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02 18:18:34

천명제(명군이 되어보세!)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명군이 되어보세!의 2부 등장인물.

원 역사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의 차남인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이다. 원 역사에서 누르하치가 사용한 연호인 천명(天命)을 여기서는 다이샨이 청나라 황제로 칭제건원했을 때 사용하여 천명제 자리는 다이샨에게 넘어갔다.[1]

원 역사에서는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가 후금을 건국하며 천명제가 되었지만, 본작의 누르하치는 명나라 만력제에게 정식으로 건주왕에 책봉되었고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는 형식적으로 명나라에 칭신하고 있었기에 천명제의 이름은 다이샨에게 넘어갔다.

2. 작중 행적

누르하치가 다이샨을 조선에 정략결혼시키는 구상을 하던 중 재석이 아들 한 명을 볼모로 보내라고 하길래 조선에 볼모로 보내졌다. 평안도 억양이긴 하나 조선어도 잘 구사하며, 을미동정 때 족친위의 일원으로 참전도 한다. 조선식 이름은 김대선. 재석은 미래를 위해 그를 사위로 삼고 추후 누르하치의 후계자로 삼아 건주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계획으로 상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희정옹주와 혼인시킨다.

조선에 머무는 동안 세자를 비롯한 종친들과 친한 사이가 되었고, 세자와는 '요동을 조선에게 넘긴다면 건주위가 화북을 차지하도록 돕겠다.'는 밀약을 맺고 희정옹주와 함께 건주위로 돌아간다. 건주위에 돌아가자마자 누르하지가 마련해둔 만주족 여성 3명을 계복진으로 들였는데,[2] 이에 재석이 항의하자 옹주를 '가장 좋은 활과 말처럼 아끼겠다'고 해서 재석을 벙찌게 만들었다.

희정옹주를 제일 아끼는 아내인 것은 진심이었는지 조선이 명이 건주를 정벌하는데 군사를 내서 분위기가 험악해진 와중에도 아내를 최대한 보호해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게 해준 것을 보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 만도 한 게 다이샨이 원 역사와 달리 분할 상속이라도 물려받아서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희정옹주 덕분이다. 당시 다이샨은 말이 적자지 어머니가 죽고 몽골 귀족의 아들인 이복동생 홍타이지에게 밀려난 데다 별 세력도 구축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라서 인질로 방출된 인물이라, 다이샨이 조선 왕녀와 결혼해 조선 왕실을 뒷배로 두고 귀국하지 않았으면 돌아오자마자 숙부나 친형처럼 숙청당했을 입장이었다.[3]

혈통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유목 사회에서 조선의 왕녀와 결혼한다는 것은 엄청난 입지와 상징성을 줄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데 성공해서 반분이나마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경계한 홍타이지가 원 역사에서 보르지기트씨 부인을 다섯이나 둔 데 반해[4] 본작에서는 자신도 조선 왕녀를 달라고 재석에게 요청해서 희정옹주의 친동생인 희연옹주와 혼인하고 이를 위해 다른 처첩을 들이는 것도 포기했을 정도였다.[5] 거기다 희정옹주는 설정상 미녀이기도 하니 다이샨의 입장에서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왕녀님'인 희정옹주를 총애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은 조선의 빽을 바탕으로 전공이 훨씬 많은 형 추옌과 차기 건주 국왕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나 사르후 전투에서 추옌이 사망하고 본인은 큰 공을 세우면서 대패륵이 되고 가장 유력한 차기 건주왕 후보가 된다. 전투에서는 조선의 편곤을 사용하고 싸우는데 조선에서 배운 군략을 활용하는 등 조선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2부와 3부 사이 외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누르하치 사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건주왕이 되었다. 이후 정황을 보아 원래 누르하치는 홍타지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으나 다이샨과 왕세자의 밀약은 '왕세자가 즉위할 때'를 전제로 한 것이라 우선 다이샨을 건주왕으로 삼고, 나중에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 둘이 분할 상속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추측된다.

1630년 명나라가 반란군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명나라의 원군 요청을 무시하고 고영상이 태창제를 살해하고 명을 멸망시킨 뒤에야 근황을 명분으로 화북의 고영상 반군을 공격하여 2년에 걸쳐 화북을 장악하고, 그 뒤 여력이 없어 강남의 후송과 서는 토벌하지 않았다. 화북 장악 과정에서 저항하는 4개 도시의 거주민 2백만 명을 학살한다.

1635년 대한에게 2부에서의 밀약대로 요동을 할양했고 건주를 분할하여 홍타이지에게 몽골 지역을 넘긴다.

아들 요토가 칭제한 후 청 제2대 황제 태종으로 추존되었다.

여담이지만 아무리 건주의 인구가 적어서 화북을 지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지만, 그가 만든 청나라는 실제나 작중 역사에서나 오래 가지 못한 원나라와 비슷한 나라가 된 것을 보면, 2부에서 다이샨은 조선에 있는 동안 조선의 군사와 군략에 대한 것은 많이 배웠지만, 그 외의 것에서는 별로 배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배우지 못했다기 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현실 역사나 작중이나 한인들은 만주족보다 인구 수가 훨씬 많고,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녔으니 아무리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한족에게 휩쓸려갈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증명되었다. 어차피 배후를 지켜줄 형제국 후금과, 큰형님 나라 조선이 있으니 한족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택해도 버틸 수 있을 거란 계산으로 이런 정책을 택했을 수도 있다.

