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안투사 (Ανθούσα) |
출생 | 757년 |
사망 | 801년 또는 808년 |
아버지 | 콘스탄티노스 5세 |
어머니 | 에우도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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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사브리아 왕조의 공주. 가톨릭과 정교회로부터 성인으로 시성되었다.2. 생애
757년경 콘스탄티노스 5세와 에우도키아 황후 사이에서 출생했다. 이복 형제로 레온 4세가 있었고, 동복 형제로 니키포로스, 흐리스토포로스, 니키타스, 안티모스, 에우도키모스가 있었다. 전승에 따르면, 콘스탄티노스 5세는 만티네이아의 안투사 수도원장이 성상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체포하여 고문을 가했다. 이후 파플라고니아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고 있을 때, 황제는 안투사 수도원장을 끌고 와서 성상 파괴주의를 따르지 않는다면 훨씬 가혹한 고통을 주겠다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안투사 수도원장은 끝내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았다.이때 황후 에우도키아가 임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콘스탄티노스 5세는 안투사 수도원장에게 황후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안투사는 기꺼이 그렇게 하면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것이며 매우 신실한 삶을 살아갈 거라고 덧붙였다. 이후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고, 에우도키아 황후는 출산을 무사히 하도록 기도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의 이름을 안투사로 지었다고 한다.
안투사는 성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의 결혼 권고를 거부하고 수녀로서 일생을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궁정에서 종교 활동에 전념하면서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분배하거나 교회를 관리하는 데 썼다. 또한 고아들의 어머니가 되어줬고, 과부들을 보호해주기도 했다. 또한 매일 예수에게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그녀는 궁전에서 살았기 때문에 황제의 딸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옷을 입었지만, 수도자들이 입는 거친 천으로 된 속옷을 항상 같이 입었다고 한다.
780년 콘스탄티노스 6세가 9살의 나이로 즉위했을 때, 콘스탄티노스 6세의 모후인 이리니는 백성들이 신실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 무척 존경하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나라를 함께 이끌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안투사는 이를 거절했다. 그녀가 이리니의 제안을 거절했던 건 신앙에 전념하고 싶었기도 했지만 형제들이 황좌에 눈독을 들였다가 비참한 지경에 처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타라시오스에 의해 삭발된 후 성 에우테미아 수도원에 들어갔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오모노이아 수도원을 설립했다. 이 수도원은 다른 수도원에 비해 유달리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수도원에서 종교 활동에 전념하다가 801년 또는 808년에 사망했다. 사후 가톨릭과 정교회로부터 성녀로 시성되었다. 가톨릭에서는 그녀의 축일을 7월 27일로 적용하며, 그리스 정교회는 4월 12일, 17일 또는 18일을 축일로 삼았고, 러시아 정교회는 4월 12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