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14 16:23:39

프랭크퍼트

켄터키주주도
Frankfort
프랭크퍼트
파일:Flag_of_Frankfort,_Kentucky.svg.png 파일:Seal_of_Frankfort,_Kentucky.png
시기(市旗) 시장(市章)
<colbgcolor=#b31c31><colcolor=#fff> 지역 켄터키 프랭클린 카운티
면적 15.07 sq mi (39.03 km2)
해발고도 505 ft (154 m)
시장 Layne Wilkerson

1. 개요

<nopad> 파일:ternalfrankextfort.jpg

프랭크퍼트(Frankfort)는 미국 켄터키 주의 주도이다.[1]

버번 위스키로 유명한 도시이다. 버팔로 트레이스, 짐빔의 증류소가 있으며, 주 의사당과 여러 박물관들이 있다.[2]

2. 역사

프랭크퍼트의 역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제퍼슨 카운티의 만스 개울에서 소금을 제작하고 있던 개척자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개척자 스티븐 프랭크는 켄터키 강에서 사망했고, 그 후 정착민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살해당한 개울을 프랭크스 포드(Frank's Ford)라고 불렀고 이것이 나중에 프랭크퍼트가 되었다. 1786년, 제임스 윌킨슨은 켄터키 강 북쪽 프랭크퍼트에 110ha 규모의 영토를 구매하였다. 프랭크퍼트는 켄터키 강을 이용해 물류 산업을 발전시켜 오하이오강, 미시시피강 그리고 뉴올리언스로 운송하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켄터키는 1792년에 미국의 주가 되었으며, 프랭크퍼트는 켄터키의 주도가 되었다. 주도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리적 중심, 켄터키 강의 접근성, 그리고 정치적인 타협 등이 함께 고려되었다. 남북전쟁 동안 북군은 현재 퍼트 힐이라고 불리는 곳에 요새를 건설해 남군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남군은 1862년 9월 3일부터 프랭크퍼트를 잠시 점령했으며, 남부와 뜻을 같이했던 사람들이 남부 연합 소속 주지사의 취임식을 개최하기도 했지만 이내 북군이 탈환하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이는 남부 연합군이 연방의 주도를 장악했던 유일한 시기였다.

남북전쟁 이후 프랭크퍼트는 행정 중심지로서 기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버번 위스키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다. 그리고 주 정부 기관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행정 중심 도시로 정체성을 확립했다.

3. 교육

고등교육 기관으로는 켄터키 주립대학교가 있다.[3] 루이빌 대학교, 켄터키 대학교 등과 라이벌을 형성하고 있다.

4. 경제

프랭크퍼트는 켄터키 주의 모든 주 정부 기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주 정부 공무원, 행정직, 법률직, 정책분석가, 공공서비스 전문가 등이 대규모로 근무하고 있다. 위스키 산업이 유명해서 버팔로 트레이스, 짐빔의 증류소도 프랭크퍼트에 위치하고 있다.

5. 관광

  • 퍼트 힐 (Fort Hill): 남북전쟁 당시 제103보병연대가 켄터키 주 정부를 지키기 위해 세운 군사 요새. 현재는 프랭크퍼트 전역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공원이다.
  • 버팔로 트레이스 증류소 (Buffalo Trace Distillery): 1805년 지어진 버팔로 트레이스의 증류소로 미국의 가장 오래된 증류소 중 하나이다. 금주법 기간 동안에도 위스키를 약품으로 만들기 위해 증류소를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이 증류소에서 매년 10,000,000L에 달하는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 제시 R 자이글러 하우스 (Jesse R. Zeigler House): 1909년 완공된 목사의 집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했다.
  • 주 의사당 (Old State Capitol): 1830년부터 1910년까지 켄터키 주 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켄터키의 역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 도시 규모는 루이빌, 렉싱턴보다 작다.[2] #[3] 태국 총리잉락 친나왓의 모교로도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