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10:09:57

짐 레이턴

스코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Jim Leighton.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짐 레이턴
Jim Leighton MBE[1]
본명 제임스 레이턴
James Leighton
출생 1958년 7월 24일 ([age(1958-07-24)]세)
영국 스코틀랜드 존스톤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스코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팀 이스터크레익스 보이스 클럽 (유스)
달리 시슬 FC (유스)
애버딘 FC (1977~1988)
→ 데이브론베일 FC (1977~1978 / 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8~1992)
아스날 FC (1991 / 임대)
레딩 FC (1991~1992 / 임대)
던디 FC (1992~1993)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1993 / 임대)
히버니언 FC (1993~1997)
애버딘 FC (1997~2000)
국가대표 파일: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91경기 (스코틀랜드 / 1982~1998)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애버딘 FC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2.3. 고국으로 복귀2.4.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수상 기록
4.1. 팀 수상 기록4.2. 개인 수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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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국적의 전 축구선수. 알렉스 퍼거슨 지도 하에 애버딘 FC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 중 한 명이다.

2. 선수 경력

2.1. 애버딘 FC

1977년, 달리 시슬 유스 출신이던 레이턴은 애버딘 FC에 합류했다. 그리고 곧바로 데이브론베일 FC로 한 시즌 임대를 떠나면서 실전 경기 경험을 쌓았다.

그는 임대에서 복귀한 뒤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의 총애를 받아 주전 골키퍼로 낙점받았으며, 수년간 에버딘 황금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 시기에 레이턴은 영연방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우며 대표팀에서도 당당히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8년, 그는 자신을 최고의 골키퍼로 키운 퍼거슨이 재임 중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75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이적하게 된다.

첫 시즌에 클럽은 11위를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그는 뛰어난 활약으로 14번의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최후방을 든든히 수호했다. 그렇게 맨유의 넘버원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나, 1989-90 시즌부터는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의 장점으로 불리우던 안정감 또한 잦은 기복으로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퍼거슨 감독은 레이턴을 신뢰하며 계속해서 주전으로 기용했으나, 자신감이 떨어진 탓인지 경기를 거듭할 수록 폼은 점점 나빠졌다.

그러다 1990년 FA컵 결승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2차례 판단미스로 호러쇼를 선보이며 팀을 패배직전까지 몰고 갔으나, 마크 휴즈가 극적으로 연장 후반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패배를 면할 수 있었다. 결과는 3:3 무승부. 당시에는 승부차기없이 연장전까지 무승부가 이어지면 재경기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우승컵의 향방은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온 퍼거슨은 재경기에서는 레이턴을 과감하게 제외하고, 서브 골리인 레스 실리를 주전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실리는 경기 내내 레이턴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골문에서의 안정감은 몰론이고, 여러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1:0 승리를 이끌며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거듭나게 된다.

한편 레이턴은 선발 제외 건으로 퍼거슨과 마찰[2]을 겪으면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고, 주전에서 밀려 4순위로 전락한 것은 몰론 다음 시즌부터는 팀에서 내쫒기며 아스날과 레딩에서 임대생활을 했다.

2.3. 고국으로 복귀

맨유에서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은 레이턴은 1992년 3월에 던디 FC로 이적했다. 그리고 2부리그이던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러다 자신을 데려온 감독이 떠나고 새로운 감독이 부임한 후에는 입지가 좁아지며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임대를 떠났으나,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고 복귀했다.

1993년 여름, 그는 히버니언으로 둥지를 옮긴 뒤 4년간 150경기 넘게 출전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침체되던 그의 커리어에 다시 한번 빛이 내린 시기였으며, 본인 스스로도 이 시절이 제 2의 전성기였다고 평할 정도였다.

1997년에는 다시 애버딘으로 복귀하여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으며, 1년 뒤 500경기 출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프리미어십 경기는 2000년 41세 302일의 나이에 치렀으며, 당시 최고령 선수 출전 기록이었다.[3]

2.4. 국가대표 경력

1982년, 대표팀에 데뷔하여 1982년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앨런 로프의 서브 키퍼로 벤치를 지켰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뒤 10월 13일 동독과의 경기를 통해 데뷔전을 치룰 수 있었다.

이후 애버딘에서 보여준 최고의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주전 골리로 낙점되어 1986년 월드컵1990년 월드컵에서 두 대회 모두 전 경기 출전했다.

그러나 맨유 말년 시절부터 커리어 부침을 겪으면서 앤디 고람에게 대표팀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고, 5년 가까이 서브 키퍼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러다 1998년 월드컵 지역예선부터는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차기 시작하여 조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불혹의 나이에 맞은 월드컵 본선에서도 넘버원으로 활약했으나, 조별라운드 최하위로 탈락을 막지 못하고 그렇게 그의 마지막 국제 메이저대회도 막을 내렸다. 그래도 그는 스코틀랜드 선수로는 유일무이한 월드컵 4회 참가 기록을 달성했다.

1998년 10월 10일, 대회가 끝난 뒤 에스토니아와의 유로 지역예선전이 그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였으며, 훗날 데이비드 위어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 최고령 대표팀 출전 기록이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애버딘 FC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여 8년동안 활동했다. 이후 헌틀리 FC에서 잠시 골키퍼 코치를 맡다가, 2011년 12월 13일에 다시 애버딘 골키퍼 코치로 복귀하여 4년간 후배들을 양성했다.

또한 2011년부터 스코틀랜드 U-21 대표팀 골키퍼 코치에 부임하여 10년 넘게 재직 중이다.

4. 수상 기록

4.1. 팀 수상 기록

4.2. 개인 수상 기록


[1] 5등급 대영제국 훈장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2] 현역 은퇴 후에도 여전히 퍼거슨과의 사이는 냉랭한 것으로 밝혀졌다.[3] 2007년 앤디 밀렌에 의해 경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