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명가(明可) |
본관 | 부림 홍씨(缶林)[2] |
출생 | 1893년 6월 10일 |
경상도 의흥현 부동면 전귀동 (현재 대구광역시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 전귀마을 441번지[3]) | |
사망 | 1939년 7월 12일 (향년 46세)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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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93년 6월 10일 경상도 의흥현 부동면 전귀동(現 대구광역시 군위군 산성면 백학리 전귀마을 441번지)에서 아버지 홍수영(洪洙永, 1864 ~ 1907)과 어머니 청도 김씨(1860 ~ 1909)[4]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상도 의흥현 파립면 수북동(現 군위군 의흥면 지호리 443번지)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그는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20년 음력 8월, 군위군 산성면에서 차경석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 신도로부터 1924년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국외 독립운동단체와 호응해 보천교 신도들이 일제히 독립운동을 개시해 결국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고, 이에 흠치교에 가입해 치성비 명목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납부했다. 이후 신도 모집에 힘써 교단의 확장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후 체포되어 1921년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5]을 선고받아 곧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39년 7월 12일 별세했다.
200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