거기다 당시 청나라는 화북'만' 장악하고 있어서 상황이 더 불안정했고, 홍타이지와 분할 상속하면서 절반의 세력만으로 통제해야 하는 데다, 당시 화북 지역에서는 소빙하기로 인한 자연재해와 기근으로 인해 농민 반란이 잦은 상태라[6] 멜서스 트랩까지 걸린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다이샨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세월이 흘러 큰 역풍이 되더라도 당장 불을 끄기 위해 '문제의 원인 자체를 없앤다=인구를 줄인다'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3. 기타

원 역사에서는 이복 동생 홍타이지에게 밀려 황제가 되지 못했지만, 본작의 나비효과로 화북을 자신이, 초원지대를 홍타이지가, 요동을 조선이 분할 차지하였고 강남 일대는 조승복[7]의 후송(後宋)이, 파촉과 서남 일대를 서(西)나라가 차지하게 되면서 화북 청(淸) 황제가 되었다.[8] 그렇게 중국에 넷 또는 다섯 황제[9]가 존재하는 사국시대(四國時代)의 일원이 되었다.

원 역사의 다이샨은 이씨(李氏)였다가 만주인으로 귀화해 팔기가 된 리기야씨(李佳氏)를 적복진으로 들여 요토를 가졌는데, 희정옹주의 아들 이름이 요토인 것을 보아 희정옹주는 원 역사 다이샨의 정실이었던 리기야씨의 포지션을 대신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 외에 다이샨의 계복진[10] 예허나라씨(葉赫納喇氏) 2명과 측복진 하다나라씨(哈達納喇氏)가 있었는데, 본작에서는 건주위 출신과 해서부 출신의 만주족 여성 3명을 모두 계복진으로 삼았다고 한다.[11]

작중에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작중 누르하치는 건국하면서 조직 체계를 꾸릴 당시 조선의 체제를 크게 따왔고 희정옹주와 희연옹주가 아이신기오로에 시집 오면서 문화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에 다이샨이 세운 청나라도 명나라보다는 조선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화북 일대에서 원나라 후기부터 명나라 초기까지 유행한 고려양이 철폐된 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양이 부활할 수도 있다.[12]


[1] 본작의 누르하치는 만력제가 건주왕으로 책봉해서 명나라 연호를 썼고, 이후 명나라의 비위를 맞추다 명나라가 멸망하기 전에 누르하치가 사망해서 칭제건원하지 못 했다.[2] 건주위 출신도 있고 해서부 출신도 있다고 한다.[3] 서양과 달리 당대 동양에서는 외국과의 혼인이 굉장히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라서 이루어지기 매우 힘든 편이었음을 고려하면 조선 왕녀와 최초로 혼인한 만주인의 상징성은 대단했을 것이다.[4] 칭기즈 칸의 동생 카사르의 후손으로 황금씨족은 아니지만(황금씨족은 칭기즈 칸의 직계만 해당한다) 이에 준하는 보르지긴 씨족의 일파.[5] 정부는 여럿 있었지만, 정부의 특성상 사생아들에게는 일체의 권리가 없었다.[6] 이런 대기근은 17세기 말에 기어코 절정을 찍어서 조선의 양란보다 큰 사망자를 낸 경신대기근이 일어났으며 동시대 일본, 중국, 서양도 세세한 연도 차이가 있을 뿐 여기서 예외가 되지 못했다. 이미 명나라 후기 때부터 소빙하기에 진입한 상태라서 이때부터 기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명나라의 결정적인 원인인 농민 반란의 원인 중 하나가 소빙하기였다.[7] 본작 오리지널 인물이다.[8] 과거 요나라야율아보기, 금나라완안아골타와 유사하나 해당 세계의 청나라는 화북'만' 차지하고 있어서 이들보다도 훨씬 작다.[9] 동삼성의 조선->대한(大韓), 화북의 대청(大淸), 몽골의 대금(大金), 서남의 대서(大西), 강남의 대송(大宋). 후금(後金)은 한자 문화권이기는 하나 만주-몽골 제국의 정체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반쯤 예외로 볼 수 있다.[10] 만주족 사회의 정실인 적복진 중에서 서열 1위인 대복진을 제외한 나머지 적복진들을 말한다.[11] 예허나라씨와 하다나라씨는 나라씨의 일파인 예허부와 하다부이기 때문에 예허나라씨는 1명만 삼고 나머지 1명이 해서부인 모양이다.[12] 고려양이 원나라에 유행한 원인 중에 원나라가 한족 문화에 너무 휩쓸리지 않기 위해 대신하기 위해서 장려했다는 설이 있는데, 여기의 청나라는 조선 의존도가 높음을 고려하면 실제로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