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5 19:44:39

황번

黃翻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행적3. 관련 사료4. 창작물에서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2. 행적

요서태수로 178년에 영제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바닷가에 떠내려온 시체 한 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시체는 노관을 쓰고 진홍색 옷에 몸은 온전했다. 황번은 꿈이라 생각했지만 그 시체는 말했다. 시체는 자신이 백이의 동생이자 고죽군의 아들로 바닷물이 밀려와 제 관을 부수었으니, 부디 저를 잘 묻어달라고 했다. 시체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사람들은 모두 까닭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1932년 2월 20일자에 올라온 만주유기 고구려유지라는 칼럼의 20번째에서 백이숙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중간 부분에 이야기를 실었는데, 백이숙제가 수양산에서 죽은 이야기, 윤석포가 백이숙제에 대한 시를 지은 이야기와 함께 실려있다.

3. 관련 사료

4. 창작물에서

소설 조자룡 하북제패에서는 남양군 육양현 출신으로 공손찬의 장인인 조포의 벗이며, 육양현의 속관으로 출사해 25세에 백하의 수적을 퇴치해 현승이 되었다가 27세에 시랑이 되었으며, 10여 년간 낭관을 지내다가 간의대부로 옮겼다.

황번은 바다에 떠내려온 시체가 자신에게 말한 꿈을 꾸어 상소로 영제에 알리니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영제의 마음에 들어 자주 찾게 되었고 40세가 되어 요서태수가 되었다. 공손찬이 유기가 유배된 일로 따라가기 위해 사직서를 냈다가 돌아오자 공손찬에게 사직서는 반려시켰다며, 공손찬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