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28 09:07:28

헤카타이오스

Ἑκαταῖος / Hecataeus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대중 문화에서

1. 개요

기원전 4세기, 트라키아 반도(현재의 갈리폴리 반도)에 위치한 식민도시 카르디아의 참주.

사료에서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친구(φίλος)’로 처음 언급되며,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의 암살 직후, 아시아에서 반란을 일으키리라 생각되는[1] 아탈로스 장군을 사로잡거나 처치하라는 명령을 받고 소아시아로 파견되었다.[2]

병사를 거느리고 소아시아에 이미 주둔 중이던 파르메니온과 합류한 후, 정면 대결보다 ‘비열한 술수’를 선호하여 아탈로스를 암살하였다. 이후 언급이 전무한 걸 보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에는 종군하지 않은 듯 하며, 정확히 어느 시점에 카르디아의 참주가 되었는지 또한 불명이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동료 카르디아 시민이었던 에우메네스가 대왕에게 헤카타이오스를 축출하고 카르디아에 민주정을 돌려달라고 자주 졸라대었다 하니, 적어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 이전이었을 것이다.[3]

앞서 언급하였듯,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동향 출신의 마케도니아 중신 에우메네스와 사이가 몹시 나빴다고 기록한다. 이는 대왕의 사후, 기원전 323년의 라미아 전쟁 당시 에우메네스가 레온나토스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당시 라미아에 포위되어 수성 중이던 안티파트로스는 바다 건너편의 여러 디아도코이 장군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데, 이 중에는 페르디카스의 명령대로 에우메네스를 위해 프리기아 지방을 평정하던 레온나토스도 있었다. 그런데 안티파트로스가 레온나토스에게 보낸 사자가 다름아닌 헤카타이오스였다. 레온나토스는 안티파트로스의 지원요청에 응하며 에우메네스에게도 행동을 같이할 걸 권하였고, 헤카타이오스와 에우메네스 둘 사이의 화해를 중재하려 들었지만 실패했다. 결국 레온나토스는 혼자서 안티파트로스를 지원하러 갔다가 그리스 동맹군에게 패배해 전사한다.

헤카타이오스는 이 역할을 마지막으로 사서에 등장하지 않으나, 안티파트로스 파벌으로 계속 활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 대중 문화에서

2.1.히스토리에

주인공인 에우메네스가 소년 시절일 때부터 안 악연. 양아버지 히에로뉘모스의 죽음을 초래한 장본인이자, 에우메네스가 노예로 전락하게 한 원수다. 이후 카르디아의 유력 시민으로 떵떵거리지만, 필리포스 2세의 비잔티온 전역 (기원전 340년) 때엔 마케도니아의 관리로 금의환향한 에우메네스의 말잡이 노릇을 하게 되는 굴욕도 겪는다.

나중에는 펠라의 왕궁 복도에서 에우메네스에게 야만인이라고 욕설을 퍼붓다가 빡친 아탈로스한테 두드려 맞고, 에우메네스에게 서로 조심하자는 소리를 듣는다.


[1] 아탈로스의 조카딸이자 필리포스의 비였던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가 올림피아스의 손에 숙청되었기 때문에[2] Diod. 17. 2, 5[3] Plut. Eum.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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