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5:25:58

타마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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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헤티 왕국 왕비
카르틀리 왕국 18대 군주

თამარი | 타마르 2세
제호 한국어 타마르 2세
조지아어 თამარი
라틴어 Tamar II
가족 바크탕 6세(아버지)
루수단(어머니)
바카르(남동생)
기오르기(남동생)
안나(여동생)
투타(여동생)
테이무라즈 2세(남편)
헤라클리오스 2세(아들)
케테반(장녀)
엘레네(차녀)
아나(삼녀)
생몰 년도 1696년 ~ 1746년 4월 12일
재위 기간 1732년 ~ 1744년(카헤티 왕비)
1744년 ~ 1746년(카르틀리 여왕)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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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이무라즈 2세의 아내로, 남편이 카헤티 군주일 때는 왕비로서 정치에 참여했고, 남편이 카르틀리 군주일 때는 남편과 공동 왕으로 즉위했다.

2. 생애

카르틀리 왕국 17대 군주 바크탕 6세와 체르케스인 공주 루수단의 장녀이다. 남동생으로 바카르, 기오르기가 있었고, 여동생으로 안나, 투타가 있었다. 1712년 2월 2일 16살의 나이에 카헤티 왕국의 왕자 테이무라즈 2세와 결혼했다. 결혼식은 카르틀리 왕국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1732년 남편이 카헤티 왕으로 등극했을 때 그녀도 카헤티 왕비가 되었다.

1736년 남편이 나디르 샤의 아프가니스탄 원정에 동행하여 1738년까지 나라를 비우는 동안, 그녀는 남편의 조카 알렉산드레[1]와 함께 국정을 다스렸다. 알리 미르자는 나디르 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자 불안해한 끝에 반란을 일으키고 러시아 제국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타마르에게 동참을 권유했지만, 타마르는 그를 간곡히 설득해 계획을 포기하게 했다. 만약 알리 미르자가 계획을 밀어붙였다면, 나디르 샤와 함께 갔던 남편 테이무라즈 2세와 장남 헤라클리오스 2세는 나디르 샤에 의해 피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알리 미르자는 압력에 시달린 끝에 1738년 칸다하르의 분대 지휘관으로 좌천되었다가 그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1741년 나디르 샤는 카르틀리 고위 관료 기비 아밀라흐바리와 트빌리시 총독으로부터 테이무라즈 2세가 반역을 꾀했다는 고발을 받고 테이무라즈 2세를 데르벤트로 소환했다. 그녀는 즉시 남편과 함께 데르벤트로 가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나디르 샤는 이를 믿어주는 대신 그녀를 인질로 삼았다가 다케스탄 원정이 끝난 뒤 돌려보냈다. 카헤티로 무사히 돌아온 테이무라즈 2세는 자신을 모함한 기비와 전쟁을 벌인 끝에 1745년 수마리 요새로 몰아세우고 포위 공격했다. 아들 헤라클리오스 2세가 요새를 함락시킨 뒤 아버지에게 기비를 넘기자, 테이무라즈 2세는 그를 처단하려 했다. 이때 그녀가 동족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뜯어말렸고, 테이무라즈 2세는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여 나디르 샤에게 기비를 넘겼다.

그녀는 이외에도 남편이 나디르 샤의 원정에 동행하느라 국내를 비울 때마다 대신 국정을 잘 통치해 민중의 신망을 받았다. 1744년 남편이 아들 헤라클리오스 2세에게 카헤티 국왕 자리를 내준 후부터는 남편과 카르틀리 공동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1746년 4월 12일 사망했고, 므츠헤타의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테이무라즈 2세와의 사이에서 아들 헤라클리오스 2세와 세 딸 케테반, 엘레네, 아나를 낳았다. 헤라클리오스 2세는 1744년부터 1762년까지 카헤티 국왕을 역임했고, 1762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1798년까지 카헤티-카르틀리 연합 왕국을 이끌었다. 장녀 케테반은 아프샤르 왕조의 아딜 샤와 결혼했고, 차녀 엘레네는 자자 치치빌리 공작과 결혼했다. 삼녀 아나는 디미트리오스 오르벨리아니 공작과 첫번째로 결혼했고, 이오아네 오르벨리아니와 재혼했다.


[1] 다비트 2세의 아들로, 일찍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알리 미르자(ალი-მირზა)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