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22:24:59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1. 개요2. 생애

1. 개요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 1932.02.06~1959.10.28)는 쿠바의 혁명가이자, 군인 그리고 정치인이다.

2. 생애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는 1932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계 아나키스트로 쿠바 이민자 출신이었다. 아버지부터 좌파출신이었고, 그의 친형인 오스마니 시엔푸에고스도 공산주의 활동가였기에 그가 이후 혁명가가 된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8년부터 시내버스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중시위에 참가하면서 정치투쟁에 발을 들어놓았고, 1952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에도 참가했었다.

1953년 잠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불법적으로 노동자 혹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라틴아메리카 이민자들이 주도하는 다양한 시위에 참가했다. 그러던 중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이민국에 의해 구금되었다가 멕시코로 추방됐다.멕시코로 추방된 시엔푸에고스는 피델 카스트로체 게바라를 만났고, 7.26 운동에 가담했다. 1956년 이들이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로 상륙했을 때,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또한 혁명에 참가했으며, 상륙 초기 살아남은 극소수 대원 중 하나였다.[1]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또한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산악지대로 들어가 게릴라 투쟁을 했으며, 1958년 12월30일 야과하이 전투에서 바티스타 정부군을 격파해 쿠바 혁명 성공에 결정적인 전공을 세웠다. 카밀로 시엔푸에고스가 이끄는 혁명 군대가 12월 31일 산타클라라를 점령하자, 바티스타는 1월 1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도주했다. 쿠바 혁명에서 혁명군을 이끌고 처음으로 아바나에 입성한 인물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 형제에 이어 사실상 혁명정부 3인자 자리에 올랐다. 혁명 이후에는 충실한 공산주의자로서 쿠바의 농업개혁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쿠바 혁명에 성공하고 피델 카스트로가 병영을 학교로 개조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한 뒤 “카밀로, 나 지금 잘하고 있어?(¿Voy bien, Camilo?)” 하고 묻자, 그는 “잘하고 있어, 피델.(Vas bien, Fidel.)”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1959년 10월 28일 카마궤이에서 아바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플로리다 해협 상공에서 실종됐다.[2] 그의 나이 27살이었다.

현재 쿠바에서는 그를 혁명가로 기리고 있다. 수도 아바나에는 그의 얼굴이 그려진 철벽화가 있다.

[1] 그란마호에는 82명이 탔는데, 이 중 살아남은 사람은 14명이었다. 그 중 하나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였던 것이다.[2] 비행기 추락으로 추정되는 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