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1 11:39:33

호르스트 부츠

호르스트 부츠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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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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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前 축구감독
파일:HorstBuhtz.jpg
<colbgcolor=#f0f0f0> 이름 호르스트 부츠
Horst Buhtz
출생 1923년 9월 21일
바이마르 공화국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랑엔펠트
사망 2015년 3월 22일(향년 91세)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 선수 포르투나 마그데부르크 (1937~1942)
SG 마그데부르크 알테 노이슈타트 (1946~1947)
키커스 오펜바흐 (1947~1950)
VfB 뮐부르크 (1950~1952)
토리노 FC (1952~1957)
YF 유벤투스 (1957~1959/ 플레잉 코치)
AC 벨린초나 (1959~1962/ 플레잉 코치)
감독 스포르트프룬데 자르브뤼켄 (1962~1963)
보루시아 노인키르헨 (1963~1966)
하노버 96 (1966~1968)
부퍼탈 SV (1968~1974)
베식타스 JK (1974~197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976)
1. FC 뉘른베르크 (1976~1978)
KFC 위어딩겐 05(1978~1981)
알레마니아 아헨 (1981~1982)
슈투트가르트 키커스 (1983~1985)
SC 포르투나 쾰른 (1987)
포르투나 마그데부르크 (1991~2015/ 명예회장)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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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전 축구선수 겸 축구감독.

2. 선수 경력

16세에 이미 포르투나 마그데부르크의 성인 팀에서 활약하던 부츠는 전쟁 이후 키커스 오펜바흐로 이적했다. 오펜바흐에서 그는 1949년 남부 독일 챔피언십을 우승했다. 1950년 독일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VfB 슈투트가르트에 2:1로 패했다.

VfB 뮐부르크[1]에서는 1950년부터 1952년까지 63경기 33골을 기록했다. 오버리가 통산 143경기 69골을 득점했다.

1952년, 토리노 FC로 이적하며 세리에 A에서 뛴 두 번째 독일인이 되었다.[2] 토리노는 수페르가의 비극 이후 팀을 리빌딩 하는 중이었는데, 연봉 150,000마르크라는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그를 영입했다. 토리노의 팬들은 그를 "일 테데스코 il tedesco [3]"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에서 127경기 37골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1957년 스위스의 YF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이후에는 선수 겸 코치로 뛰었다.

3. 감독 경력

오베르리가 쥐트베스트의 스포르트프룬데 05 자르브뤼켄에 부임하여 시즌을 6위로 마치며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시즌 종료 이후 보루시아 노인키르헨와 계약을 맺었다. 보루시아 노인키르헨는 62/63시즌을 2위로 마치며 아쉽게 새로이 창설된 분데스리가 합류에 실패했었다. 부츠는 팀을 레기오날리가 수드에서 우승시키며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다음 시즌 17위로 강등되며 팀을 떠났다.

하노버 96에 부임하여 66/67시즌을 9위로 마쳤지만, 다음 시즌 경질되었다.
레기오날리가 베스트의 부퍼탈 SV에 부임했다. 71/72시즌 레기오날리가를 우승하고, 승격 플레이오프 8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72/73 시즌 분데스리가 4위로 UEFA 컵 진출권을 따내는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73/74 시즌 부진하며 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강등권 경쟁하여 겨우 잔류했다. 74/75시즌 리그 10경기 만에 경질되었다. 부퍼탈 SV는 경질 이후 남은 시즌 승리를 1번 밖에 하지 못하며 분데스리가 최소승 기록을 세우게 된다.

터키의 베식타스 JK로 이적했다. 첫 시즌 리그는 5위에 그쳤으나 팀을 튀르키예 쿠파스에서 우승시켰다. 1976년 1월 경질되며 2. 분데스리가 노르드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부임했다. 팀에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1. FC 뉘른베르크와 계약을 맺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리그 2위로 이끌며 승격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나, 플레이오프 상대는 다름 아닌 1. FC 뉘른베르크였다. 다음 시즌 부터 뉘른베르크 감독을 하게 될 부츠였기에, 도르트문트 보드진은 플레이오프 직전 그를 경질했다.[4]

뉘른베르크에서 그는 시즌을 2위로 마치며 승격 플레이오프 자격을 따냈으나 역시 플레이오프 직전에 경질되었다. [5] 2. 분데스리가 수드의 KFC 위어딩겐 05에 부임한 이후 다시 리그 2위를 차지했다. 다행이도 이번에는 플레이오프 전에 경질되지 않았고, 팀을 승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79/80 시즌 15위로 겨우 잔류했으나 다음 시즌 18위로 강등되며 경질되었다.


[1] 이후에 카를스루어 SC로 합병되었다.[2] 첫 번째는 TSV 1860 뮌헨에서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루드윅 얀다[3] "그 독일인"이라는 뜻[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며 분데스리가로 승격한다.[5] 뉘른베르크는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하며 승격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