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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윈스턴 처칠이 나치독일의 V1 포격 때 내린 선택. 오늘날 기차의 문제[1]와 함께 윤리학의 난제와 공리주의를 논할 때 다루는 대표적인 일화.2. 상황
당시 영국 런던은 독일의 무차별 폭격을 당하고 있었다. 이 무렵 독일은 V1 로켓을 이용해 런던을 폭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칠은 한가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V1 로켓은 작은 프로펠러의 회전량을 계산해 연료공급을 끊어 폭격하는 식이었다. 이로인해 V1의 명중률은 25%정도 였고 이 낮은 명중률로 인해 독일이 총리공관 등 중요 건물이 있는 런던 중심부가 아닌 런던 남쪽의 도시들을 폭격하고 있었다. 이는 독일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뒀다간 독일스파이들이 알게되 본국에 보고할지 모를 상황 이었다.3. 처칠의 결정
이로인해 처칠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만일 이대로 간다면 독일이 알고 런던 중심부를 폭격하게 되고 영국의 중심인 자신이 있는 총리공관을 포함한 중심건물의 파괴 및 중심인물이 죽을 수 있다. 그로인해 다른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바로 독일이 런던에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를 폭격하고 있다고 한것. 이렇게 되면 독일은 더욱 남쪽을 폭격하게 되므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을 수 있다.[2]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처칠은 자신이 고안한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4. 비판
V1은 명중률도 낮을 뿐더러 상당수가 요격됬기에 실제로도 명중률이 낮아 인명피해가 낮게 나왔다. 충분히 전투기로 요격 가능한데 굳이 이상한 데로 날리게 해서 3천명의 무고한 생명과 수많은 재산피해를 남길 필요가 없었다. 또한 처칠이 왜 대피를 안했나? 처칠이 요주 인물이라면 대피하는게 당연한것 아닌가?4.1. 반론
하지만 처칠이 떠난 다면 영국의 전쟁 지지도는 낮아졌을 것이다. 또한 처칠이 피했다 하더라도 중요건물의 피해는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무고한 사람이 희생하더라도 처칠의 선택이 결론 적으로는 옳다.5. 이후
처칠은 이 사건으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된다. 아무리 나라가 중요하고 정부가 중요해도 희생하는게 맞나? 이런 논란은 평생동안 품고 살아야 했다.6. 공리주의
이사건은 공리주의 대표적 일화가 되기도 했다. 처칠은 영국 전체의 수천만 국민을 위해 3천명을 희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 3천명의 유가족은 어쩔 것인가? 과연 많은 사람을 위해 소수를 희생한다해도 그 소수의 입장을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가? 남은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1] 한 기관사가 기차를 운행하던 중 철로에 사람이 묶여 사람이 죽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때 갈림길에서 5명이 묶여 있는 곳으로 가야하나 아니면 1명이 묶여있는 곳으로 가야하나 하는 윤리학의 난제[2] 실제로 V1 로켓은 2만 5천의 사상자를 냈는데 이중 약 3천명 정도가 이 선택으로 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