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 전경
15세기에 세워진 파티흐 모스크
1. 개요
Çorlu튀르키예 서북부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서북쪽으로 75km, 테키르다에서 동북쪽으로 35km 떨어진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30만명이고, 도 내에서 주도인 테키르다를 제친 제1의 도시이다. 이스탄불과 에디르네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써 근래 들어 산업 도시로 성장 중이고, 루멜리아 (터키령 유럽)의 최대 도시이다.[1] 도시 동쪽 외곽에 테키르다 초를루 아타튀르크 공항이 있다.[2] 또한 불가리아, 그리스 모두로 향할 수 있는 요충지로써 튀르키예 육군 184 연대가 주둔하고 있다.
2. 역사
동로마 시기에 세워진 초를루 성채
근대 시기 건물
로마 제국기에는 추룰로스 (Tzouroulos) 혹은 시랄로 (Syrallo)로 불렸고, 동로마 제국 시기에는 티롤로이 (Τυρολόη)로 불렸다. 작은 도시로 유지되다가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령이 되었고, 술탄 무라드 1세는 팍스 로마나의 재림을 상징하듯 성벽을 허물었다. 오스만 시기 초를루라 불리게 되었고, 트라키아의 교통 요지가 되었다. 1511년 8월, 바예지트 2세는 아들 셀림 1세를 인근 마을인 우으라슈데레에서 격파했으나 이듬해 폐위된 후 디디모티호로 향하다 초를루 인근에서 사망했다. 1520년에는 셀림 1세 본인도 초를루에서 사망했다. 물론 부자 모두 이스탄불에 매장되었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였던 초를루는 18세기 말엽 크림 칸국의 유민들이 정착했고, 19세기 들어 외침 루트가 되기도 했다. 1877-78년에 러시아 군이 점령했고, 발칸 전쟁기에는 오스만 군의 사령부가 되었으나 1912년 12월에 불가리아 군이 점령했다가 이듬해 7월에야 오스만 군이 수복했다. 1920-22년에는 그리스 왕국군이 점령했다가 터키 독립 전쟁 후에 물러갔다. 1923년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 시에 이주된 그리스인 주민들은 서마케도니아 주의 프톨레마이다에 정착했다.
3. 볼거리
파티흐 자미
초를루 성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