4] 촬영 시점이 현종과 강감찬 쪽으로 진행되어 황보유의가 어디서 도끼를 구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메이킹 영상'에서는 강감찬의 절규가 끝나기도 전에 도끼를 가지고 와 NG가 난 적도 있었다.[5] 이때 지채문의 밥을 먹으려던 장연우보다 먼저 지채문의 밥그릇을 들고 가 장연우를 민망하게 한다.[6] 하공진이 구원하고 나서 현종의 친조 표문을 들고 갈 때, 데리고 온 군사들은 현종의 호위를 맡겼다. 그러나 현종은 원정황후와 헤어질 때 그 군사들을 통군사 최사위와 충주사록 김종현에게 맡겨 원정황후를 호위하도록 했다.[7] 간혹 6부의 낭중이 정5품이고 시어사가 종 5품이라서 황보유의가 오히려 관직이 낮아진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6부의 낭중이 정5품으로 정해진 것은 현종의 아들인 문종 때의 일이라 이 때는 낭중의 품계가 어떠했는지 정확하지 않다.[8] 후에 '원성황후'로 불러지며, 현종의 뒤를 이은 덕종과 정종의 어머니이다.[9] 『고려사』의 '황보유의' 열전에 따르면, '두 사람은 결박된 채로 채찍으로 거의 죽을 정도로 맞았다'라고 적혀있다.[10] 이 발언을 보면, 장연우와 황보유의를 유배지로 호송한 안무사는 개경의 반란군들에 동조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11] 고려의 수도 개경은 여요전쟁 이전에는 황성만 있었을 뿐 별다른 방어 시설이 없던 지역이라 방어에 매우 취약했다. 제2차 여요전쟁 이후 강감찬이 건의해 축성을 시작한 개경의 나성은 황보유의와 이자림 등이 주도했는데, 워낙 길었는지 여요전쟁이 다 끝나고도 더 이어져 현종 재위 말년인 1029년이 되어야 완공되었다.[12] 이때 강감찬은 눈을 감으면서 안도감을 자아냈고, 이어 참지정사 유방과 우상시 지채문도 강감찬의 계획에 동의한다.[13] 상원수 겸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의 첫 승전 소식을 들고 전령이 올 때에는 전령을 노려보며 자리를 고쳐 앉는 모습도 보였다.[14] 다만 은빛 갑주를 착용한 유방이나 과거 강조나 양규가 도순검사 시절의 갑주와 비슷한 갑주를 착용한 노전, 지채문, 이자림과 달리 홀로 과거 몽진 당시 갑주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갑주를 착용했다.[15] 이때 지채문과 각각 어린아이 한 명씩을 안고 개경으로 개는 백성들과 동행한다.[16] 실제로는 화친파로서 현종 사후 덕종 때에 거란 문제를 두고 이자림(왕가도)와 대립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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