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趙莊忽古孫 |
생년 | 14세기 추정 |
몰년 | 1374년 |
활동지역 | 제주도 |
1. 개요
원나라의 인물. 목호의 난 당시 목호 반란에 참여했다.2. 생애
1374년 목호의 난이 발발하자 공민왕은 2만 5천여명의 군대를 제주도로 파견해 목호들을 진압하게 하였다. 목호 반란군은 명월포에서 진을 쳐 고려군 선발대를 전멸시켰으나,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 본대에게 밀려 서귀포시 범섬까지 도주했다가 지도부인 석질리필사는 투항하고 초고독불화와 관음보는 자살하면서 괴멸하였다.조장홀고손은 석다시만과 함께 제주 동도(동아막)에서 무리 수백여명을 이끌고 성에 들어가 농성해하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최영이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농성하던 성을 함락시키자, 목호들은 달아났는데, 최영은 도망치는 목호 무리들을 찾아내서 모두 죽였다고 한다.
3. 기록
(중략) 최영(崔瑩)이 전 부령(副令) 정룡(鄭龍)을 보내어 날랜 전함 40척을 거느리고 그들을 포위하게 하였으며 자신은 정예병을 거느리고 뒤따라갔다. 석질리필사(石迭里必思, 시데리비스)가 처자(妻子)와 그의 일당 수십 명을 거느리고 나왔으나 초고독불화(肖古禿不花, 샤오쿠투부카)·관음보(觀音保)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벼랑에 몸을 던져 죽었다. 최영이 석질리필사와 그의 세 아들은 허리를 잘라 처형하고, 또 초고독불화와 관음보의 머리를 베어 지병마사(知兵馬事) 안주(安柱)를 보내어 바치게 하였다. 동도(東道)의 합적(哈赤, 카치) 석다시만(石多時萬, 시다시멘)·조장홀고손(趙莊忽古孫) 등은 아직도 수백 명을 거느리고 성에 웅거하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최영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자 적이 무너져 달아났다. 이를 추격하여 잡고 남은 무리를 찾아 체포하여 모두 죽이니 죽은 자가 줄줄이 이어졌다. 금패(金牌) 9개, 은패(銀牌) 10개, 인신(印信) 30개, 말 1,000필을 획득하였는데 인신은 만호(萬戶)·안무사(安撫使)·성주(星主)·왕자(王子)에게 주고 말은 여러 주(州)에 나누어서 기르게 하였다. 군사들 중에 말과 소를 죽여 잡아먹는 자가 있으면 혹은 참수하거나 혹은 팔을 잘라서 조리를 돌리니, 사졸들이 벌벌 떨면서 추호도 감히 범하는 자가 없었다.
고려사 제신열전 권제26 최영
고려사 제신열전 권제26 최영