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01:02:50

페르디카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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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마케도니아 아르게아스 왕조 12대 국왕
페르디카스 2세
Περδίκκας|Perdiccas
파일:페르디카스 2세.jpg
페르디카스
Περδίκκας
출생 미상
미상
사망 기원전 413년
마케도니아
재위 기간
마케도니아
바실레우스
기원전 448년 ~ 기원전 41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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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케도니아 왕국 아르게아스 왕조의 12대 왕.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스파르타아테네 양국 사이를 저울질하며 이득을 챙겼다.

2. 생애

알렉산드로스 1세와 알려지지 않은 여인의 아들로, 형제로 알케타스 2세, 필리포스, 메넬라오스, 아민타스, 그리고 스트라토니케가 있었다. 기원전 454년, 알렉산드로스 1세가 사망했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족 사이에서 왕좌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먼저 왕위에 올랐던 알케타스 2세는 기원전 448년 왕위에서 물러났고, 페르디카스가 그의 뒤를 이었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 따르면, 알케타스 2세는 술독에 빠져 있어서 왕으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기에 물러났다고 한다. 그 후 페르디카스 2세의 아들 아르켈라오스 1세가 알케타스 2세와 사촌 알렉산드로스를 술에 취하게 한 후, 그들을 수레에 싣고 밭으로 데려가서 죽인 후 암매장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나, 실제로 마케도니아에서 정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페르디카스가 새 왕에 올랐지만, 형제 필리포스가 악시아 강에서 암팍시티스 지역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하며 맞섰다.

기원전 451년,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1,000명의 정착민을 비살티야로 보냈고, 그들은 스트림몬에 정착지를 건설했다. 아테네는 이 정착지에서 함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목재와 송진을 채굴했으며, 광물을 채집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동쪽 해안에 제멋대로 식민지를 건설했으니 분명 거슬렀을 테지만, 페르디카스 2세는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무력 대결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국과 가까운 곳에 아테네 식민지가 건설된 것을 활용하여 그들과 친분을 맺고 무역을 활성화함으로써, 경쟁자 필리포스를 무찌를 힘을 모으고자 했다.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에 따르면, 페르디카스 2세가 다스리던 시절의 마케도니아는 아테네에 공물을 바쳤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기원전 446년 또는 기원전 445년 헤스티아에서 아테네군에 의해 추방된 망명자들을 수용했다.

기원전 440년에서 430년 사이, 페르디카스 2세와 필리포스는 무력 충돌을 벌였다. 그동안 아테네와 친분을 맺었던 페르디카스 2세는 그들의 지원에 힘입어 필리포스의 영역을 모조리 빼앗았고, 필리포스는 엘리메야(Elimeya) 왕 데르다 1세의 궁정으로 도주했다. 그런데 이무렵 아테네가 새 식민도시 암피폴리스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에게 해로 흐르는 스트루마 강 동쪽의 고원에 건설되었다. 아테네는 이 도시를 통해 트라키아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화하고자 하였고, 목재와 은광 등을 자체적으로 조달하였다. 이렇게 되자 페르디카스 2세는 위협을 느꼈다. 그동안 마케도니아는 아테네에 목재와 은을 판매하면서 큰 수익을 챙기고 있었는데, 아테네가 자체적으로 목재와 은을 조달하게 되었으니 수입원이 끊겨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아테네가 트라키아를 지배하게 된다면, 마케도니아는 앞뒤로 아테네를 포함한 델로스 동맹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컸다.

설상가상으로, 아테네는 필리포스와 엘리메야 왕 데르다 1세를 지원해 페르디카스 2세를 약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일에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 했다. 이에 페르디카스 2세는 스파르타코린토스에 사절을 보내 아테네의 전횡에 공동으로 대항하자고 호소했다. 여기에 할키디키 지역 주민들에게 아네테에 대항하라고 선동했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챈 아테네는 페르디카스 2세를 실각시키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기원전 432년, 아테네는 아르케스트라토스의 지휘하에 30척의 배와 1,000명의 호플리테스를 마케도니아로 파견했다. 그는 필리포스를 지원하고, 할키디키의 대표적인 도시인 포티데아를 공략하여 성벽을 허물고 인질을 잡는 임무를 맡았다. 포티데아는 처음엔 아테네와 평화 협상을 맺으려 했지만, 스파르타가
"만약 아테네가 포티데아를 친다면, 우린 아티카를 침공하겠다"
고 약속하자 아테네와 맞서기로 결심하고 할키디키의 부족민들과 동맹을 맺었다.

