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 국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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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나라 2대 국군 열후 烈侯 | ||
성 | 희(姬) | |
씨 | 한(韓) | |
휘 | 취(取) | |
아버지 | 한경후(韓景侯) 한건(韓虔)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87년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99년 ~ 기원전 3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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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2대 국군. 휘는 취(取). 아버지인 경후가 죽자, 그 뒤를 이었다. 한문후의 아버지. 이때 재상인 한괴(韓傀)[1]가 암살된 사건이 일어나 나라가 일시 혼란에 빠졌으나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어 생산력이 향상되었다.2. 생애
한 열후 3년(기원전 397년), 엄중자(嚴仲子)[2]가 은혜를 베푼 협객인 섭정(聶政)이 원수인 상국 협루(俠累)를 죽여버리고 난 뒤에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뽑으며 자결하여 아무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누나가 섭정의 정체를 알려주고 자결했다.한 열후 9년(기원전 391년), 진(秦)나라가 한나라의 땅 의양(宜陽)을 쳐서 그 주변의 6개 읍을 취했다.
한 열후 13년(기원전 387년), 한 열후가 죽고, 그 아들인 한유(韓猷)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한문후이다.
한 열후 시대의 기록이 적지만 특기할 사항은 바로 한나라에서 중앙집권체제가 이뤄지기 시작했으며, 철제 농기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생산력이 증대되었다는 것이다.[3]
[1] 한열후의 이복동생. 이 사람이 한나라의 왕족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했다. 흔히 알려진 이름인 협루(侠累)는 자로 추정된다.[2] 본명은 엄수(嚴遂).[3] 한나라가 있던 하남성은 지금은 가난한 지역이지만 고대 중국에선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다. 중국 역사의 시작이 하동, 하남, 하내 지역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