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필립 도비니 Philip d'Aubigny |
생몰년도 | 1166년경 ~ 1236년경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링컨셔 잉글비 |
사망지 | 예루살렘 |
아버지 | 랄프 도비니 |
어머니 | 시빌 발로뉴 |
형제 | 올리버, 앨리스, 존, 군노라, 윌리엄, 마틸다, 랄프 |
직위 | 서머싯의 츄튼 멘딥과 사우스 페더튼, 옥스퍼드셔의 뱀튼 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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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1차 남작 전쟁 시기에 존 왕과 헨리 3세 부자를 따랐다.2. 생애
1166년경 벨부아르, 잉글비, 삭실비, 브로드홈의 영주인 랄프 도비니와 시빌 발로뉴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올리버, 앨리스, 존, 군노라, 윌리엄, 마틸다, 랄프가 있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형제 랄프가 벨부아르, 잉글비, 삭실비, 브로드홈의 영지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랄프는 1205년 프랑스 왕국에 귀순했고, 필립과 그의 형제 2명 이상이 레스터 백작 로버트 드 브레퇴이의 부하가 되었으며, 월섬의 영지를 수여받았다.1215년 마그나 카르타가 존 왕의 서명을 거쳐 선포될 때 증인으로 참여했으며, 마그나 카르타 원문서에서도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후 제1차 남작 전쟁이 발발하자 반란에 가담한 형제 윌리엄 도비니와는 달리 존 왕과 헨리 3세 부자의 편에 섰으며, 켄트주와 서식스에서 왕당파 군대를 지휘했다. 1217년 링컨 전투에 참여해 승리에 공헌했고, 같은 해 8월 24일 샌드위치 해전에서 잉글랜드 함대를 지휘해 루이 왕자에게 지원할 뻔한 적 함대를 궤멸했다. 제1차 남작 전쟁이 종결된 뒤 어린 헨리 3세의 가정교사가 되었고, 왕이 성인이 된 뒤 왕의 교육에 기여한 공로로 서머싯의 츄튼 멘딥과 사우스 페더튼, 그리고 옥스퍼드셔의 뱀튼 영지를 수여받았다.
1235년 동생 올리버와 함께 제5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1년 후인 1236년경 예루살렘에서 사망했고, 예루살렘의 성모 교회 옆에 안장되었다. 그의 문장이 새겨진 장부석은 1925년에 발견되었다. 그는 생전에 올드코츠의 필립의 미망인과 결혼했지만 자녀를 낳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영지 대부분은 그의 조카 랄프 도비니에게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