아르케스트라토스는 포티데아 방면은 쉽게 공략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하고, 페르디카스 2세를 몰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필리포스와 데르다 왕, 그리고 아테네 연합군은 마케도니아를 침공하여 여러 해안 농장을 점령했다. 페르디카스 2세는 할키디키인 일부를 볼바 호수 근처로 이동시키고, 요새화된 올린토스 주변에 진영을 세웠다. 얼마 후, 킬리아스가 지휘하는 아테네 호플리테스 2,000명이 추가로 도착하여 피드나를 포위했다. 피드나를 잃는다면, 마케도니아 해안 전체가 상실될 것이었다. 이때 아리스테오스가 지휘하는 코린토스의 호플리테스 1,600명과 400명의 경무장 부대가 포티데아에 당도했다. 이에 아테네군은 피드나 포위망을 풀고 포티데아로 진격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군이 후방을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페르디카스 2세와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협정 내용이 무엇인지는 기록이 미비해 확실하지 않으나, 피드나를 위협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항구도시인 메토네를 마케도니아에 넘겨주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페르디카스 2세는 평화 협정을 얼마 안가 파기하고 코린토스와 힘을 합쳐 아테네군을 협공하려 했다. 킬리아스는 필리포스에게 기병대를 줘서 페르디카스 2세의 공세를 저지하게 하고, 본인은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포티데아로 진군했다. 페르디카스 2세는 올린토스에서 필리포스와 대치했지만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보이지 않았고, 아테네군은 그 사이에 코린토스-포티데아 연합군을 격파했다. 이제 아테네로부터 육상과 해상 모두 공격당할 위기에 몰린 데다, 마케도니아 북동쪽의 오드리시아 왕국이 아테네와 손을 잡을 조짐을 보이자, 페르디카스 2세는 아테네에 사절을 보내 델로스 동맹에 가입하겠다고 제안했다. 아테네는 흔쾌히 수락하고, 자신들이 포티데아 원정 때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페르마 시를 돌려줬다. 이후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의 지원을 받아 에게 해의 북쪽 해안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페르디카스 2세는 은밀히 코린토스를 지원하여 아테네에 계속 대적하도록 유도했다.

기원전 429년, 페르디카스 2세는 아테네에 반기를 든 아카나니아 반군을 돕기 위해 1,000명의 병사를 파견했다. 얼마 후 시탈케스 왕이 이끄는 오드뤼사이 왕국군이 마케도니아를 침공했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15만명에 달했다고 하며,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보병 12만명에 기병 5만명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과장이지만, 마케도니아군에 비해 수적으로 우월한 건 분명하다. 이 침공은 아테네의 사주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케도니아군은 수적으로 우월한 적과 정면대결하기 보다는 여러 요새를 사수하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적의 약점을 찌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시탈케스의 군대는 악시아 강을 돌아 마케도니아 각지를 돌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미그도니아, 안테문트, 그리고 크레스토니아를 약탈했으며, 다수의 정착촌을 파괴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가서 식량난에 시달렸고, 아테네가 함대를 보내주지 않은데다, 마케도니아군의 거센 반격에 시달리다 1개월여 만에 본국으로 퇴각했다. 이후 페르디카스 1세가 누이 스트라토니케를 시탈케스 왕에게 시집보내면서, 마케도니아와 오드뤼사이는 화해했다. 얼마 후, 스파르타와의 전쟁이 급했던 아테네 역시 휴전 협상을 제의했고, 페르디카스 2세는 받아들였다. 이후 양자는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 페르디카스 2세는 그 틈에 내정에 전념할 수 있었다.

