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02:07:34

진보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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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련
陈宝莲 | 陳寶蓮
Pauline Chan Bo-Lin
[1]
파일:1000113688.jpg
출생 1973년 5월 23일
중국 상하이시
국적
[[홍콩|]][[틀:국기|]][[틀:국기|]]
사망 2002년 7월 31일 (향년 29세)
중국 상하이시 정안구 남양로
신체 175cm
가족 아들 1명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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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의 배우.

2. 생애

상하이시 출신이며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다. 4살 때 부모가 이혼해 외할머니가 키웠으며 그 후 12세 때 어머니를 따라 홍콩으로 이주했다. 15세부터 모델 생활을 했고 1990년 미스 아시아 대회에 참가했지만 낙방을 하여 수상엔 실패했다. 17세가 되던 해 부터 소속사에 연예인으로 계약된후에 18세 때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 것을 시작하여 당대 최고의 코믹배우인 주성치의 1994년 작품인 007 북경특급에서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중화권의 섹스심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90년 초반부터 코미디와 액션을 결합한 홍콩 3급 영화가 흥행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등초화상', '나는 북경에서 왔다', '오월앵순' 등 다수의 3급 영화에 출연했고 특히 '등초화상'[2] 은 3탄까지나 제작 되었을 정도로 그 명작이 되었다.

하지만 1996년 이후 인기가 기대만큼 좋지 않았고 사생활 문제가 많았던 진보련은 스캔들에 휩싸여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재미삼아서 투약한 약물중독의 영향으로 자주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되고 말았다.[3] 이때 타이완의 플레이보이인 황런중과 교제하며[4] 약물중독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1997년에 투옥되기도 하였으며 1998년 중순에는 갑작스런 심장마비에 걸린 적도 있었다.[5] 그후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서 황런중과 결별 후[6] 여러 번이나 자살, 자학시도를 하며 몰락했다. 1999년 영국에서도 같은 문제로 체포되기도 했다.

2002년 7월 31일 5시 30분쯤에 갓 1개월이 지난 아들을 남겨놓고[7] 상하이시 정안구 남양로에 있는 24층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자살했다. 당시 향년 29세였으며 재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촬영한 '안녕 반딧불'은 그녀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1] 광동어:찬보린, 보통화:천바오롄(Chén Bǎolián)[2] 여계명 감독이 담당한 요재연담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으로 명나라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이다.[3]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재혼하고 만난 의붓아버지인 황임중과의 불륜 관계도 가장 자주 언론에 오르내렸다. 수양딸과 50~60차례 동침한 적이 있다고 언론에 공개한 황임중은 한 번도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4] 그 이전인 1993년에 당시 20세의 그녀는 영화 '검노지혈계약'에서 만난 배우인 모사오총과 사귀었지만 곧 헤어졌다. 그후 1995년에는 각본가인 황쯔양과의 연애도 별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5] 이로 인해서 죽을 고비를 넘긴후에는 스님의 권유를 받아서 이름을 조선문 (趙瑄文)으로 개명하고 불문에 귀의했으며 명혜(明惠) 라는 법명을 받기도 하였다.[6] 1997년에 대만 시장의 진출을 위해서 대만의 남성 MC인 장페이(張菲)의 파트너를 자청했다가 황런중이 개입해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황런중과는 완전히 결별했으며 이후 록 가수인 '차이펑화', 아시아 TV '홍콩남자선거'에 출연했던 코미디언인 '우쉐밍'과의 열애설이 불거졌다.[7] 2002년 6월에 태어난 아들로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아기의 아버지는 타이베이의 한 디스코장 에서 만난 25세의 중국계 미국인 DJ라고 밝혔다. 현재 이 아들은 진보련과 생전 친하게 지냈던 동료 여배우인 왕페이하오와 그녀의 파트너인 싱가포르 출신의 사업가인 츄콴에 의해 입양되어 '추황'이라는 이름으로 살고있다고 2016년 5월 8일에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