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5 00:35:02

최성숙



1. 개요2. 생애

1. 개요

북한의 항일 빨치산 1세대 출신 정치인.

2. 생애

1913년 11월 8일에 출생했다. 항일 빨치산에 가담, 군정간부학교를 거쳐 북만지역에서 사업하다가 1932년 12월에 왕청지역으로 이동, 왕청유격구 지부당서기로 사업했으며 해방 후 유학을 떠났다가 1960년 여름에야 귀국하여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 9월 1일에 부임하였다. 이후 중앙당학교를 수료, 평양견방직공장의 당비서로 사업하였다.

이후 1977년 5월, 농근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87년 4월 2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75세 생일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2년 4월 23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3년 12월, 박수동의 후임으로 농근맹 중앙위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12월 8일, 조선로동당 6기 21중전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최성숙의 회고에 따르면 이는 농근맹조직에서 일어나는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척결하기 위해 빨치산 출신인 최성숙을 발탁한 것이라고 한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6년 9월, 려연구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2월 27일, 청년동맹 제1비서 리일환과 함께 공화국 정당,단체 련합회의 조치에 대한 지지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몇개의 행사를 다닌 후 4월 22일, 농근맹 7기 33중전회에서 승상섭에게 농근맹 중앙위원장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하였다. 퇴임 이후 여성 항일혁명투사 자격으로 1998년 6.1 국제아동절 친선련환모임에 참석하였다.

하지만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01년 6월 26일에 사망, 애국렬사릉에 항일혁명투사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명색이 빨치산 1세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초라한 대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