기원전 424년, 페르디카스 2세는 마케도니아 상부 지역의 린케스티다 왕 아르라베이와 분쟁을 벌였다. 그는 스파르타에게 이 분쟁에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스파르타는 필로스와 스팍테리아에서 아테네군에게 패배한 뒤, 아테네를 상대로 정면 대결하기보다는 마케도니아를 자기네 편으로 끌여들여서 아테네를 견제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마케도니아는 아테네의 지배를 받는 도시들을 공격해줄 테니 병력을 보내달라고 청했고, 스파르타는 브라시다스 장군에게 병력을 맡겨서 마케도니아로 파견했다. 브라시다스가 도착하자, 페르디카스 2세는 그가 이끄는 용병대에 막대한 지원을 해주면서 린케스티다 왕을 조속히 무찔러주길 희망했다. 하지만 브라시다스는 굳이 마케도니아를 위해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고 보고, 린케스티다 왕과 협상했다. 결국 평화 협정은 체결되었다. 이 일로 브라시다스에게 원한을 품었지만, 페르디카스 2세는 평화협정에 따르기로 하고 스파르타와의 동맹 역시 유지했다.

기원전 424년에서 423년 겨울, 브라시다스는 암피폴리스를 공략했다. 이로 인해 아테네가 선박 건조에 필요한 목재를 자체적으로 구하기 힘들어졌다. 이때 페르디카스 2세가 암피폴리스에 찾아가 린케스티다 왕과 전쟁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만약 이번에도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보급을 원천 봉쇄해버리겠다고 덧붙였다.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브라시다스는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르기로 했고, 마케도니아-스파르다 연합군은 린케스티다로 진격했다. 초기에는 린케스티다 왕 아르라베이를 상대로 몇 차례 승리를 거뒀지만, 그라보스 1세가 이끄는 일리리아인들이 린케스티다와 손을 잡고 공동 대항한데다 페르디카스 2세와 브라시다스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서 작전은 더 이상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페르디카스 2세가 병사들을 이끌고 철수해버리자, 브라시다스는 마케도니아 하부 일대를 약탈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페르디카스 2세는 이런 상황에서 스파르타와 동맹을 이어가는 건 무익하다고 봤고,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아테네에 목재를 재판매하기로 했다.

아테네와 마케도니아 간의 동맹이 곧 성사되자, 브라시다스는 극도로 위험한 위치에 몰렸다. 그를 도우려던 스파르타 지원군은 모조리 차단되었고, 브라시다스는 에게 해 북쪽 해안에 있는 점령지에서 방어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422년 아테네 사령관 클레온이 30척의 함대를 이끌고 할키디키에 도착한 뒤 암피폴리스 탈환전에 착수했다. 이때 그는 마케도니아에 일전에 맺은 동맹 협약대로 원군을 보내라고 요구했지만, 페르디카스 2세는 군대를 보내주지 않았다. 이후에 벌어진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아테네군이 도시를 탈환했지만, 클레온과 브라시다스 둘다 전사해 버렸다. 이후 전쟁에 지칠대로 지친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기원전 421년 '니키아스 평화'를 체결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평화는 깨지고 양자는 전쟁을 재개했다.

페르디카스 2세는 양국이 서로 싸우는 걸 몇년간 지켜보면서 전쟁 물자를 판매해 수익을 챙겼다. 그러다 기원전 417년, 그는 돌연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기로 했다. 그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가 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에게 해의 패권을 자기 것으로 돌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는 그해 겨울 함대를 파견해 마케도니아 해안가를 봉쇄했고, 기원전 416년 메토네에 원정군을 상륙시켜 그 일대를 황폐화시켰다. 페르디카스 2세는 스파르타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스파르타군은 끝내 오지 않았고, 결국 기원전 414년 아테네와 동맹을 다시 맺기로 했다. 그 후 그는 아테네 장군 에베티온(Evetion)이 아테네에 반기를 든 암피폴리스 탈환 작전을 벌이는 걸 도와야 했다. 기원전 413년 사망했으며, 아르켈라오스 1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