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e5e5e5> 이름 | 파브리치오 미콜리 Fabrizio Miccoli | |
생년월일 | 1979년 6월 27일 ([age(1979-06-27)]세) | |
국적 | 이탈리아 | |
출신지 | 풀리아주 나르도 | |
신체조건 | 168cm | |
포지션 | 공격수 | |
소속클럽 | ASD 비르투스 카사라노 (1996~1998) 테르나나 칼초 (1998~2002) 유벤투스 FC (2002~2004) → AC 페루자 칼초 (2003~2004 / 임대) ACF 피오렌티나 (2004~2005) 유벤투스 FC (2005~2007) → SL 벤피카 (2005~2007 / 임대) US 팔레르모 (2007~2013) US 레체 (2013~2015) 비르키르카라 FC (2015) | |
국가대표 | 10경기 2골 (이탈리아 / 2003~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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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2. 클럽 경력
어렸을 적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주로 나이가 많은 선수들과 뛰었다. 1992년, 14살의 나이로 AC 밀란 프리마베라에 합류하였으며 유소년 단계에서 한 시즌에 28골을 넣으며 챔피언쉽 트로피를 획득하였다.[1] 고향에 대한 향수로 남부 이탈리아에 돌아온 미콜리는 세리에 C 카사라노에 입단한 후 프로 경력을 시작하였다.첫 시즌부터 8골을 넣으며 좋은 모습을 보인 미콜리는 세리에 B 테르나나로 이적하여 4시즌간 주전으로 활약하며 32골을 넣었고 세리에 A 팀이었던 유벤투스의 눈도장을 받아 이적하였고 곧바로 페루자에 임대되었다.[2]
페루자에서 15골[3]을 넣으며 팀을 코파 이탈리아 준결승까지 올린 후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유벤투스로 복귀한 미콜리는 델 피에로와 트레제게의 교체 자원으로 8골을 넣는 활약을 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수뇌부는 미콜리를 썩 선호하지 않았고 이브라히모비치의 영입까지 겹쳐 본인의 자리를 더 찾고 싶어하였기 때문에 승격팀이었던 피오렌티나로 공동 소유권 형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4]
피오렌티나에서도 35경기 12골을 넣으며 팀의 잔류에 극적 기여를 한 미콜리는 금액 제시 과정에서 유벤투스가 200만 유로, 피오렌티나가 150만 유로를 제시했다. 이후 다음 시즌에는 벤피카로 임대를 떠나게 되었고 22경기 10골을 넣는 활약을 하였다.
2.1. US 팔레르모
팔레르모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
2007년 7월 1일, 벤피카 임대 종료 후, 팔레르모 측으로부터 영입 오퍼가 와 430만 유로로 이적을 진행하였다.
첫 시즌이었던 07/08 시즌에는 벤피카에서 당했던 부상의 여파로 꾸준한 폼을 보이지 못하였으나 08/09시즌은 14골을 넣으며 본인을 다시 어필하기 시작했고, 09/10 시즌 11월부터는 팀의 공식적인 주장으로 선정되었다.
미콜리라는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를 보유한 팔레르모는 유럽 대항전 진출과 코파 이탈리아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승승장구를 이루었다. 이 기간동안 버밍엄으로부터 연봉의 3배 이상에 달하는 제안을 받기도 하였으나 자신에게 믿음을 보여준 팔레르모에 잔류를 선언하였다.
6시즌 동안 팔레르모에서 179경기 81골을 기록하며 세리에 A 최다 출전자 (165경기), 최다 득점자(74골) 타이틀을 얻어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2.2. US 레체 & 비르키르카라
불미스러운 일로 방출된 이후 본인의 고향팀이었던 레체로 이적하여 2시즌간 활약한 후 몰타의 비르키르카라에서 본인의 커리어를 마무리하였다.커리어 615경기 220골.
3. 국가대표 경력
1996년부터 18세 이하 대표팀으로 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조반니 트라파토니의 부름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였다. 2003년 2월 12일, 포르투갈과의 친선전에서 데뷔를 하였으며 2004년에는 첫 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5]좋은 활약을 보였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소집되지 못하여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6]
4. 논란 및 사건사고
상술하였듯 팔레르모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지만, 시칠리아 마피아의 범죄 척결을 위한 수사를 지휘하다 폭탄 테러 보복으로 사망한 조반니 팔코네, 파올로 보르셀리노 검사[7]를 사적인 자리에서 조롱한 사실이 알이졌고, 이후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지만 팀에서 방출당했다.[8][9]이 사건이 주요하기는 했으나 그 이전부터 마피아랑 연관점이 많았던 인물로 시칠리아 마피아 뿐만 아니라 다른 마피아들 상대로 자금 세탁 혐의도 받은적이 있다.
2017년 10월 22일 나이트클럽을 운영하기 위해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마피아 보스 아들이랑 동업을 하였고 마피아를 통해 주변인물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살해협박, 금품갈취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인정되어 21년 11월 3년 6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2022년 5월, 최종적으로 집행 유예 처리되었다.
5. 플레이 스타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전형적인 축구 도사. 공격형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 자리 모두에서 뛰어난 테크닉을 보였으며 빠르고 날렵하면서 수준급의 킥까지 갖춰 많은 어시스트까지 기록하였다.6. 지도자 경력
트리에스티나의 유소년 부문에 합류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고향 레체에서 유소년을 육성하고 있다.[1] 이즈음 산 시로의 볼보이로도 간혹 뛰었다.[2] 이 때 본인에게 최고의 코치였던 세르세 코스미를 만난다.[3] 코파 이탈리아 5골 포함[4] 본인은 유벤투스에서의 1년을 '비극'이라고 표현하는 등 썩 좋은 기억으로 갖고 있진 않는 듯 하다.[5] 코너킥 상황에서 직접 넣은 골로 유명하며 한국어 해설 버전이 남아있다. #[6] 본인이 시즌 말쯤 무릎 부상을 당한 것도 있긴 하다.[7] 이탈리아의 국가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팔레르모 시에 위치한 공항이 이들의 업적을 기려 팔코네-보르셀리노 공항으로 명명되어 있다.[8] 축구 협회 징계위원회에서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9] 24년 11월, 팔레르모 방문 후 첫 일정으로 팔코네 재단에 참석하여 팔코네 부인의 환영을 받았다. 사건 후 지속적으로 사과와 반성을 표했기 때문에 당사자들간에는 완화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