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농억상(重農抑商)은 중국 고대의 경제 정책 중 하나로, 통치자가 농업을 본업으로 여기고 상업을 말업(末業)으로 간주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농억상은 "중본억말(重本抑末)"이라고도 불린다.
2. 사상적 배경
2.1. 법가
중농억상(重農抑商)을 주장한 것은 법가(法家)이다. 상앙(商鞅)이 변법(變法)을 추진할 때도 진(秦)나라에서 중농억상을 실시했다. 상군서를 보면, 나라가 흥성할 수 있는 수단은 농사와 전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농사는 힘들고 전쟁은 위험해서 백성들이 싫어하므로, 상업이나 공업 또는 학문에 힘쓰게 되는데 이는 나라에 해롭다고 선언한다. 백성을 가난하게 만들어서 전쟁에 나서기를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업등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가(法家) 사상을 정리한 한비자(韓非子)역시 마찬가지이다. 농업을 본업으로 하고 상공업을 말업으로 간주했으며, 상공업 종사자를 국가의 다섯 해로운 존재(五蠹)중 하나라고 여겼다.
다만 이러한 강력한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수는 없었고, 전매제도를 통해 국가가 직접 상업적 이득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2.2. 유가
유가에서는 맹자의 경우는 질서를 세울 뿐 세금을 거두지 않아서 상인이 활발히 활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
이후 명청(明清) 교체기의 유학자인 황종희(黃宗羲)도 "상공업 또한 국가의 근본"이라는 ‘공상개본(工商皆本)’ 사상을 주장하였다.
반면 순자(荀子)는 관문과 시장에서 세금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했지만, 상인의 수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2].
3. 역사적 사례 및 변천
진시황(秦始皇)이 육국(六國)을 멸망시킨 후에도 진나라는 중농억상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였고, 여러 차례 상인들을 변경으로 보내 수비하게 하였다.
전한시대 염철론을 보면, 한무제를 따르는 법가 관료들이 상업을 국가가 통제하고, 그 이익을 국가가 독점해서 그걸 바탕으로 흉노나 고조선등 외세를 정벌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앙과 정책 목표는 동일하지만 정책은 바뀐 것이다. 반면 유가에서는 흉노정벌이나 고조선정벌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며, 소금이나 철 등에 대해 민간 경제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