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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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테리 쿠퍼 Terry Cooper | |
| 본명 | 테런스 쿠퍼 Terence Cooper | |
| 출생 | 1944년 7월 12일 | |
|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 브로더튼 | ||
| 사망 | 2021년 7월 31일 (향년 77세) | |
| 잉글랜드 | ||
| 국적 | | | |
| 신체 | 키 171cm|체중 미상 |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리즈 유나이티드 FC (1962~1975) 미들즈브러 FC (1975~1978) 브리스톨 시티 FC (1978~1980) 브리스톨 로버스 FC (1980~1981) 동커스터 로버스 FC (1981~1982) 브리스톨 시티 FC (1982~1984) |
| 감독 | 브리스톨 로버스 FC (1980~1981) 브리스톨 시티 FC (1982~1988) 엑서터 시티 FC (1988~1991) 버밍엄 시티 FC (1991~1993) 엑서터 시티 FC (1994~1995) | |
| 국가대표 | 20경기 (잉글랜드 / 1969~1974) | |
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1960년대와 1970년대 리즈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끈 혁신적인 좌측 풀백으로, 1970년 FIFA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전 좌측 풀백으로 활약했다.웨스트요크셔 브로더튼 출신으로 어린 시절 축구화를 종이봉지에 넣고 리즈 유나이티드를 찾아가 트라이얼을 요청한 일화로 유명하다. 돈 레비 감독 하에서 좌측 윙어에서 풀백으로 포지션을 전환한 후 공격적인 오버래핑 플레이로 현대적 풀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은퇴 후에는 여러 클럽에서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브리스톨 시티 FC를 웸블리 스타디움까지 이끌며 1986년 어소시에이트 멤버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쿠퍼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발탁된 것이 아닌, 어느 날 축구화를 종이봉지에 넣고 리즈 유나이티드를 찾아가 트라이얼을 요청했다. 그의 간청이 받아들여져 트라이얼을 받게 되었고, 충분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견습생 계약을 제안받았다.처음에는 좌측 윙어였던 쿠퍼는 17세에 입단하면서 돈 레비 감독에 의해 수비적인 역할로 전환되었다. 이후 6년간 1군에서 점진적인 성장을 보였고, 1966년 레비 감독은 그를 영구적인 3번으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쿠퍼는 그 이후 자리를 잡으며 혁신적인 풀백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적절한 수준의 체력과 기술, 그리고 크로스 능력을 바탕으로 좌측 측면에서 파괴적인 오버래핑을 구사하며 무서운 윙어 에디 그레이를 지원했다. 이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리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는 또한 '안쪽으로 파고들어' 중앙에서 공격에 가담하며 중요한 골들을 넣기도 했다.
1968년 리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아스날을 꺾고 리그 컵을 우승했다. 빈약하고 때때로 과격했던 경기는 코너킥이 반쯤 걷어진 후 쿠퍼의 발리슛으로 결판났으며, 아스널은 중앙 수비수 잭 찰튼이 골키퍼를 파울했다고 주장했다. 쿠퍼는 이어서 같은 시즌 페어스컵 우승에도 기여했다.
1969년 리즈는 쿠퍼의 기여와 함께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 레비 감독은 백업 좌측 풀백을 영입하지 않고 대신 유틸리티 플레이어 폴 메이들리를 쿠퍼의 부상이나 출장 정지 시 대체 자원으로 활용했다. 리즈는 1971년 페어스컵을 다시 우승했지만 리그에서는 마지막 날 우승을 놓쳤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리그와 FA컵 영예를 쫓는 리즈와 함께 비슷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였지만, 1972년 4월 스토크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 시즌 아스날을 꺾고 거둔 FA컵 결승 승리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부상의 합병증으로 인해 무려 20개월간 축구를 하지 못했다. 복귀했을 때는 1974시즌에 단 2경기만 출전했으며, 이로 인해 리그 우승 메달을 놓쳤다. 리즈는 29경기 무패 시작으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출전 경기 수 부족으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쿠퍼가 체력을 회복했을 때는 이미 리즈에서의 커리어가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 1974년 레비 감독이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떠난 것과 다음 시즌 에디의 동생 프랭크 그레이의 등장, 그리고 1972년 중앙 수비수로 영입했지만 좌측 풀백을 메우게 된 트레버 체리의 지속적인 존재로 인해 쿠퍼는 잉여 인력이 되었다. 그는 1975년 클럽을 떠나 前 리즈 동료 잭 찰튼이 감독으로 있던 미들즈브러에 합류했다.
미들즈브러에서 3년간 100경기 이상을 뛴 후, 그는 브리스톨 시티로 이적해 2년을 보낸 뒤 라이벌 브리스톨 로버스의 선수 겸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의 성공적이지 못한 기간 후, 그는 전 리즈 주장 빌리 브렘너를 도와 동커스터 로버스에서 선수로 뛰었다. 이후 1부에서 4부까지 연속 강등을 당한 브리스톨 시티의 선수 겸 감독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시즌 만에 1983-84시즌 4위로 마치며 3부 리그 승격을 달성했다. 2년 후에는 클럽을 처음으로 웸블리에 이끌었으며, 1986년 볼턴 원더러스를 꺾고 어소시에이트 멤버스 컵 결승에서 승리했다. 그의 감독 경력에는 두 차례의 엑서터 시티 시절 사이에 버밍엄 시티에서의 기간도 포함되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쿠퍼는 1969년 알프 램지 감독에 의해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으며, 잉글랜드가 5-0으로 대승을 거둔 가운데 뛰어난 개인 경기를 펼쳤다.1970년 멕시코에서 열린 FIFA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의 주전 좌측 풀백으로 훌륭한 연속 경기들을 선보였다. 대회는 8강에서 서독에게 패하며 끝났지만, 쿠퍼는 대회 전반에 걸쳐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총 20경기에 출전하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