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9:19:19

파올로 칸나바로

파올로 칸나바로의 역임 직책
{{{#!folding ▼
SSC 나폴리 주장
잔루카 그라바
(2007~2008)
파올로 칸나바로
(2008~2014)
마렉 함식
(2014~2019)
}}} ||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paolocannavaro.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파올로 칸나바로
Paolo Cannavaro
출생 1981년 6월 26일 ([age(1981-06-26)]세)
이탈리아 나폴리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체중 83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SSC 나폴리 (1998~1999)
파르마 FC (1999~2006)
엘라스 베로나 FC (2001~2002 / 임대)
SSC 나폴리 (2006~2014)
US 사수올로 칼초 (2014 / 임대)
US 사수올로 칼초 (2014~2017)
코치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8~2021 / 수석 코치)
베네벤토 칼초 (2022~2023 / 수석 코치)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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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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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가족 파비오 칸나바로
장남 마누엘 칸나바로
차남 아드리안 칸나바로
조카 안드레아 칸나바로
}}}}}}}}} ||
1. 개요2. 클럽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스타일5. 국가대표 경력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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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paolo-cannavaro.jpg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
통산 기록 278경기 9골 3도움 (나폴리 역대 최다 출장 11위)

2. 클럽 경력

전설적인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의 동생으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나 그의 형처럼 1996년 SSC 나폴리 유스에 입단했다.[1]

파올로 칸나바로는 1998년 당시 세리에 B에 있던 나폴리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으며 1999년 형이 있던 파르마로 이적한다. 하지만 두 시즌 동안 형에게 밀리면서 리그에서 단 5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2001년 엘라스 베로나 FC로 임대를 가게 된다. 베로나에서 경험을 쌓고 파르마로 복귀하자 파비오 칸나바로가 인테르로 이적하게 되면서 파올로 칸나바로는 자연스레 출전시간을 늘려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06년 당시 파산했다가 데 라우렌티스가 인수하며 재기를 꿈꾸던 고향팀 나폴리로 이적[2]하게 된다. 나폴리 이적 이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천신만고 끝에 나폴리는 세리에 A로 승격하는데 성공하였다.

파일:attachment/파올로 칸나바로/Paolo Cannavaro.jpg

세리에 A에서도 칸나바로는 주장직을 역임하면서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1-12 시즌엔 챔피언스리그 16강, 그리고 코파 이탈리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2012-13 시즌에도 쭉 주장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가 2012년 12월 지안루카 그라바와 함께 난데없이 승부조작 혐의를 쓰게 되었다.

2010년 5월 16일 그라바와 칸나바로는 삼프도리아 전에 출전했는데, 당시 나폴리의 골키퍼였던 마테오 지아넬로가 승부조작을 제의했으나 거절했다. 즉 승부조작을 거부한 셈인데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이 두 선수가 승부조작 고발 의무를 위반했고, 나폴리는 이들을 감독하는데 소홀했다는 이유로 이 두 명에게 6개월 출장정지 및 나폴리의 승점 2점 삭감과 7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시 나폴리의 주전으로 뛰고있던 칸나바로 본인은 물론 세리에 A 2위를 질주하던 나폴리로서도 타격이 큰 소식이었다. 이로 인해 나폴리는 라치오에 2위 자리를 내줬으며 주전으로 뛰고있던 칸나바로는 출장정지로 인해 경기를 뛰지 못하게 되었다. 나폴리는 이에 크게 반발하며 항소하기로 하였으며, 칸나바로와 그라바는 자신들이 승부조작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결국 이듬해 1월 무죄판명이 나면서 칸나바로의 출장 정지는 무효화되었고 나폴리의 승점도 복구되었다. 당시 칸나바로는 복귀가 확정되면서 나폴리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지옥에서 보낸 한 달이었다. 기분이 정말 나빴으며 이 기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토로했다. 이후 나폴리는 쭉 2위 자리를 지키며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2012-13 시즌 이후 그동안 쓰리백을 쓰던 왈테르 마짜리가 인테르로 떠나고 4231을 주로 쓰는 라파엘 베니테스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칸나바로의 위상에 빨간불이 켜졌다. 성향상 칸나바로와 겹치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울 알비올을 영입한 것. 하지만 대부분 시즌이 시작하기 전 알비올과 칸나바로가 주전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칸나바로는 알비올의 백업으로 밀려나며 주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오랜만에 나온 로마전에서[3] 큰 실수들을 저질러 베니테즈의 플랜에서 제외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45분경 저지른 반칙으로 경고를 받았으며 이때 얻어낸 프리킥으로 로마의 피아니치가 선제득점을 했고, 71분에 페널티 박스 안에서 다시 반칙을 하며 결국 경고누적으로 퇴장, 그리고 이로 인한 페널티킥을 또다시 피아니치가 득점하며 사실상 경기의 모든 실점에 관여했다. 그 경기 이후 칸나바로는 벤치명단에만 이름을 올릴뿐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브리토스, 페르난데스, 심지어 유망주 우비니가 경기에 나설 때도 칸나바로는 로마전 이후 단 한 번도 베니테즈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실질적인 주장도 부주장인 함식이 이어받은 상태.

결국 2014년 1월 31일 US 사수올로 칼초로 임대되었다. 시즌 종료 후 사수올로가 완전 영입하였다. 2017년 12월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하였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직후 형이 감독으로 있는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수석코치가 되었다.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가 벌어지자 형과 함께 사임했다.

4. 플레이스타일

플레이스타일은 롱패스를 즐겨하는 스위퍼로, 유벤투스의 레오나르도 보누치와 상당히 흡사하다.[4] 쓰리백의 가운데에서 뛰는 것을 가장 선호하며 공격작업의 첫 번째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5.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으며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서 18번 출장한 것이 전부다. 2012-13 시즌 이후 한때 국가대표 발탁설이 돌기도 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6. 여담

  • 2014년 사수올로 칼초 완전영입 직후 큰조카 크리스티안과 자신의 두 아들을 사수올로 칼초에 입단시켰다. 큰 조카는 5년만에 축구를 그만뒀지만 장남 마누엘은 2021년 세리에 C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를 했고 차남 아드리안은 센터백으로 사수올로 U-18 주장을 맡았다. 둘째 조카 안드레아도 2017년 축구를 시작했다.


[1] 파비오 칸나바로 역시 1988년 나폴리 유스에 입단했으며, 1992년에 데뷔한 후 1995년에 파르마로 이적했다.[2] 당시 나폴리는 세리에 C1에서 세리에 B로 승격했었다.[3] 당시 나폴리는 7전 6승 1무로 2위, 로마는 7전 전승으로 파죽지세로 1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승 경쟁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4] 포백에서의 안정감이 다소 떨어진다는것도 공통점이다. 이로 인해 칸나바로가 포백에서 알비올에게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